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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수학에 삶이 있다 <고양외고 수석 교사 박성은 님>

십오 년 전 어느 날,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수학은 배워서 어디다 써먹어요?

아이들에게서 자주 받는 질문이라 습관처럼 답하곤 했다. “대학 가지.”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날따라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러려고 수학을 배우나?’ 결국 수업이 있다는 핑계로 나중에 다시 오라며 돌려보냈다. 학생의 얼굴엔 실망감이 스쳤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 질문에 답을 찾자, 그러지 못하면 교편을 놓자고 생각했지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를 일으키고 많은 학생이 기다린다는 고양외고 수석 교사 박성은 님(54세)의 수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전까지 그는 수학 성적을 잘 받게 하는 교사였다. 초임 교사일 적엔 유명 입시 학원 수업을 수강하며 강사들의 비법을 배웠다. 우스운 말투와 과장된 몸짓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나 이내 알았다. 학생들을 잠깐 집중시키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길 바랐다. 수준별로 학습지를 만들었다. 복사기도 없는 시절이라 쉬는 시간마다 등사기를 밀어 제작했단다. 난이도에 따라 자신 있는 문제를 풀게 한 뒤 조별 토론을 시켰다. “요즘 말로 하면 ‘자기 주도 학습’이에요. 그 효과를 예전부터 깨달은 셈이죠.” 그렇게 여러 방법을 동원해 수학을 가르쳤으나 결국 목표는 대학 입학이었다.

 

성적을 잘 받게 해 대학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돌아보니 젊은 시절 겪은 일 때문이었지요.

막 교단에 섰을 무렵, 그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당시는 학력고사 시대. 학생들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기출문제만 풀었다. 문제도 제대로 읽지 않고 기계적으로 답을 구하는 걸 보며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사회 이슈를 수학 문제와 연결시키기도 하고 시를 낭독하며 개념을 설명하기도 했다. 지친 고 3 학생들은 그의 수업을 반겼다.

 

일 년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가 담당한 반 학생들 성적이 다른 교사가 가르친 반보다 낮은 것. 일 년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두고두고 생각했어요. 무엇이 문제였을까. 애들이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낮은 이유는 뭘까.

선배 교사에게 상담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나가다 잠깐 봤는데 수업 시간에 딴 얘기가 많더라. 대학 갈 수업을 해야지.

그때부터 줄곧 점수를 위한 수업을 했다. 하지만 학생의 질문에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수학’을 가르쳤으나 ‘수학 교육’은 하지 못했음을. 입시 위주의 교과 내용 전달자에만 머무른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 교사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그는 고민에 빠졌다.

 

그날 이후 그는 십육 년째 인문학을 접목한 수학 수업을 연구한다. 수학 개념에 문학, 사회 문제, 영화 등 다양한 소재를 입혀 가르치는 것. 초임 교사 시절의 수업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때는 재미있게 가르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그 교수법으로 수학에 흥미를 불러일으킨 다음 수학적 개념과 원리를 통해 ‘삶의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데까지 이끌어 준다. ‘부등식’에서 남과 비교하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게 하고, ‘사칙 연산’을 통해 약속과 규칙의 중요성을 되새겨 준다. 수학을 삶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수업 중에 엎드려 있는 학생들이 사라지고 수학 시간을 기다리기까지 한단다. 그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학생들이 수학을 두고 ‘해도 해도 모르겠어요.’ ‘늘 처음처럼 낯설어요.’ 하는 건 수학이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왜 배우는지 모를 수밖에요. 그런 학생들에게 ‘수학은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학문이다.’라고 알려 주면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10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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