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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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빛낸 6월의 신부(제16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 편집부
작성 일시 2021년 04월 20일 16시 34분

최영식 님 

 

1966년 6월. 환한 빛을 내며 22세의 신부가 내게 왔다. 혼자서 두고두고 보고픈 신부였는데, 결국 생활의 여인으로 돌아간다. 고운 저고리, 치마도 거추장스럽다 벗어 버리고 다른 여인 틈에 끼어 까르르 웃기도 한다. 나 때문이다.

 

서울 청계천의 평화 시장을 돌아보는 도중 옷값이 내가 운영하는 양장점과 양복점에서 파는 값의 반의반인 것을 보고 놀랐다. 맞춤옷을 고집하던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정신을 놓고 겨울옷 50여 벌을 매입했다. 내 가게 ‘호산나’에 내려놓자 어머니도 아내도 놀랐다. 옷을 만드는 사람이 기성 옷을 몽땅 사 왔으니. 이윤만 생각했지 판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싸다 하더라도 우리 의상실 앞에 진열해 팔 수는 없었다. “에이라! 이 속없는 사람아! 아무리 싸다 하드라도 그렇지. 어쩌자고? 이를…….”

 

어머니의 성화에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나섰다. “어머님! 제가 팔아 볼게요. 멀리 시골 동네 남모르는 곳에 들어가 팔아 볼래요.” 아내는 이 옷들을 팔지 못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을 훤히 내다봤다.

 

“무슨 소리여? 네가 어떻게 이걸 가지고 나가? 말도 안 된다. 버렸으면 버렸지.” 어머니는 단호했다. “영식이 네가 처리 못하면 그냥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줘라.”

 

이튿날 새벽, 천사 같은 아내는 스카프로 머리와 귀를 단단히 싸맸다. 큰 옷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나를 향해 말했다. “나, 갔다 올게요!” 가슴이 터져 버리는 것 같았다. 의상실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에 부끄러웠고 스스로를 원망했다.

 

아내는 당당하게 나섰지만,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겼을 것이다. 어디 후미진 곳에 보따리를 내려놓고 앉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있는지 모른다. ‘왜 이런 사람과 결혼했나!’ 후회하다가 엉엉 울고 있는지도. 눈물범벅 된 얼굴을 그리다가 나도 울었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결혼까지 해서 아내에게 이 고통을 준단 말인가. 이 추운 날씨에 어디서…….’ 그냥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어느 틈에 해가 사라졌다. 사방이 어둑해지고 추워지자 나는 더 주눅 들었다. 의상실 문이 열리고 아내가 들어왔다. 하루 동안에 춥고 지쳐 얼굴이 핼쑥해졌다. 나는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저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버렸다. 어머니는 어린 며느리에게 미안해하며 “아가! 고생했다. 얼마나 추웠냐? 이리 불 가까이 앉아라.” 하고 앉아 있던 자리를 내주었다.

 

“어머님! 제가 그 옷 다 팔았어요.”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빈 보자기를 들어 보였다. 어머니도 나도 아내를 따라 웃었지만, 가슴이 시리고 아팠다. 이 많은 물건을 머리에 이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하고 슬펐을까. 그 아픈 순간들이 내 가슴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래도 아내에게선 원망하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았다. 소녀처럼 방실대며 팔아 온 경로를 말했다.

 

“처음에는 겁났어요. 대낮인데도 동네가 조용해 사람이 보이지 않아요. 한 집에 들어가 인기척을 냈지요. ‘계시오?’ 하고. 그제야 방문이 열리더니 온 식구가 내다보는 거예요. ‘저…… 따뜻하고 새 패션으로 나온 옷이어요. 한번 보고 마음에 들면 사세요.’ 그러자 주인아주머니가 그래요. ‘아이고, 어서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라도 녹이고 가요.’ 정말 추워 염치 불고하고 들어갔어요. 옷을 펼

치자 아저씨가 맨 먼저 잠바를 입어 보고 다 큰 아들 둘도 흡족한 듯 하나씩 입어 보는 거예요. 꼬마들에게는 맞는 옷이 없어 미안했지요.”

 

이렇게 팔고 온 이야기를 흔연스럽게 말했다. 아내는 45년 동안 내 앞을 밝히고 삼 남매를 다 키웠지만, 자신은 편안하지 못했다. 그냥 앞장서서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9년 전 나만 남겨 둔 채 떠나 버렸다. 시방도 아내가 마실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기다려진다. 그러나 떠나 버린 아내는 십여 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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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종*2024. 02. 09

    인생길이란,
    무언가를 남겨두고 가는 길
    그리움을 남기고 가면 좋으련만...

  • 김민*2022. 06. 27

    사는 동안은 모두들 그리살아여   남편이 못하면 아내가 하고 부모가 못하면은 자식들이 하고 그래서 가족인거 아닌가여,, 사는 동안은 행복하엿을듯 하네여  ..부부가 사는동안 한곳을 가치보고 가치 걸어가는거 참 부럽엇는데   ㅎㅎㅎ 사는게 그게 정상이고 순리이고 기본 아닌가하네여,,,ㅎㅎㅎ 조앗던것은 마음에 돌에 세기고,,미움은 모래에세기라는 말처럼   행복햇엇던거만 추억하며  모두가야하는 그길을 찾아기시지 마시고 천천히 조심히 건강하게 사시기를 바램합니다,,,사랑합니다

  • 이성*2022. 02. 15

    와.. 절절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최현*2022. 02. 08

    눈물이나는 좋은 글 인것 같습니다 아내를 반드시 찿길 바랍니다

  • 물음*2022. 02. 08

    9년전에 떠난 아내를 곡 찾길 바랍니다

  • 물음**2022. 01. 29

    독자의 눈물을 빼는 좋은 글 읽고 갑니다ㅎ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하셨군요 부럽습니다! 비록 전 34세 모쏠이지만, 제 연인이 어딘가는 있으리라 믿으며 선생님과, 선생님 어머님, 그리고 어여쁘시고 알뜰하셨던 사모님을 본받겠습니다.

  • 이경*2021. 10. 03

    생활이 안정되면 잘 해 줘야지 착한 남편 들 의 마음은 다 그럴 걸 요. 하지만 하늘의 부르심은 언제 어느 때 누가 먼저 불려갈지 모르거든요. 그저 건강할 때 조금만 욕심 내며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에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이 인간의 가장 비싼 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참 부인 복은 많은 분이네요.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 하시고 가신 분 존경스럴네요.

  • gr***2021. 08. 17

    이렇게 만날 수 있는 하늘과 땅이라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안타깝게도 먼저 별이 되어버린 반쪽
    오늘도 변치않은 사랑으로 가족들을 비추고 있을 것입니다
     

  • 꽃*2021. 07. 20

    눈물나도록 아륻다운 아내분 ..두고두고 보고픈 아내를 다음 세상에선 영원히 볼수 있길 바래봅니다~

  • 돼토*2021. 05. 14

    열심히 살다 가셨네요. 
    남아 계신 분도 열심히 사셨으면 하는 바램 가져 봅니다.
    우리네 삶은 아직은 살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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