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장바구니0

밤길(제14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9시 55분

김동규 님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나이 오십에 처음으로 이력서를 썼다. ‘끼니 걱정을 해야 할 형편에 더 이상 그림 재료를 구할 수 없다.’라는 건 변명이고, 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사는 일에 지친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이쯤 했으면 할 만큼 한 거야.’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작업실을 정리하고 2교대 부직포 생산 공장에 취업했다.

 

내가 하는 일은 부직포 재료인 원사를 종류별로 계량해 기계에 넣는 것이다. 생산 시스템이 자동화되지 않아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보니 육 개월을 버티는 사람이 없단다. 아니나 다를까, 일을 시작한 지 겨우 일주일 만에 젓가락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팠다. 손톱 주위엔 거스러미가 생기고 피가 맺혔다. 

 

의자에 똑바로 앉기 힘들어 복대를 두르고 밥을 먹을 적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살려고 파리 유학까지 다녀왔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였다.

 

동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언제까지 출근할 것인가.’ 내기를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었다. 삼 년간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산 덕분에 지금은 전반적인 생산 공정에도 참여할 만큼 일에 적응했다.

 

지난해 12월, 젊은 시절 함께 유학한 옛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식이 끊긴 지 꼭 이십 년 만이었다. 내 연락처를 수소문하느라 애를 먹었다며 “지금 있는 곳이 어디야? 우리 만나야지!” 하며 목청을 높이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나를 어떻게 보여 줘야 하나, 두렵고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약속을 취소하려 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역에 도착해 군중에 섞여 있는 친구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친구는 눈앞에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두리번거리며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반가운 만큼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선명한 청춘의 기억 앞에 지금 내 모습이 서글펐다. 저녁을 먹는 동안 친구의 얼굴에 언뜻 찬 기운이 스치면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니.’ 하고 나를 동정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도록 둘 걸 그랬다.’ 

 

가슴 저리게 후회하며 친구를 밤 기차에 태워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왔다. 가로등이 길을 훤히 비추었지만 마음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피카소를 꿈꾼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행복하면 좋겠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지만, 막상 그 꿈에서 깨고 보니 현실이 악몽 같았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워 있는데 친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자네를 보며 나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네. 고마워, 자네는 역시 멋진 친구야.”

 

열등감과 패배 의식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야간 근무를 하다 보면 유독 시간이 더디게 가는 날이 있다. 아무리 일해도 끝이 없고 도무지 날이 밝을 것 같지 않은 날. 친구를 다시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서 메모지에 적어 놓았다.

 

“아무리 깊고 어두운 밤이어도 그 끝은 언제나 새벽이었네. 우리 지금까지 그 길을 오십 년 넘게 걸어오지 않았나. 몇 번이고 넘어져도 괜찮네. 길이 어두워서 그런 걸 어쩌겠나. 다시 일어나 걸으면 그뿐이라네.”

  

댓글 쓰기
  • jh****2024. 02. 16

    길이 어두워서 그런 걸 어쩌겠나. 다시 일어나 걸으면 그뿐이라네.”
    감동적인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 빨간**2024. 02. 14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림은 포기가 아닙니다
    더 좋은작품을 위한 동기부여
    일자리 파이팅 합니다

  • 최병*2024. 02. 06

    인생이 배어있는 ..
    아름다운 글입니다

  • 조근*2022. 05. 28

    시작 다음에 끝이 있음을,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네요.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 이문**2022. 03. 24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내일**2022. 03. 01

    우연히 좋은생각 사이트에 들어와서 님의 글을 읽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울림을 주는 글 감사합니다.   

  • 안하*2022. 02. 16

    마음을 울리는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TE**************2022. 02. 09

    좋은글 감사합니다. ㅠㅠ

  • 이다*2022. 02. 03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장윤*2022. 01. 27

    너무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ㅠㅠ

  • 진지*2022. 01. 07

    눈물나네요..

  • 저눈*****2021. 04. 09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걸어오신 그 밤길의 고통이 얼마나 크셨을지 감히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나 자신을 드러내놓은 햇살아래의 길이 선생님을 자유롭게 해주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언젠가 돌아보면 한폭의 그림으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생생한 그림의  주인공으로 완성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 no*****2021. 03. 02

    저도 50이넘어 새롭게 물류공장에 취직을 하여 일하고 있다 얼마나 힘든지알겠다
    그런가운데 일하는 그리고 창작활동하시는 것을 볼때 나도 글쓰기에 새롭게 입문을 하는 입장이기도하니 공통점이많다
    앞으로더욱 활짝열리길 빈다..

  • 김명*2021. 03. 01

    감동입니다. 다시금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글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네요. 이 길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최*2021. 02. 26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 제주***2021. 02. 15

    고진감래라는 문구가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활동에 박ㄹ은 광명이 빛치는 날이 오리라 믿어봅니다.
    예술인들이 초창기 삶은 누구나 마찬가지로 인생역정을 안 지낸 분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이팅 하세요.
    대전유성 지족동에서 
    사학연금 수급자  김광진/제주몽생이  드림

  • 비산*2021. 02. 04

    세속을 살면서 순수예술을 지향하시는 분들의 애환을 저리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지금껏 자신의 예술세계를  오롯이 펼쳐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삶을 사셨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활동 기대하겠습니다. 파이팅!!!

  • ㅇ ***2021. 02. 04

    부럽군요
    그친구분이... 
    전 군대 가기전 1미터 76에 60킬로였는    데 세월이 흘러 1미터 78에 100킬로가 넘고 허리가 40이 넘으니 친구들과 같이나온 친구 애인들의 동정어린 시선조차도 무감각했습니다 
    머리도 나빴습니다
    참 부럽군요
    두분이...

