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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자유롭고 별처럼 당당하게 (제4회 청년이야기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6월 11일 14시 08분

제4회 청년이야기대상 대상(2019년)

제목 : 바람처럼 자유롭고 별처럼 당당하게

수상자 : 김예슬 님

 

 

 

가을장마와 태풍 ‘링링’이 지나고 일주일 만에 밭에 갔다. 비를 흠뻑 맞은 풀과 덩굴이 줄기를 쭉 뻗고 느긋하게 자라 있었다. “착착착착 착착착착.” 박자에 맞추어 낫질을 했다. 지난해에 급하게 일하다 손가락을 베인 뒤로 조심조심 낫질하는 기술이 늘었다. 내 손에 들린 호미나 괭이, 삽과 낫을 보면 어릴 적부터 들었던 “여자가 무슨.”이란 말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첫 번째 기억은 엄마 손을 잡고 내복을 사러 간 때였다. “딸이 입을 내복 사러 왔어요.” 엄마 말에 가게 아주머니는 ‘7세 여아’라는 스티커가 붙은 분홍색 내복을 보여 주었다. 나는 엄마 손을 당기며 “분홍색 말고 파란색!” 했다. 아주머니가 얘기했다. “여자 내복은 다 분홍색이야.” 그럼에도 엄마는 파란색 내복을 사 주었다. 여자 색, 남자 색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서.

 

그 뒤로도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은 늘 나를 막아섰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축구를 하고 싶은 내 마음과 상관없이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피구를 해야 했다. 남자아이들이 나를 축구에 끼워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옹기를 만들고 싶다고 하자 힘이 많이 든다며 도자기 정도가 어떻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한옥을 짓고 싶어 건축 현장을 기웃거리면 목수 아저씨가 “여자가 할 일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에도 “여자 혼자서는 어림없어.”라는 말을 듣고 또 들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에는 여자라서 안 되는 게 참 많았다. 더 이상 그런 말 때문에 원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농사를 시작할 때 가장 응원해 준 사람은 파랑 내복을 사 준 어머니와 아버지다. 부모님이 나를 믿어 준다는 사실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어느새 육 년째 산골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산다. 나는 밭에 서 있는 내가 멋있다. 우리 식구가 먹을 양식을 스스로 심고 가꾸는 일이 내 삶을 더 당당하게 한다.

 

처음엔 물을 가득 채운 물뿌리개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해 비틀거렸다. 밭에 거름을 넣을 적마다 낑낑댔다. 동네 어르신들은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그래 농사짓겄나?” 했다. 나는 ‘여자라서’가 아니라 ‘안 해 본 일이라 서툴 뿐’이라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런저런 몸살을 앓는 나에게 이웃 마을에서 십삼 년째 혼자 농사짓는 은실 이모가 “나도 처음엔 그랬어.” 하고 말해 주었다. 무거운 거름 포대도 나르고, 삽질도 푹푹 시원하게 해내는 이모에게도 서툰 처음이 있었단다.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이제는 나도 일머리가 꽤 생겼다. 괭이질과 삽질을 잘한다는 말도 듣는다. 물뿌리개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거름 포대도 손수레에 척척 실어 나른다. 그렇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한다.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수록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모든 걸 혼자 해내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누구나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니 말이다. 여자라서가 아니라, 곁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도움받는 것이면 좋겠다.

 

나는 언제까지나 산골 마을에서 바람처럼 자유롭고 별처럼 당당하게 살고 싶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을 한 삽 한 삽 뒤엎고, 그 자리에 환한 꿈을 심어 가꿔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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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2022. 06. 29

    홧팅!!!!! 가보고싶은  하고싶은,,희망사항인 우리는 현재 도시에서 생활중이다보니  한글한글 읽으며  부럽습니다,
    자유,,여자,,무조건  아직은 우리나라의 고정관념적인  남존여비가 남아잇어서이고,,,산골은 더 하여도,,,그래요,,한 사람이라는거,,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동등해야하고 평등해야하는데   여기 도시는 더하지여,,그치만 그거는 농촌은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싶으면 할수잇고 하기 시러믄  잠시 쉬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조차나요,,부럽부럽습니다.
    퇴직한 남편덕에  집서 삼식이 밥해주는 삼순이 하고 잇고  어디를 가려고 해두  아이들 키우며  정신 업을 때하고는  지금은 넘  나이가 마이 묵어서인지 늦어지고,,시러지고,, 지치고 아프고를 반복하지만   늘상 희망사항이지만  여전히 부러웁기만 할수밖에지만  환경에 적응은 잘해서 언젠가는 하며  부러워만해봅니다,,,그리고,,,한사람  한여자,,,한 농부되신거 추카합니다

  • 최*2021. 09. 10

    멋있어요 

  • 우물***2021. 03. 25

    벌써 이루셨습니다~~당신의 꿈^^*

  • 유피*2021. 02. 16

    멋지네요, 응원합니다

  • 나비*2021. 02. 14

    좋은 글이네요 :) 공감도 많이 됩니다.

  • 심예*2020. 08. 27

    읽다가 눈물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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