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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팔아요(제18회 생활문예대상 금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 편집부
작성 일시 2023년 06월 08일 14시 18분

김경훈 님

 

사기꾼에게 속아 집이 거덜 난 적이 있다. 요금이 밀려 전기와 가스도 끊겼다. 돈이 급했던 나는 길거리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무언가를 파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붙임성도 없어 손님과 눈 마주치는 것도 힘겨웠다. 헌책을 한 권 사 와서 펼쳐 놓고는 고개를 파묻었다. 책에 빠져들 때면 온종일 손님이 없어도 우울한 기분이 좀 덜했다.

 

종일 장사를 하고 새벽에는 물건을 사러 도매 시장에 갔다. 자리를 비운 사이 물건을 훔쳐 가는 사람이 있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시간이 아니면 좋은 과일을 받기 힘들었다. 신기하게도 도둑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다 자리로 돌아오면 과일 몇 개가 없어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빈 바구니에 물건값을 치르고도 남을 액수의 지폐가 어김없이 놓여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 나는 사람을 ‘기적’이라 믿기 시작한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사가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제철 사과의 덕을 톡톡히 봤다. 

 

나는 호기를 부려 하우스에서 재배한 딸기를 한 팩 사 왔다. 비쌌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예쁘고 탐스러웠다.

 

딸기는 사흘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았다. 걱정스러웠지만 보기에 멀쩡해 그대로 뒀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얌전히 놓인 새빨간 녀석들이 어떻게 되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 걱정을 알기라도 한 듯, 어떤 중년 남성이 딸기를 사러 왔다. 가격이 비싸다고 만류했는데도 집사람이 무조건 사 오라고 했단다. 며칠 내내 불안을 안긴 딸기는 마침내 임자를 찾아갔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도시락을 갖고 올 시간이라 버스 정류장 쪽을 내다보았다. 그때 한 여자 손님이 찾아와 불쑥 바가지를 내밀었다. 

 

“이것 보세요. 이런 걸 어떻게 먹어요?”

 

바가지에는 온통 물러 터진 딸기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일부러 남편까지 보내 샀는데 어떻게 이런 걸 팔 수 있죠?”

 

정신이 아찔했다. ‘아! 과일 장사는 이제 끝이구나.’

 

하필 그때 다른 손님이 와 사과 가격을 물었다. 일단 그 손님에게 양해부터 구했다. “제가 물건을 잘못 팔아서요. 지금 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눠야 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바쁘시면 다른 가게에 가 주실 수 있나요?”

 

새 손님은 괜찮다며 사과를 고르기 시작했다. 화난 손님을 대하는 내 태도를 살피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딸기를 가져온 손님에게 사과하며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했다. 내심 환불을 요구하기를 바랐으나 손님은 다른 과일을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사과를 원했다. 나는 봉지에 사과를 담기 시작했다.

 

“그만하면 됐어요! 그렇게 많이 주면 뭘 팔려고…….” 

 

손님이 말리지 않았다면 모조리 담을 생각이었다. 딸기가 썩어 가는 줄도 몰랐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런 정신머리로 무슨 과일을 팔겠다고.’

 

고개를 들어 손님의 얼굴을 살폈다. 새빨개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어머니랑 두 분이 밤낮없이 일하는 거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 믿었는데…….”

 

손님이 차분해질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다가 말문을 열었다. 

 

“딸기가 조금 상했지만 그 부분만 도려내면 드실 수 있을 거예요. 그냥 버리기엔 비싼 딸기가 너무 아깝잖아요.”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과를 받았다. 그때까지 기다렸던 다른 손님도 사과를 사 갔다. 

 

두 손님을 모두 보낸 뒤 다리가 휘청였다. 이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던 어머니가 내게 도시락을 내밀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나중에 온 손님이 먼저 온 손님보다 사과를 더 많이 사 갔다고 했다.

댓글 쓰기
  • yk******2024. 03. 18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객은 왕이다. 고객으로 모시면 장사 잘되지 않을까.

  • 별지*2024. 02. 11

    읽는데 눈물이 핑 돕니다. 저도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어서 그 마음이 더 와닿은 것 같아요. 

  • 조은*2024. 02. 07

    글쓴이분과 손님들 모두 좋은 사람이신게 느껴져서 뭉클하고 따뜻해요

  • jh****2024. 02. 06

    멋져요~~

  • 김경*2024. 01. 03

    좋은 말씀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최은*2024. 01. 03

    말없이 사과를 고르던 손님은 글쓴분이 너무 안스러웠나보네요 그런 안스러운 마음을 사과를 많이 사시면서 응원해주셨나봅니다^^  
    좋은 과일 또 부지런히 놓으시면 그런일들은 잊혀질거같아요^^  응원을 기억하시고 힘내시길빕니다

  • 양승*2023. 12. 12

    괜히 가슴이 먹먹하네요..

  • 차진**2023. 12. 08

    댓글이 왜 없죠?
    난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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