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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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유언(제10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9시 20분

홍옥순 님 

 

  

 

30년 전 겨울, 집으로 차압 우편이 날아왔다. 알고 보니 남편 급여가 압류된 것이었다. 남편은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보증을 서 줬다. 그런데 사업이 망하자 친구가 도망가 버렸다. 우린 3천만 원의 빚만 떠안고 말았다. 당시 큰딸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었고 그 밑으로 두 살 터울의 아이가 셋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막막한 현실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낯선 곳으로 이사 와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공부를 잘했던 큰딸은 집안에 보탬이 되겠다고 야간 고등학교를 지원했다. 둘째 시누이는 이삿짐을 싣는 내게 오십만 원을 손에 쥐여 주었다. 그 돈으로 쌀과 연탄을 사서 한동안 살았다. 남편은 농장에서 궂은일을 했고 나는 파출부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행방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모든 걸 제쳐 두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곳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달동네였다. 한참을 올라가니 허름한 집이 나왔고 친구 부부가 일 나간 사이, 고만고만한 세 아이가 라면 하나를 끓여 서로 먹겠다고 싸우고 있었다. 빚지고 도망갔다는 말에는 눈물도 안 나왔는데 그 아이들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 큰딸이 야간 고등학교에 갔어도, 풍족하게 못 살아도 우린 굶진 않잖아.'

 

우리 부부는 그 집을 나와 근처 가게에서 라면 두 상자를 샀다. 쪽지에 “○○ 씨, 우린 원망 안 해요. 언젠가 웃으면서 만나요.”라고 적어 놓고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네 자녀 모두 출가시키고 손주도 보며 친구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건장한 청년이 집으로 찾아왔다. 우리를 보자마자 넙죽 절하더니 30년 전 사 주신 라면 먹고 이렇게 자랐다면서 자신은 ○○ 씨의 장남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3년 전 아버지가 꼭 빚을 갚아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했다. “죽기 전에 갚아야 했는데, 미안해서 면목이 없다.”라며 아버지는 편치 못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고 했다.

 

청년은 3천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이걸 받아야 하나 망설이는데 “아버지가 이제 빚 갚고 편히 갈 수 있게 받아 주세요.”라며 청년이 봉투를 놓고 서둘러 떠났다.

 

먹먹한 마음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씨, 나는 그날 이미 빚을 잊었는데, 30년을 그 빚 때문에 힘들어했군요. 웃으면서 만나자는 약속, 우리 하늘에서 지켜요.' 

 

이제 칠순이 되는 남편과 먼저 간 친구의 넋을 기리며 언젠가 만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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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2024. 02. 14

    마음고생은 많으셨겠어요
    가족 친구 에게 배신감은 심신충격 가정파괴도 됩니다
    저희도 많은 일을 겪었는데 그나마 새엄마는
    형제 시쪽 나이먹은 어른보다 났더라구요
    용서를 구한다구요 눈물을 흘렸지만
    내어린 시절 좋은시절을  어디서 보상받냐구요

  • 김은*2022. 10. 23

    저희엄마도 친한친구에게 딸이 사고났다며 2천만원 빌려가고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스트레스에 눈이 나빠지고 위장병에 시달렸지요.. 20년이지나 그친구를 찾았는데.. 쓰레기 주우면서 산다는 소식에 찾아가보니 너무 마음아파 다시 돈을 주고 왔다고 하네요..
    그렇게 미워하고 찾아다닐때는 잡기만 해라 했는데 그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너무 아팠대요.. 지금은 그돈을 잊고 사시지만..
    이런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글을 읽고 눈물도 났고 저희엄마 생각에 몇자 적어봅니다..

  • 김민*2022. 06. 27

    세상은  사람들이 사는곳이군여,,사람은 사람에게 사람을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게 하네요..사람이라서,,,,ㅎㅎㅎㅎ 세상은 살아보고싶게 하네요  훈훈하고 감동이고  이런곳이라믄은 아직은 즐겁게 웃으며 살자 해보내여,,,저는 몸이..생활이 현재가  너무 마이 아파서   힘들어서 안조은 생각을 햇엇엇는데,,ㅎㅎㅎ지금은 아니라는 순리처럼,,,감사합니다,,그리고 건강하게 조은 날들되세여 아직은 아니니까여,,,홧팅

  • 2022. 02. 10

    빚을 갑지 못하고 달아 낮지만 나중에야 돌아와 빚을 갑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니 ㅅ,ㄹㅍ,다

  • 장윤*2022. 01. 27

    ㅠㅠ 감동입니다. 

  • 재은****2021. 02. 28

    눈물이 나네요. 아 정말 감동 그 자체입니다

  • 윤진*2021. 02. 14

    먹먹하네요. 삶이 뭔지 그 라면 먹은 아이 참 바르게 자랐네요.

  • 김우*2021. 01. 31

    힘들게 살게한  날이 
    쉽게 용서할 수 없게 하지만
    삶의 값진 선물을 받았네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분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요

  • 두루**2020. 02. 17

    짤막한 글이지만 엄청난 세월이 압축되어 있네요! 30년 전 3000 만원은 아주 큰 돈 이랍니다.
    경험들 많으실겁니다.
    '돈 받으러 갔다가 돈 주고 온다'는 의미.
    그래요.그렇게 사는 것이 맞아요. 
    어렵지만,
    복 받으실 거예요! 
    그래야 합니다.

  • 양 ***2020. 02. 16

    친구가 사업은 망해도 자식 사업은 성공을 했군요. 님이 착하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 홍서*2020. 02. 04

    가슴 먹먹하지만 아름다운 사연을 글로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장명*2020. 01. 28

    감동이네요 아버지 유언을 실천한 청년도 멋지고 님의  인정도 따뜻합니다 너무나 힘들었던때가 있었습니다 보증으로 1억을 날리고 월급압류를 10년 받았어요 착했던 남편은 알콜중독이 되었고? 2년전에 먼저 떠났습니다 착한사람들을 이용하는 그 사람들은 여전히 갚을 맘조차도 없고 빚상환을 요구하러 갔다가 초딩생들 쪼르르 앉아 치킨먹고 싶어요 소리에 치킨만 사주고 왔던 기억~~
    그 얘들도 다 결혼해서 살더만 ? 
    잊어야지해도 그 시절의 지난함을 생각하면 분노가 차입니다 

  • 정연*2020. 01. 22

    님이 가셔서 베푼 마음에 친구가 감동하셔서,  결국은 아들에게 유언까지 남기셨군요.
    저도 그런 일을 당했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미안함도, 어떤 제스쳐도 보내지 않고 잘먹고 잘 살더군요.
    어려울 때 도움을 줬는데 설령 잘못을 저질렀어도 미안함을 가져야 하는데...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이 분들은 마무리가 아름답습니다.

  • 강승*2020. 01. 21

    용서가 기적을 이룬것 같네요^^  감동적이라 울컥하네요!!

  • 강지*2020. 01. 21

    양쪽 집안 분들 모두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야기의 끝이 영화의 해피엔딩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감동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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