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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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제7회 청년이야기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 편집부
작성 일시 2023년 05월 04일 16시 00분

진상린 님

 

“다루끼 가져오라니까 뭘 들고 온 거야? 다루끼는 각목이지!” “그럼 이건 어떻게…….” “아, 진짜. 이 녀석.” 일그러진 형의 얼굴에 나는 잔뜩 긴장했다. “이건 여기에 쓰면 되지롱~.” 건설 현장에서 종길이 형을 처음 만난 날이었다. 

 

21살, 입대를 앞두고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집안 사정 때문에 일을 시 작했지만 현장이 낯설고 실수를 연발하는 통에 난 늘 긴장 상태였다. ‘어려서, 익숙하지 않아서’ 같은 말은 현장에서 통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종길이 형을 만났다. 혼내기보단 하나씩 가르쳐 주고, 어리다고 얕보는 대신 기특하게 생각해 준 사람. 웃는 모습이 어릴 적 본 만화 영화 캐릭 터 ‘보거스’와 무척이나 닮은 사람이었다. 형, 동생 할 만큼 가까워진 어느 날, 나는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 형에게 물었다. 

 

“형은 왜 이런 일 해요?” “이런 일이 뭔데?” 머릿속에 두 단어가 떠올랐다. ‘일용직 노동자’ 그리고 ‘막노동’.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종길이 형의 눈빛에 서 정직함과 자부심이 또렷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도,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잖아.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 고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한 대가를 받는 거야. 네가 말하는 ‘이런 일’이 어떤 의 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이 일에 만족한다!”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치는 종길이 형을 바라보며 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뉴스나 드라마에서 접한 일용직 노동자의 부정적인 이 미지에 익숙해져 편견을 갖고 이 직업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장의 많은 어르신 은 건설 근로자로 일하며 아들딸을 번듯이 키워 냈다. 이토록 정직한 일인데 왜 그런 편견을 가졌을까?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한 뒤, 친구들은 하나둘 취직하거나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형을 찾았다. 그리고 이 일을 쭉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엔 집안 상황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장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근로자들도 자신의 일을 낮게 여기는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이 좋았다. 땀의 의미를 배웠고, 한숨 돌리 며 마시는 물의 개운함과 가끔 부는 바람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3년 정도 흐르자 친구들은 내게 충고했다. “언제까지 그럴 거냐? 그걸로 못 먹고살아.” “너 혼자라면 괜찮지만 결혼하면 어쩔 거야? 아이는 키울 수 있겠 어? 이젠 현실을 직시해.”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 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구차하게 변명하는 것 같았다. 주변의 시선에 당당해지 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쩌면 나는 그저 형이 멋져 보여 마냥 따라 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다. 내게 필요한 건 성실한 자세로 꾸준히 쌓아 올린 시간이었다.

 

또 3년이 흐른 어느 날, 반장님이 내게 말했다. “너는 왜 쓸데없이 열심이 냐? 백날 그래 봐야 다른 사람들이 고마워하지도 않는다.”“저는 그냥 이런 사 람이고 싶어서요.” 자연스레 흘러나온 진심에 반장님은 씨익 웃었다. 나는 어 느덧 이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뜨거운 8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청년들이 일을 하러 현장에 왔다. 예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특하기도 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난 종길이 형 이 나를 보는 기분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시큰하기도 했다.

 

한 달 뒤, 꽤 친해진 막둥이들이 노을 지는 퇴근길에 내게 물었다. 

 

“형은 왜 이런 일 해요?”“형은 말이야…….”

 

나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종길이 형을 생각하며, 내가 바라는 세상을 꿈꾸며. 

댓글 쓰기
  • 김희*2023. 09. 14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최예*2023. 08. 11

    감동적이에요..

  • 박영*2023. 08. 10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잖아요~ 어떤 일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수 있다는건 너무나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길이형님이 뿌듯하게 바라보고 계실것같아요~

  • 박서*2023. 07. 17

    감동적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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