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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버스 운행 마지막 날(제17회 생활문예대상 금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 편집부
작성 일시 2022년 09월 08일 10시 17분
최홍연 님 

 

경남 남해군에 적량 마을이 있다. 이곳은 스쿨버스가 서는 마지막 정류장이다. 버스 운전석에는 나, 내 뒤에는 학생들이 앉았다. 이곳 아이들은 가장 일찍 버스를 타고, 제일 늦게 버스에서 내렸다.


수년 전, 적량 마을 정류장에 1학년 신입생 꼬마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서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아이가 낑낑거리며 준비물 봉투를 들었다. 나는 얼른 내려가 아이의 봉투를 들어 주었다. 까까머리에 발그레한 볼이 유치원생같이 앳되었다.

 

아이는 버스에 오르자 힘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기사 선생님!” 나는 명단을 확인하고 답했다. “그래, 안녕. 네가 동민이구나.” 운전석 뒷자리에 앉은 동민이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운전석 쪽을 봤다.

 

 

차량 보호 탑승자 선생님이 동민이의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찰칵.” 버스 문을 닫고 핸들을 돌렸다. 꼬불꼬불한 적량 고개를 넘어 응달진 산길을 내려갔다. 한참을 달리면 비로소 양지바른 논밭이 펼쳐졌다.


버스에 학생들의 숨결이 가득 찼다. 차창에 하얀 성에가 끼면 동민이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커다란 원. 그 위에 다시 조그만 원 두 개. 커다란 원에 콕콕 두 점. 아래에 오목한 입 모양. 곰돌이가 완성될 즈음 스쿨버스는 학교에 도착했다.


동민이는 입학하는 날부터 혼자였다. 나는 내려서 동민이의 가방을 들었다. “자, 가자. 들어 줄게.” 동민이가 내 손을 잡았다. 함께 교실로 들어가 담임 선생님에게 동민이 부모님이 바빠 혼자 왔다면서 가방을 건넸다. 동민이는 맨 앞자리에 앉아 내게 꾸벅 인사했다. 나는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며 나왔다.


초등학교 스쿨버스를 운전하며 아이들 학교생활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만나면 “안녕, 어서 오렴.” 하고, 내려 줄 때에는 “잘 가, 내일 보자.” “주말 잘 보내.” 하고 인사했다.


동민이가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그날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기사 선생님, 있잖아요, 오늘 글쎄 제가 상장을 받았는데요.”

“그래? 무슨 상인데?” 

“효도상이요. 제가 동생도 잘 보살피고, 엄마 아빠 오실 때까지 밥도 잘 챙겨 먹고, 숙제도 열심히 하고, 오시면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해서요.”

“우리 동민이 대단하구나. 학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상장도 받고 정말 착하다!”


2년이 흐르고, 겨울 방학식 날이었다. 내일부터 스쿨버스는 얼마간 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을 끝으로 스쿨버스를 떠나야 했다. 다른 데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남해 적량 바닷가에 눈발이 흩날렸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눈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초코파이를 돌리며 인사했다. “얘들아!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제 나랑 볼 수 없어. 곧 다른 분이 오실 거야. 잘 지내라.” 한 명 한 명 내릴 때마다 품에 꼭 안아 주었다.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했다. 동민이가 내리면 안아 주려는데, 동민이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고개 숙인 채 두 손을 꼭 쥔 채였다. “동민아, 왜 안 일어나니?” 동민이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스쿨버스에 남은 마지막 학생, 동민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기다렸다.


“동민아~.” 다시 한번 동민이를 다정히 불러 보았다. 그러자 동민이가 벌떡 일어나 내 옆으로 쏙 뛰쳐나갔다. 마치 화난 것처럼 후다닥 내렸다. 나는 쓸쓸히 운전석에 앉았다. 버스 문을 닫고 천천히 출발하려는 차 동민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가야 하나?’ 망설여졌다. 동민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 ‘가야겠지.’ 하며 핸들을 돌렸다. 동민이가 돌연 돌아서서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놀라 버스를 세웠다.


동민이가 별안간 소리쳤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러면서 큰절을 했다. 동네가 떠나갈 만큼 우렁찬 목소리였다. 차가운 눈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길바닥에 엎드려 고개 숙였다. 그러고는 일어나 크게 손을 흔들었다. 눈물이 흘러내려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버스에서 겨우 내려 동민이를 안았다. 동민이가 내 품에서 흐느꼈다.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 선글라스를 벗을 수 없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겨우 출발했다. 백미러로 동민이가 손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눈 내리는 적량 고개를 힘겹게 넘었다.


이후 차창에 그려진 곰돌이가 보고 싶어 두어 번 적량 마을에 갔지만, 눈 내리는 정경은 볼 수 없었다.


“기사 선생님, 잘 지내시죠? 저 상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몰라요.”

“그래? 우리 동민이 정말 최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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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2023. 04. 09

    기사일을 하시면서 참 보람 되었겠네요
    동민이는아마 멋진 청년으로 자랄것같아요

  • 황윤*2023. 03. 27

    아이의 순수함이 느껴져 더 감동입니다..

  • 김수*2023. 02. 16

    글 감사합니다
    감동적이네요

  • 김효*2023. 02. 11

    동민이가 어떤 훌륭한 청년으로 자랐을지 궁금해지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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