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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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물에 소똥을 씻다(제12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9시 44분

정경애 님 

  

인도 바라나시로 여행 갔을 때다. 12억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답게 갠지스 강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넘쳤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릭샤꾼과 오토바이를 개조한 오토릭샤,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 배회하는 소 떼들로 뒤엉킨 거리를 마치 혼이 빠진 듯 걸었다.

 

그러다 그만 소똥 무더기에 왼발이 푹 빠졌다. 여행 잘 다녀오라고 남편이 사 준 검은색 가죽신이 순식간에 황토색이 되었다. 인도인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날 보고 웃었다.

 

똥을 잔뜩 묻힌 채 갠지스 강까지 걸어갔다. 강변에서 한참 신발을 닦다 보니 똥을 밟았다는 불쾌감과 '왜 그리 부주의했을까?' 하는 자책이 조금씩 사라졌다. 물에 젖은 신을 신으려는데 구두 닦는 소년이 다가왔다. 1불만 주면 말끔히 말려 주고 구두약을 발라 새것처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잠시 후, 약속대로 깨끗해진 신발을 건네며 소년이 물었다. 

 

“자, 이제 행복해졌어요?”

 

난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좋은 동네에 살지 못해 우울했고, 자녀들을 성공시키지 못해 불행했으며 돈 많이 버는 남편을 두지 못해 늘 짜증스러웠다. 약속에 입고 나갈 옷과 가방이 없어 슬프고 물려받을 유산은커녕 부양의 의무만 지운 양가 부모님이 버거웠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는 형제들, 형식적인 관계로 흐르는 친구들, 불안한 노후, 남들의 평가와 시선으로 내면이 텅 빈 나 자신……. 모든 게 두렵고 힘들었다.

 

죄를 씻기 위해 찾는다는 갠지스 강가에서 화장터 연기를 바라보았다. 바라나시에 한번 왔다고 무슨 거창한 깨달음을 얻었으랴.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배웠다. 불행의 대부분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좋은 동네와 성공을 향한 허상, 여러 인간관계의 문제가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지 못하게 막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니 작년에 환갑을 맞은 남편이 아무래도 더 이상 직장 생활이 힘들 것 같다고 고백했다. 딸아이도 사사건건 트집 잡는 정규직 직원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며 쏘아붙이고 멋지게 나왔단다. 두 사람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이제 막 갠지스 강물에 소똥을 씻고 온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남편과 딸아이에게 잘했다고 웃어 주었다.

 

물론 이 마음이 곧 변하리란 걸 안다. 며칠 지나 동창 모임에 다녀오면 다시 새로운 욕심과 질투에 눈멀 것이다. 그러면 또 어떠랴. 지금 우리 집 신발장에는 갠지스 강물에서 똥을 씻어 낸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똥을 밟았을 땐 화나고 창피했지만 그 덕에 강물에 손발을 담글 수 있었다. 강변의 진회색 모래도 만지고 소년이 신발 닦는 동안 석양에 물드는 강물도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살면서 무수히 똥을 밟는 순간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 역시 추억이 된다는 것을 깨우친 나이가 되었다. 나는 우리가 겪는 실수와 고난도 삶에 꼭 필요한 것임을 알아 버렸다. 

댓글 쓰기
  • 이정*2024. 03. 11

    그렇네요. 똥을 밟았기에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일들이 또한 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제주***2021. 02. 15

    좋은 여행이라 생각됩니다.
    인도 철학을 터득하신 작가님게 축하를 디리고 싶네요.
    만사가 불평투성이다가 갠지스강에서 소똥을 싣고서 인도의 구두딱이소년이 말한 행복하시지요? 라는 말한마디가 인생철학을 가르는 순간이라 생각돼네요.
    좋은 경험과 좋은 문구에 감사드림니다.
    앞날에 모두가 행복하시길 기원드림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대전 유성 지족동에서
    사학연금 수급자 김광진/제주몽생이 드림

  • 김우*2021. 01. 31

    저에게도 똥밟은 신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두루**2020. 02. 17

    그냥 평범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걸요!
    위를 쳐다보면 자신이 하찮아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글퍼 질 겁니다.
    눈으로 보지말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마음으로 느껴보라고 감히 권합니다.

    댓글 수준이 넘어섰음을 압니다.
    어줍쟎은 참견을 용서하십시오!
    제가 먼저 겪어서 좋은 맘으로...

  • 양 ***2020. 02. 16

    아픔도 경험이 됩니다. 

  • 강s*****2020. 02. 15

    '이 마음이 곧 변하리란 걸' 알면서도 태도를 바꾸는 게 멋져요

  • 강지*2020. 01. 22

    와 인도여행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소문대로만 듣던 길거리 똥무더기가 사실이었군요!(웃음)
    여행에서의 재밌는 추억을 잘 담아내신 거 같습니다. 글쓴이 분의 글을 읽다보니 행복은 참 주관적인거 같아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행복의 유무가 다르니,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것 그대로 감사해야겠음을 느낍니다. 실수와 고난도 꼭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추억으로 승화시킨 글쓴이 분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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