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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다 (제 3회 청년이야기대상 대상 수상작)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6월 11일 14시 08분

제3회 청년이야기대상 대상(2018년)

제목 : 길을 잃었다

수상자 : 이민정 님

 

 

 

길을 잃었다. 고향을 떠나 5년간 산 경기도 오산이 지겹고 답답해 새 출발 하는 마음으로 수원에 자취방을 구하러 가는 참이었다. 초행길이었으나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면 되는, 한 시간 반 남짓 거리라 자만했나 보다. 수원 어딘가에서 내려 환승할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번호도 두세 번 확인했고, 나의 목적지도 버스 머리에 크게 적혀 있으니 더는 의심 않고 탔다. 안내 방송에 귀 기울인 채 창밖 풍경에 시선을 두었다. 한참을 달려도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버스는 점점 변두리로 향했다. 타는 사람도 없고 그나마 있던 승객들도 정류장마다 내렸다. 어느새 기사님과 나만 남았다. 버스는 인적 없는 동네를 그저 달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길에 나의 목적지는 없구나…….’

 

수치심에 몸이 떨렸다. 서른 살이나 먹고 버스를 잘못 탄 걸 기사님이 눈치채면 어쩌나. 속으로 비웃진 않을까. 태연히 벨을 누르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까. 기왕지사 끝까지 가 볼까. 그럼 말로만 듣던 ‘버스 종점’이 나올까. 생각들이 끝도 모르고 엉겨 붙는 사이 버스는 영 어울리지 않는 곳에 섰다. 키 작은 아파트 몇 동이 모여 있는 한적한 동네 일각이다. 노선의 반환점 같은 곳인가 보다. 맞은편으로 건너가 탔어야 했다. 시동을 끄고 일어난 기사님이 꿈쩍도 하지 않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데 갑니까?”

“…… 법원 사거리요.” 

“타고 있으이소.”

 

기사님은 길 건너 작은 슈퍼마켓으로 들어갔고 난 덩그러니 남겨졌다. 버스 안 가득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모두 각자의 목적지를 막힘없이 찾아갔다. 스마트폰에 집중하다가도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하면 제때 올라탔다. 머리를 휘청거리며 단잠에 빠지거나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는 이는 없는 듯 보였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오직 나만이 서툴렀다. 모든 것에 세련되고 태연할 줄 알았던 서른 살의 나는 낯선 동네 시동 꺼진 버스 안에 홀로 앉아 울음을 참았다.

 

지방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고 경기도 오산으로 올라와 버틴 시간이 5년. 번듯하고 안정된 직장에 대한 욕망도 없었다. 교육원에 등록한 뒤 공부하는 동안 쓸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자 부품 공장에서 2교대로 일했다. 어느 해에는 야간에 12시간씩 일하며 잠도 자지 않고 두 시간 반 거리의 교육원에 다녔다. 힘든 줄 몰랐다. 30대는 아직 멀었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곧게 뻗은 길을 그저 열심히 걸어가면 될 줄 알았다. 

 

터널이면 이때쯤 작은 빛이 보일 텐데, 막장이었나, 점점 더 깊은 어둠을 느꼈다. 내가 지쳤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많았다. 여기저기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작법은 똑같은데 영화 시나리오나 써 볼까 하다가, 작사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실용 음악 학원을 다닌 적도 있다. 이름난 코미디 쇼의 구성 작가 면접을 보러 간 날은 짙고 검은 추위에 그저 섧었다.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서너 계절간 내 곁에 머물렀다. 그렇게 5년을 흘러 도착한 곳은 넓이도 깊이도 짐작할 수 없는 먼 바다와도 같은 곳이었다. 사위(四圍)가 뚫려 어느 쪽으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듯 보이나 난 그 어디로도 출발할 수 없었다. 적도의 바다였나 보다. 파도가 없었다. 내 안에서 더는 어떤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요하고 쓸쓸했다. 나약하고 무기력했다. 있는 힘껏 손을 뻗어도 그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고작 버스 한 번 잘못 탔을 뿐인 그 사소한 일에 서러운 울음을 삼킨 이유가. 내 삶에서 길을 잃은 것을, 그날의 나는 알았나 보다.

 

기사님의 쉬는 시간은 담배 한 개비로 끝났다. 버스로 돌아온 기사님은 시동을 걸고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덤덤한 척하지만 둘 곳 잃고 떠다니던 내 시선이 룸 미러 속 기사님 얼굴에 가닿았다. 다행히 기사님은 내게 관심 없는 듯했다. 눈물은 닦아 없겠지만 부은 눈이 부끄러울 뻔했다. 요금을 다시 내야 하는지 여쭤 볼까 고민하는데 기사님이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건넸다.

 

“뻐스 잘못 타가 삥삥 도는 사람 숱합니데이.”

 

웃음조차 없이 무심한 목소리였다. 혼잣말인가도 싶은 것이 위로하려 꾸민 말은 아닌듯했다. 외려 위로가 되었다. 겨우 삼킨 울음을 토해 낼 뻔했다. 그 시절의 내가 절실히 듣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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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주*2024. 03. 13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화이팅~^^

  • 이선*2023. 10. 04

    진짜 멋진 글.. 좋은 글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메론*2023. 08. 27

    몇 년 간 읽은 글 중 가장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민*2022. 06. 01

    ㅋㅋㅋㅋㅋㅋㅋ  참마이  담담을 배웟겟네여    함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인생도  초행길이겟고  경험은 돈을 주고도 못사는거예여   천천히  릴렉스하게  한걸음씩 가면됩니다    지금은 시작이고  이보다 더한 일들은 산너머 산이라는 말처럼  일어난답니다     첫경험은 두번은 안하면되는거고    처음은 언제나 새롭고  사느데 많은 도움이 된다  여기면은,,,다시 일어나고  길은 새로운길들이 마이 생겨서  찾으면 됩니다 아닌가여   늘상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면서  내가 나에게 책직 질을 하면 지내는 줌마 도 잇는데요  ㅎㅎㅎㅎㅎ    늘  항상    다시란 말이 알맞는  조은날  다시는 오지않을  날들 모두 조은 날 되세여,,,,,나이 마이 묵어서  헉헉하면서 되돌아 갈수업는 날들에 가끔 멈추고싶어 하는 많은 날들을 보낸  사람들보다는   햇병아리      아자 홧팅!!!!!!!   소박단순 순리되루..못해고산 사랑만하자를  목표로 만들어 지내는 사람이 보냅니다    

  • 2021. 08. 1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백민*2021. 08. 09

    마지막 3줄이 소름돋다 못해 토할 뻔했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요*2021. 05. 16

    '그 시절의 내가 절실히 듣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

  • 유피*2021. 02. 16

    왜 대상인지 알겠네요, 그 시절의 나를 지나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되셨을지.

  • 뭉클*2020. 09. 12

    너무 공감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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