  • 김우*2021. 01. 31

    삶의 질곡은 언제고 있게 마련이고
    그것을 벗어나야 비로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고진감래의 교훈
    감사합니다

  • 이은*2021. 01. 28

    분명 선생님께서 그리신 그림들도 글처럼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 )

  • 유현*2021. 01. 15

    응원합니다.

  • 미*2021. 01. 13

    울었어요...ㅜ

  • 지주*2021. 01. 07

     절망과 실패로 인해 뒤쳐질까 두려워 아등바등하며 사는 이 지금 가장 필요했던 글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릴*2021. 01. 05

    "아무리 깊고 어두운 밤이어도 그 끝엔 언제나 새벽이었네" 라는 문장이 제게도 힘을 줍니다. 오늘도 할 일을 묵묵히 해야겠어요. 

  • 룰루****2021. 01. 02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읽고 또 읽고 마음에 담아보고 저도 다시금 시작하 용기를 내어봅니다. 감사합니다^^

  • 라*2020. 12. 26

    눈물 흘리고 갑니다ㅜ

  • sh****2020. 10. 14

    울림을 주는 좋은 글, 그보다 더 멋진 삶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주는 글입니다.

  • 자작***2020. 03. 08

    "아무리 깊고 어두운 밤이어도 그 끝은 언제나 새벽이었네." 맞습니다.  봄을 이기는 겨울이 없듯이 지금의 힘듦도 웃으며 이야기 할 날이 꼭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팥쥐**2020. 02. 26

    괜스레 눈물이 나네요...ㅠㅠ
    맞습니다. 다시 일어나 걸으면 그뿐이지요.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삶에 언제나 행복과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 앞*2020. 02. 26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언제나 새벽이었네
    울림있는 글을 읽으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 박채*2020. 02. 20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누리*2020. 02. 18

    좋은 생각에서나 볼 수 있는 좋은 글을 잘 읽고,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 오십대들의 삶의 단편과 연륜의 무게가  어둠속에서도 파스름히 쌓여진 함박눈처럼 와 닿습니다. 

  • 이다*2020. 02. 17

    마지막 말은 지나치게 긍정적이지도 않고 그저 옳곧게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느껴져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자존심이 상처날까봐 스스로의 슬럼프에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외면하고 세뇌시켰던 제 자신이 생각나는데,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고 그걸 담담하게 극복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습니다.

  • 두루**2020. 02. 17

    생의 한가운데가 뻥 뚫린 듯 허허로웠습니다만.
    글 속에서 흔들림을 못 느꼈으니
    통달하신거지요.
    기본적인 품격 지키기가 왜이리 힘들까요!
    욕심없이 사는 이들도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요.

  • 김홍*2020. 02. 16

    멋있는 글이네요.

  • 양 ***2020. 02. 16

    흔들리더라도 넘어지지 말고 일어나서 당당하게 걸으십십시요

  • 전해*2020. 02. 14

    읽는 내내 안타깝다가 마지막 문장에 안심이 되네요.

  • 워*2020. 02. 12

    예전 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찡해집니다.

  • dn**********2020. 02. 11

    "아무리 깊고 어두운 밤이어도 그 끝은 언제나 새벽이었네. 우리 지금까지 그 길을 오십년 넘게 걸어오지 않았나. 몇 번이고 넘어져도 괜찮네. 길이 어두어서 그런 걸 어쩌겠나. 다시 일어나 걸으면 그뿐이라네." 감동적인 문장 입니다.  큰 울림을 주네요.  감사합니다.

  • 이병*2020. 02. 11

    아직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지만 미래를 걱정하는 것보다 힘이 되는 글을 읽고 나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해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지*2020. 02. 10

     저에게 너무 위안이 되고,, 저에게 너무 힘이 되는 글입니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요.. 

  • 장*2020. 02. 06

    특히 마지막 문구는 지금의 저에게 굉장히 힘이 됩니다. 정말 감사해요.

  • 고해*2020. 02. 06

    1년 전 좋은님의 글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감동 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조

  • 강현*2020. 02. 06

    아!! 감동적입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 사랑***2020. 02. 0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꿈을 포기하셨을지 짐작이 가서 공감이 많이 되네요. 마지막 글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 행복*****2020. 02. 04

    저도 다른 누군가의 용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많이 노력해야겠네요..

  • 꿈꾸****2020. 02. 04

    잘 아는 길...익숙한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로 가려고 하는 절실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 소*2020. 02. 01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를 이기는 일입니다. 감동적입니다. 우린 꿈을 쫓지만 그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이고 또 살아야하니까 타박타박 걸으면 어둔 길도 끝나고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만나겠죠. 친구분도 선생님을 보며 자신을 얻었네요. 진실만큼 큰 감동은 또한 없습니다. 우린 누구나 패배자이고 승리자입니다^&^

  • 하얀***2020. 01. 29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쉽게 자기 길을 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알고보면 나만큼 힘든 일이 있었고 나보다
    열심히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생활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 글쓰*****2020. 01. 24

    너무나도 와닿는 글이였습니다. 사람이란게 그런것 같습니다. 때론 잘나갈때도 있지만 때론 자신이 누추하고 남들이 내모습을 보고서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런 주변의식을 하게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기도 잠시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 한번쯤은 꼭 이런 시기가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습니다.  그 고비를 잘 견디고 버틴다면 분명 앞으로 더 좋은 밝은빛이 비추는 날이 곧 머지않아 올거라 확신합니다. 지금 힘들어도 잘 버티고 이겨내주십시오.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 강지*2020. 01. 23

    힘든일에도 불평하지않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시는 모습이 멋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하신 점도 깊이 와닿았습니다. 존경합니다 인생의 선배님. 저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본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연*2020. 01. 18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고객문의

  • 정기구독02 - 337 - 0332
  • 다량문의02 - 330 -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