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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의 화해 (제1회 청년이야기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6월 11일 14시 07분

제1회 청년이야기대상 대상(2016년)

제목 : 당신과의 화해

수상자 : 김송이 님

 

 

 

학창 시절 나는 아빠가 있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방에서 담배를 피워 온 집 안에 쾌쾌한 냄새가 났고, 일주일에 두세 번 술 마시고 들어와 밤새 우리를 괴롭혔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아빠와 싸웠으나 그 끝에는 항상 폭력이 있었다. 엄마는 부서진 살림을 정리하며 언니와 내게 말했다.

 

“너희는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처럼 살지 마라. 좋은 남자 만나 존중받으며 살아야 해.”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다. 덕분에 서울에서 유학할 수 있었다. 아빠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엄마와는 매일 통화하며 서로를 그리워했지만 아빠는 명절에 얼굴 보는 게 전부였다.

 

아빠를 남처럼 여긴 지 14년이 흘렀다. 백일 된 딸과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내게 먼저 전화한 건 처음이었다. 아빠는 한 방송국의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했다.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우스갯소리로 흘려들었다. 일흔에 가까운 아빠가 예심을 통과할 줄은 몰랐다. 나는 아빠를 말리고 싶었다. 꼴찌 할 게 뻔한데 주변 사람들이 방송 보는 게 창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묻어났다.

 

나는 차마 말리지 못하고 방송국에 응원하러 갔다. 무대 위 아빠를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멀리한 시간만큼 아빠는 늙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피부는 검어지고 어깨는 굽었다. 통풍을 앓아 다리까지 절었다. 내가 미워했던 아빠는 무섭고 강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가여운 할아버지가 되었다.

 

녹화가 시작되고도 아빠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더구나 아빠는 한 문제도 맞히지 못했다. 순발력 좋은 젊은 사람들이 먼저 맞히는 바람에 아빠에겐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화끈거리는 내 얼굴이 방송에 나갈까 봐 신경 쓰였다.

 

그때 꼴찌였던 아빠가 가까스로 한 문제를 맞혔다. 진행자가 축하하며 아빠에게 출연 동기를 물었다.

 

“얼마 전 우리 작은딸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애들이 어렸을 때 좋은 아빠가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죽기 전에 좋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빠가 저런 말도 할 줄아는 사람이었나?

 

“그렇군요. 그래서 손녀를 위해 금연도 하시는군요?” 

“네, 삼십 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손녀가 태어난 순간부터 끊었습니다. 녹화가 끝나면 손녀를 보러 갈 텐데 꼭 안아 주고 싶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 딸을 위해 담배를 끊고, 좋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아빠. 그렇게 미워하고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아빠는 외로웠던 게 아닐까? 가족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닐까? 그제야 사무치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꼈을 한 늙은 가장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1등 해서 우리 손녀 용돈이라도 주려 했는데……. 꼴찌 해서 미안하다.”

 

녹화를 끝낸 아빠의 말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아니에요……. 잘하셨어요.”라는 말 밖에 못했지만 마음속으론 아빠에게 잘못을 빌었다.

 

'아빠, 그동안 외롭게 내버려 둬서 죄송해요. 제가 강해질수록 당신은 여려진다는 걸 잊고 산 딸을 용서해 주세요. 당신이 우리에게 내민 손을 모른 척하지 않을게요. 이제는 제가 먼저 다가겠습니다. 그러니 오래오래 건강히 지내세요,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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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종**2023. 08. 22

     저희 아버지도 비슷하네요 저희 아버지는 아직 멀쩡히 잘 계셔서 제가 용서 할 날이 올지 모르겠어요 

  • 박영*2023. 08. 10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한참을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엄마보다 더 자상한 분이셨지요
    원망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아쉬우시겠지만, 지금이라도 서로 표현하면서 아버지의 남은 생에 좋은 딸이 되어주세요~

  • 김민*2022. 06. 01

    생각나네여  나두 자주 늘 보는데   손자손녀들에게 약속을  해서 나왓다고 햇고  인상이 참 조앗고  그렇게 용기를 내어서 출연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을 보내기는 햇는데    여기서  이글의 주인공  태비속의 그분의 야기    이렇케 풀어가는 방법이고  이글의 쓰신분의 이야기 같은 일들은 우리들의 세대에는 허다한이야기 아닌가 해며   사는 방법은 어디에도 다름이 업고   사람사는 볍은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어깨무거움에 대한건  볍으로 정한게 아닌   사람  남자로써의  살아오는동안   배우고 익히고 그리고는  자기가 선택을 하여서  힘이들어도 해야되고  하고싶고  하면기분조아지기에  하는 겨엿고   여자 엄마또한 그래 그래  묻어가는게  당연한 거인거를   이제서야 알게되어서   ㅎㅎㅎㅎ 늘지  않케 고백할수잇어서 조코   사랑하는 볍에는 아무런 이유나 변명이 업는것 같터군여    늦기전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피해갈수엽는     태어남과 죽음   그곳에     가기전에  줄수잇는 시간이 잇을때 눈앞에 보여줄때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나아주고 길러주신  존재의 의미를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보세여    이글을 적는 나두  좀  잇음 60십이 되어서  알게되엇네여 ㅎㅎㅎㅎㅎ  지금은  하루하루를 소작단순 순리되루 늘기전에  마이마이  사랑만하려구여  ㅎㅎㅎㅎ 내사랑은 무조건입니다   사랑합니다  

  • 안혜*2022. 05. 13

    으엉 눈물나요..

  • 감*2021. 09. 01

    눈물이 나네요.
    부모님께 감사함 잊지 않고 살수있는 하루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피*2021. 02. 16

    아버지의 변화와 과거에 머물게 된 나는 비단 한 사람의 일만은 아니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 민트**2020. 09. 16

    아버지께서 변하려고 노력하시는 게 보여서 감동적이네요ㅎㅎ 그렇다고 송이님께서 먼저 다가가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예전일이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하셨던 행동이 옳았던 것은 아니니까요. 그치만 이제는 서로 이해할 수 있을 나이가 되었고, 이제라도 노력을 해서 나아가면 그걸로 되는 것이겠죠ㅎㅎ

  • 지혜**2020. 09. 14

    잘 읽었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

  • 브륄*2020. 09. 06

    눈물이 나네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슬픈 것 같아요. 저도 부쩍 늙어보이는 아버지를 보면 싱숭생숭하네요..

  • Te**2020. 08. 12

    저도 울컥 눈물을 흘렸습니다.
    첫 문장이 마치 제가 어린 시절 썼던 일기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아 놀랐네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제가 느꼈던 감정과 너무 닮아서 더 공감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글이란 것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잔잔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줄 몰랐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cj***2020. 08. 11

    "엄마"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도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아련함이 있지만  "아부지"라고 부르기 조차 어색한 우리 아부지.. 이제 우리 곁을 떠나고 나서야 아부지의 고단함과 애잔함을 느낍니다~~~

  • 김순*2020. 08. 04

    눈물흘렸어요
    무언가 뭉클하며 목이 메여서 잠시 심호흡해봅니다.
    저에게도 작가님과 비슷한 아버지가 계셨더랬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 주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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