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장바구니0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행운

늘 반항아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학창 시절나는 부모님선생님친구까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이였다어릴 적부터 깊어진 부모님과의 갈등의 골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선생님들의 평가도 한결같았다. “길들여지지 않으려 하고딱히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없는 아이.” 

 

방황을 거듭하다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암보(악보를 외워 기억함)로 지휘하는 영상을 보았다가슴이 뛰었다인생에서 처음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자존감이 낮은 시기였던 탓에 내가 감히 지휘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단지 관련 전공으로 대학을 다닐 수만 있다면 행복할듯했다그러나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아버지는 여자아이에게 지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크게 반대했고갈등은 더욱 심해졌다나는 서러움이 북받쳐 집을 나가고야 말았다.

  

얼마간 친구에게 신세 지다 돌아오니 부모님은 비로소 나를 속박하길 포기한 듯했다도전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몰래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떨어지더라도 어차피 아무도 모르겠지.’ 이런 생각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화성법(작곡 또는 지휘과 입시에서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과목 중 하나책을 펴며 가슴이 벅차올랐고 난생처음 느껴 보는 설렘에 푹 빠졌다스스로 나의 길을 찾고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희열을 맛보게 해 주었다스무 살내 인생의 전환점은 그렇게 불현듯 찾아왔다.

  

음악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지휘자로 살아간다는 것같은 분야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으며 무리 없이 성취를 이루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나 역시 주변에 나름 긍정적이고 열심히 사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으니 늘 든든한 지지가 함께하는 사람으로 보이리라하지만 부모님은 소위 엘리트 학생을 접하는 분들이고당신들의 가르침과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훌륭한 제자들과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소심했던 나는 스펀지는커녕 부모님의 힐난과 비교에 늘 상처받았다그러던 내가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설렘을 느낀 것그로 인해 커다란 전환점을 맞은 건 정말이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

  

진솔 님 대구 MBC(엠비시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고객문의

  • 정기구독02 - 337 - 0332
  • 다량문의02 - 330 -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