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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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거지 메이트(제18회 생활문예대상 금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 편집부
작성 일시 2023년 06월 08일 14시 18분

박성혜 님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설거지를 한다. 개수대는 밤사이 식구들이 쌓아 놓은 물컵으로 가득하다. 코로나19로 온 가족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설거짓거리가 크게 늘었다. 다들 전보다 음료도 많이 마시고, 반찬도 금방 비운다. 그 모든 설거지는 고스란히 내 몫이다.

 

식구들이 깨지 않은 이른 아침, 부엌으로 가면 나를 반겨 주는 작은 꼬물이들이 있다. 바로 우렁이 한 쌍이다. 둘째 녀석이 몇 달 전 학교에서 ‘집에서 친환경적으로 키우는 생명’에 관한 수업을 듣고 데려온 것이다. 

 

둘째는 우렁이들을 플라스틱 컵에 담아 책상에 두고 열심히 관찰했다. 그러다 흥미가 떨어졌는지 이틀 만에 부엌에 가져다 놓았다. 꼬박꼬박 상추를 챙겨 주어야 하는 것도 귀찮고 냄새가 난다며 나에게 바통을 넘긴 것이다. 

 

“그깟 우렁이 며칠 살겠어?” 둘째가 우렁이에 흥미를 잃었을 때 한 말이다.

 

나 역시 우렁이를 ‘그깟 우렁이’라고 생각했었다. 잘 적응하지 못해 금방 죽을 것이라 여겼다. 

 

생각과 달리 우렁이들은 상당한 존재감을 뽐냈다. 커다란 상추 한 장을 반나절 만에 먹어 치우는가 하면, 똥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누었다. 모래 사이사이 까만 똥이 보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냄새는 또 어떻고! 부엌에 가면 썩은 민물 냄새가 풍겨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돌아서면 밥 달라며 칭얼대는 아이를 보듯, 나는 남은 상추의 양을 자주 확인했다. 부엌에 드나들 때마다 우렁이들의 크기며 움직임을 한 번씩 관찰했다. 

 

아이가 우렁이를 데려온 순간부터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나의 마음이 빠르게 움직였다. 

 

잘 잤는지 안부를 물으면 우렁이들은 특유의 악취로 속사정을 내보였다. 밤새 본인들이 배설한 까만 똥만큼 자라 있을 땐 반가워서 말을 건다. 

 

“너희들 성장 속도가 무섭구나. 아이쿠, 나도 잡아먹겠어.”

 

시답지 않은 혼잣말을 건네고 설거지에 집중하다 보면 슬금슬금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된다. 우렁이 두 마리가 시합이라도 하듯 컵 꼭대기를 향해 사력을 다해 올라간다. 

 

컵 열 개를 헹구는 동안 정상을 탈환하고 바닥으로 미끈하게 떨어지는 우렁이들. ‘놀이를 하는 걸까? 나에게 보여 주고 싶은 걸까?’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우렁이들은 두 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궁금해서 검색도 해 보았다. 폐로 호흡하는 우렁이는 배가 부르거나 물속에 산소가 적으면 밖으로 나온단다. 배가 불러 운동하는 것이리라. 내가 이 아이들을 굶긴 적은 없으니까.

 

부엌일을 하는 틈틈이 우렁이의 동향을 살핀다. 우리는 적어도 하루에 네 번 이상은 마주하고 이야기를 한다. 남편보다 자주 눈을 맞추는 사이다. 

 

나의 집안일을 살펴봐 주는 우렁 각시. 밤이 되면 물 밖으로 나와 덤벙거리는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곳을 미끈한 살점으로 닦아 주는 건 아닐까 상상하며 피식 웃는다. 

 

나에게는 과제만 쌓이는 공간에 바람 빠진 미소를 안겨 주는 두 우렁 각시는 나의 진정한 설거지 메이트다. 

 

‘언젠가 1인용 된장찌개에 넣어 먹겠다는 나의 생각을 읽었다면 미안해요. 각시님들과 눈을 맞추며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꽤 괜찮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 줄래요? 싱싱한 양배추며 상추가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구비해 놓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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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h****2024. 02. 06

    구순이 넘은 저희 친정엄마도 우렁이를 키워요.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대화하는 반려생물이 되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 장영*2023. 12. 14

    저도 동물을 좋아한답니다.
    우렁이 각시가 괜히 있던 전설이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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