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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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축복(제11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9시 42분

김은수 님 

 

  

 

교실은 늘 왁자지껄하다. 평균 나이 여든 살인 어르신들이 계단처럼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기역, 니은, 디귿 자음을 쓴다. ㅏ, ㅑ, ㅓ, ㅕ 모음과 만나면 글자가 된다는 것을 배운다. 딸 같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하늘처럼 떠받든다. 복지 회관에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기 위해 삼 년째 한글 공부하는 어르신들이다. 

 

기초 생계비로 생활하는 분, 베트남 며느리가 집을 나가 손자를 키우는 분, 새벽에 건물 청소하는 분, 직장 다니는 며느리 대신 손녀를 돌보는 분, 오일장에서 장사하는 분,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배달하는 분 등 어르신들의 환경은 넉넉지 않다. 한글을 모르니 “천당과 지옥 팻말을 읽을 수 없어 죽어서도 한이다.”라고 한다. 학교 오는 날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는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한다.

 

어르신들을 만난 건 늦은 나이에 대학교에 들어가 배움의 한을 달래던 여름 방학 때였다. 배워서 남 줄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글을 가르치는 교원 양성 과정을 접했다. 기초부터 심화 과정까지 이수하고 일주일간 실습도 했다. 

 

내성적인 성격에 사람들 앞에서 말도 못하고 진땀만 빼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몇 날 며칠 고민하다 내 인생의 전환점을 찍었다. 선인들의 행보가 고단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 일을 택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수업을 나갔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등에서 땀이 좍 흘러내렸다. 어르신들은 서툰 나를 격려하며 토닥였다. 날마다 축복이었다. 어르신들 얼굴에 주름살이 활짝 펴졌다.

 

받침 글자, 된소리, 이중 모음을 배울 때는 어렵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알파벳은 재미있다고 한다. 셈 공부를 하자고 하니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한 자리 숫자를 더하지도 빼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숫자는 돈 계산으로 가르치니 훨씬 수월했다.

 

손자가 메던 가방 속에는 친구들의 사랑만큼이나 간식이 많다. 속셈 학원 글씨를 지운 흔적이 남은 가방에서 간식을 쏟아 놓는다. 요술 가방이라고 불린다. 냉동실에 넣어 둔 송편, 찐 고구마, 아들이 택배로 보내온 건강 즙을 꺼내며 수줍게 웃는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은 양복점 하는 남자 친구가 손수 만들어 준 재킷을 멋스럽게 입고 다닌다. 고운 마음씨에 반했다고 자랑하며 날마다 향수를 뿌리고 등교한다. 그 꽃 같은 몸짓이 사랑스럽다.

 

또 다른 어르신은 폐지를 주워 용돈을 마련한다. 그 돈으로 스승의 날 선물이라며 양말을 사 온다. 유일한 남자 어르신은 젊을 때 일하다 척추를 다쳤다. 자세는 구부정하지만 성실하고 자상해서 인기가 많다. 마음은 이팔청춘.

 

여학생들이 “오빠, 오빠.” 하면서 비행기를 태우면 다음 날 여지없이 비타민 음료 한 병씩을 돌린다. 교실에선 늘 행복이 쑥쑥 자란다.

 

어르신들은 서로 배려하며 공부하는 지금이 가장 즐겁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해 보는 것이 많다. 색연필로 색칠하고 시를 지어 시화전을 열고, 일기를 써 보고, 도서관과 시청도 가 본다. 글자를 배운 뒤 난생처음 은행에서 돈을 찾고, 남편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펑펑 운다. 교실은 금방 울음바다가 된다.

 

문자를 앎과 모름의 차이. 이 땅에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약 260만 명이라고 한다. 여든 살이 되도록 땅바닥만 보며 살다 글자를 깨우치니 아파트 현관에 쓰인 “웃으며 인사합시다!”가 보인다며 내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는 어르신, 휴대 전화 문자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고 기뻐하는 어르신의 변화된 삶을 보면 가슴 뭉클하다.

 

어르신 대부분은 전쟁을 겪은 아픔이 있다. 글 모르고 결혼해 남편에게 구박받고 아이 낳아 기르느라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위풍당당하게 가방 메고 학교에 다닌다. 가는 길목의 간판도 읽을 수 있다. 버스 번호도 외워서 탄다. 방학 때는 “선상님 보고 싶다.”라고 전화한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 속에서 행복과 나눔을 배운다. 

 

스스로를 까막눈이라 했던 분들이 달라지고 있다. 어느덧 사회 일원으로 당당히 살아간다.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함을 배웠으니 지금껏 가장 잘한 일 같다. 어르신들이 활짝 웃는 세상은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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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2022. 11. 30

    화이팅입니다,,,응원합니다  ,,배움에 끝이 업는듯하네요,,,오늘은 배워갑니다  ,,ㅎㅎㅎㅎㅎ 조은글 읽고갑니다

  • 김민*2022. 06. 27

    아름다운 선생님 존경합니다.  사람으로 사는동안은 봉사를 해야하겟더군여,,너무도 자만스럽고,,이기적으로  나만 잘살믄하며 사는 세상속에서  각박하고 재미 업다하며 살앗엇는데,,,다른곳에  여기에는 언제나 마음 따뜻함이 잇어서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조은마음 배우고 갑니다

  • 홍근*2022. 02. 23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에요

  • 제주***2021. 02. 15

    늦은 학업에서 얻은 지식으로 과거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교마당도 밟아본일이 없는 한많은 세대의 어르신들을 일께우시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시면서 문장력도 너무 뛰어나신 작가님께 존경스럽다고 말씀 드림니다.
    좋은 생활 수기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되길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대전 유성 지족동에서 
    사학연금 수급자 김광진/제주몽생이 드림

  • 길 *******2020. 08. 06

    베움에 대한 갈증과 염원이 얼마나 큰지 공감합니다. 가슴 뭉클한 사연에 제가 덩달아 기뻐집니다.

  • 두루**2020. 02. 17

    좋은 일 하시는
    강은수님께 박수 보냅니다. 짝짝짝!

  • 양 ***2020. 02. 16

    최고의 선상님이십니다

  • 세상*****2020. 02. 03

    참.내용이 좋네요

  • 강지*2020. 01. 22

    정말 귀한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글을 읽는 내내 제 마음도 흐뭇해짐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이셨을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니 부모님이 생각나네요. 전체적으로 순박한 느낌이 드는 기분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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