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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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제6회 청년이야기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 편집부
작성 일시 2022년 04월 08일 08시 20분
성란조 님 

 

대학 기숙사를 나서며 우산을 썼다. 예고 없는 소낙비에 우산을 챙기지 않은 애인을 마중 나가는 길이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지하철 입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마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비를 피하는 모습을 한참 보고 있으니 문득 비는 누구에게나 내린다는 당연한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열여섯 살의 가을이었다. 나는 외국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보육원생이었던 나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불합격하면 실업계 고등학교로 가야 했기에 반드시 합격해야 했다. 보육원생은 스무 살이 되면 자신의 생활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그러려면 기술을 배워 취업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유독 구름 하나 없이 맑은 어느 날, 바람도 선선해 들뜬 마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는 동안 금세 도서관에 도착했다. 열람실의 좋은 자리까지 차지하니 문제도 술술 풀렸다.

 

저녁이 되자 배가 고팠다. 주머니에는 아끼고 아낀 용돈 삼천 원이 있었다. 평소라면 삼각김밥 한 개를 샀겠지만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 사치를 부리고 싶었다. 도서관 식당으로 가 삼천 원짜리 라면을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도서관에서 나가려는 찰나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한 시간이 지나자 바람까지 몰아쳤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족과 친구에게 전화하더니 하나둘 사라졌다.

 

나는 우산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가려면 우선 비탈길을 내려가야 했다. 숨을 한번 내쉬고 그대로 뛰었다. 어깨는 다 젖었지만 무사히 도착해 버스에 올라탔다. 교통 카드를 찍는데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쫓기듯 버스에서 내려 보육원을 향해 걸었다. 도착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온몸은 물론 가방 안의 문제집까지 몽땅 비에 젖었다. 하늘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보았으나 비가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교통비를 낼 수 있는 돈으로 라면을 사 먹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삼천 원밖에 없는 현실도 미웠다. 우산 가져와 달라고 말할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도 서러웠다. 길가에 우산 없이 젖은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도 창피했다. 혼자여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었는데 고작 비 하나에 모든 마음이 무너진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

 

그때부터 비관적으로 살았다. 외국어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에도 합격했지만 긍정적인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돌려 다른 사람을 보니 모두 똑같았다. 누구에게나 비는 내렸으며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어린 날의 내게 내린 비는 유독 거셌고 하필 그때 우산이 없었을 뿐이었다.

 

어엿한 어른이 된 나는 우산을 살 수 있는 능력과, 고난이 닥쳐도 굳건하게 헤쳐 나갈 힘이 생겼다. 함께 길을 걸어가는 애인도 만났다. 바로 눈앞에 정답이 있는데 오랜 시간 스스로 불행하고 고독하다고 여긴 내가 바보 같았다.

 

누군가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애인이었다. 우리는 같이 비를 피했다. 비 내리는 하늘이 크고 넓다고만 생각했는데, 우산 아래서 고개를 드니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았다. 우산이 먹구름 없이 화창한 나만의 작은 하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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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2023. 09. 14

    너무 공감가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박영*2023. 08. 10

    긍정적인 마음가짐 하나만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힘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애인분은 좋으시겠어요 긍정적인 분을 만나셨으니 앞으로도 행복하세요~

  • 김민*2022. 06. 29

    사랑합니다,,,지나가는 날속에  우리사람들모두가  다  그런 날들이 업는 이가 업던데여,,ㅎㅎㅎ 그래서  사람으로 사는 동안이라는 말이 맞는듯이   젊은도  지나가고  이만큼이나 와보니  이제서야   여기사람사는데는 여행같이,,소풍처럼   이라고들 말하는  현실에서  하루에 충실하자  소박단순순리되루  ,,,사랑하자라는  말을 하며  ,,,,,  여기에서 글을 보며 웃어봅니다,,감사합니다   잘읽고 갑니다,,,지금은 장마중,,,,

  • 김민*2022. 06. 01

    사랑합니다   잘읽고갑니다  해피오후되세요

  • 호*2022. 05. 23

    어린 날의 란조님에게 우산 씌워주는 상상을 해봅니다. :) 따뜻하고 건강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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