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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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열등감

열다섯 살에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맞고 집안이 무너졌다. 사춘기에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판잣집에 살게 된 나는 점점 모나기 시작했다. 당시 나를 초라하게 만든 건 가난만이 아니다. 나는 목소리와 발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혀가 보통 사람보다 짧고 구강에 마비 현상이 있었다. 말과 행동이 느리고 발음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다. 학창 시절 내내 꺼벙이라는 별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나를 이름으로 불러 주지 않았다. 집도 학교도 기쁨이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다 가슴 뛰는 일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땀 흘리며 운동하길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는 음악 시간을 가장 기다렸다. 하루는 음악 선생님이 비디오 하나를 틀어 주었다. “다들 집중해서 보도록!” 캄캄한 음악실에서 텔레비전 화면만 밝게 빛났다.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오페라 트라비아타를 감상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노래하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이 일렁였다. ‘저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라고!’ 그날 음악으로 전율을 느끼고 내 꿈을 확신했다. 하교 후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에게 음악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내 허락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형이 이미 비싼 성악 레슨을 받고 있었다.

 

나는 자구책을 찾았다. 형이 연습하는 소리를 따라 하기로 결심한 것. 주변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정류장을 지나친 적도 많았다. 원리도 모르고 흉내만 냈다. 흉내를 잘 내기 위해 듣고, 관찰하고, 따라 하고, 연습했다. 그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두 달이 지나자 내 목소리에도 바이브레이션(소리의 떨림)이 생겼다. 제법 성악가다운 목소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때의 연습 덕분인지 나는 지금도 무엇이든 금세 따라 하고 집중력 있게 잘 배운다. 진득하니 혼자 연습하는 것도 남보다 자신 있다. 열등감이 만들어 준 강점이다.

 

김진수 님 |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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