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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행복한 대장장이 <대장장이 석노기 님>

한국의 호미를 세계에 널리 알린 장인이 있다. 경북 영주의 대장간에서 매일 쇳덩이를 달구고 펴고 두드려 온갖 연장을 만드는 명장 석노기 님(64세)이다. 그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가마 앞에서 망치로 달군 쇠를 두드려 호미 날을 다듬고 있었다. 벌써 52년째 해 온 일이다. 

 

처남, 노느니 와서 일 좀 거들어 줘. 내가 밥은 먹여 줄게.


그는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터라 진학은 꿈도 못 꾸었다. 마침 대장간을 하는 매형이 잔심부름할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입도 덜 겸 그는 열네 살에 고향을 떠났다.

 

뭘 하든 열심히 해서 친구들보다 뒤처지지만 말자고 생각했어요. 다들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졸업해 번듯하게 살 텐데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까요. 더 잘나가기는 어려울 테니 남만큼만 살아 보자 싶었죠. 이게 제 평생소원이었어요.


약속대로 매형은 먹이고 입히고 재워 주었다. 누나 그늘도 포근했다. 풍족하진 않았으나 배곯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그는 성실히 일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 손으로 일해 먹고사는 기쁨을. 처음엔 심부름하거나 풀무로 불 피우는 게 고작이었다. 차츰 어깨너머로 대장간 일을 배워 갔다. 2년쯤 지났을 때 매형이 그에게 말했다.

 

돈 벌러 갈래? 공주에서 사람을 구한단다. 큰물에서 대장 기술을 배워 보는 게 어때.


매형은 작은 대장간을 운영하는 탓에 그가 한몫을 해내고 남는데도 월급을 챙겨 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했다. 그는 매달 오백 원씩 받기로 하고 공주의 한 대장간으로 옮겼다. 사실 대장 기술은 누가 찬찬히 일러 주는 게 아니었다. 기술자들이 일할 때 잔일을 하며 눈여겨보는 게 다였다.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뭐라도 배우고 싶었다. 한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는 기술자가 귀했어요. 기술을 다 배우면 도시로 가 버렸거든. 기술자가 떠나고 하루는 주인이 나한테 그래. ‘노기야, 네가 한번 배워 볼래.’ 단번에 ‘예.’ 그랬죠.


정식으로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낮에는 평소처럼 일하고, 일과를 마친 후에나 배울 수 있었다. 새벽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일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루에 서너 시간씩 자면서 악착같이 익혔다. 그런 그가 기특했는지 주인 역시 “이것도 해 볼래? 너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라며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 애썼다. 덕분에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온갖 기술을 연마해 기술자가 됐다. 당시 충남 지역의 가장 어린 기술자가 기계를 제일 잘 다룬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1973년, 그는 영주로 옮겼다. 다섯 평짜리 창고를 개조해 영주 대장간 간판을 걸었다. 집을 마련해 가정도 꾸렸다. 그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땅땅땅’ 하는 맑은 소리는 밤낮으로 끊이질 않는다.

 

내 집 한 칸 갖고 공장 차리고 싶은 소원을 이루긴 했지만 그게 다 빚이었거든요. 절단기 하나가 집 한 채 값이었으니까. 어렵게 이룬 걸 잃을까 봐 죽기 살기로 일했죠.

스물셋 청년 대장장이는 어느덧 육십을 훌쩍 넘겼다. 뚝심 있게 계속하다 보니 지난해 경상북도에서 ‘최고 장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고비도 많았다고. 

 

이 동네에만 대장간이 서너 개 들어섰어요. 그다음엔 중국산 제품이 싸게 공급됐고요. 경쟁이 치열했지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고민이 말도 못했어요.

 

그가 찾은 해답은 좋은 제품. 궁리 끝에 호미를 용도에 맞게 각기 제작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를 주문받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농사일도 덜 힘들고, 쓰는 사람 마음에도 드니 그 역시 흡족했다. 재료도 여느 대장간과 다르게 썼다. 영주 대장간에서는 차량용 스프링, 일명 ‘판 스프링’이라 불리는 쇳덩이로 호미를 만든다. 폐차 스프링이나, 스프링을 만들고 남는 자투리를 가져와 쓴다. 

 

제작 방법도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쇠 자르기와 초벌 메질만 기계로 할 뿐 형태를 잡고 날을 세우고 손잡이 다는 것까지 전부 수작업이다. 쇳덩이를 가마 불에 집어넣었다가 꺼내 망치로 두드리고, 또다시 불에 달구어 메질한다. 쇳덩이가 호미로 탄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이삼십 분. 그렇게 하루에 육십 자루 정도 만든다. 수천 번 메질하는 게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손으로 꼼꼼히 만들어야 더 견고하고 호미 날도 정교하게 휘어진단다.

 

기계가 발전해도 내 손 못 따라갑니다. 내가 평생 해 온 일인데요.


영주 대장간 농기구는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그중 호미는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판매 순위 10위권에 들어 화제를 모았다. 물건을 구매한 사람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그간 사용한 정원 관리 도구 중 최고다.” “날이 구부러져 힘이 덜 든다.” 등등. 미국뿐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호주 등 전 세계로 수출한다. 그는 얼떨떨한 눈치다.

 

어떤 외국인이 내 호미를 가지고 정원을 가꾸는 걸 비디오로 찍어 올렸대요. 그 영상이 해외 여기저기로 퍼져 나가면서 주문이 더 많아졌어요.


아쉬운 건 주문은 밀려오는데 물량이 부족한 것. 영주 대장간에서 매일 일하는 사람은 그 혼자다. 대장장이로 이끌어 준 매형과 장인들이 주 2~3회 나와 일손을 돕지만 모두 칠십 대 중반이 넘었다. 젊은 일꾼이 들어와 그가 50여년간 쌓은 기술을 전수받기만을 학수고대한다.


그에게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다 이뤘어요. 나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누군가는 대장간 일 하며 고생만 실컷 한 사람이 뭐가 그리 좋으냐고 할 수도 있어요. 열네 살에 고향 떠날 때, 내 집과 공장 하나 갖는 게 꿈이었거든요. 다 이뤘잖아요. 대장장이 하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망치질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일할 거예요.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6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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