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님 ‘아나고(붕장어)’는 달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 바닷물이 잔잔한 날에 잡을 수 있는 물고기다. 수심이 깊은 곳에 사는 터라 썰물 때는 바다 먼 곳으로 도망갔다가 밀물 때 돌아온다. 소음에 예민해서 사람 말소리를 들으면 위험을 직감하고 도망간다. 그래서 아빠는 배에서 ‘오늘은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다. 나와 동생은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낚싯줄을 바다 깊숙이 던지고 기다렸다. 아빠는 줄곧 담배를 피웠다.그날 낮에 집에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물건을 부수고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아빠는 종이 인형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동생과 내겐 매일 같은 시간에 보는 만화가 있었다. 시작을 알리는 예고편이 뜨자마자 우리는 티브이 앞에 앉았다. 주제가가 신나게 흘러나오는 와중에도 소란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서로를 외면했다. 하지만 티브이 화면에 비친 동생과 눈이 마주쳤을 때, 저 깊은 수렁에서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밤이 되자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선착장으로 갔다. 우리 집에는 마을에서 가장 작은 통통배가 있었다. 우리는 모터를 켜고 얼마간 달리다가, 과부하에 걸리기 전에 배의 시동을 끄고 노를 저어야 했다. 아빠가 직접 노를 저어 배를 몰았다. 바다에 떠 있는 건 우리 배뿐이었다. 달빛도 비추지 않는 밤이라 주변은 캄캄했다. 낮에 겪은 소란이 꿈처럼 느껴졌다.서너 시간이 흘러도 입질이 오지 않았다. 아빠는 아나고가 우리 오는 걸 알고 이사를 간 것 같다고 말했다. 낚싯줄을 끌어 올리고 그동안 잡은 잔챙이들은 물로 돌려보냈다. 동생은 지루해하며 배 갑판에 드러누웠다. 그때 하늘에 비행기가 반짝거리며 지나갔다. 동생은 비행기를 가리키면서 저건 어딜 향해 날아가는 거냐고 물었다. 아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중국이라고 대답했다.아빠는 본인이 아는 것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해 주기를 좋아했다. 그때마다 아빠의 얼굴은 뿌듯해 보였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빠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믿었다. 아빠의 말이 대부분 거짓이라는 것은 몇 년 지나서야 깨달았다. 아나고는 달 없는 밤에만 활동하는 물고기가 아닐뿐더러, 갯바위 낚시로도 잡을 수 있었다. 중국으로 간다는 비행기는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목적지가 다양했다. 동생과 나는 이제 궁금한 것이 생겨도 아빠에게 묻지 않는다. 아빠가 말을 꺼내려고 하면, “그거 확실한 거 맞아?”라고 되묻는다. 아빠는 머쓱한 얼굴로 자리를 피한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이 역전하는 동안 집 분위기도 차츰 바뀌었다. 누군가가 물건을 함부로 부수는 일도, 아빠를 내동댕이치는 일도 없었으며, 갑자기 밤낚시를 가는 일도 없어졌다. 통통배는 태풍이 왔을 때 부서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밤을 떠올리곤 한다. 고시원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나는 몰래 방으로 숨어들었다. 총무는 내가 들어왔는지 확인하려고 새벽마다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삶의 방향키를 쥐지 못하고 사람들 틈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나는 기억 속 가장 먼 곳으로 도망쳤다. 노를 젓는 아빠의 모습, 비행기를 올려다보는 동생의 눈 그리고 셋이 나란히 앉아 맡은 바다 냄새 같은 것들. 어느새 아빠에게 이어받은 노를 젓는 내 모습이 보인다. 아빠가 힘들어하면 동생과 내가 번갈아 노를 젓는다. 저 멀리 선착장이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멀어져 가는 밤바다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본다. 나는 그곳과 작별해 현실로 돌아온다. 그렇게 추억 속에서 자맥질하고 고통이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내게도 배를 정박할 곳이 나타나지 않을까.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집에 누가 찾아와 아빠를 괴롭히고 과부화가 걸리기 전 직접 노를 젓고, 그저 지나가는 비행기 하나에도 신기해하는 그 어린날의 순수함들. 조금 힘들었을지 몰라도 그런 순수할때가 그리울때가 있죠. 그 추억속으로 잠깐 빠지게 해주셔서 글을 써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집에 누가 찾아와 아빠를 괴롭히고 과부화가 걸리기 전 직접 노를 젓고, 그저 지나가는 비행기 하나에도 신기해하는 그 어린날의 순수함들. 조금 힘들었을지 몰라도 그런 순수할때가 그리울때가 있죠. 그 추억속으로 잠깐 빠지게 해주셔서 글을 써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