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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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퉁이(제9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9시 18분

이서율 님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조마조마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딸아이는 울면서 제 방에 들어간 뒤 하루 종일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 5학년 되던 해 부산으로 전학을 오면서 자연스레 '서울 애'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몇몇 짓궂은 아이들의 텃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화장실 청소할 때 쓰는 대걸레로 딸아이의 사물함을 박박 문질러 댔다는 얘길 듣고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던지. 걸레로 비벼 댄 딸아이의 체육복을 빨면서 그간 더께로 쌓였던 일이 울음으로 터지고 말았다.

 

내가 딸아이 나이였을 때 방학이면 시골 큰집으로 놀러 가곤 했다. 큰집은 지리산 산골짜기에서도 무시무시한 협곡에 있는 작은 마을이어서 버스를 여섯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큰집에는 나와 놀아 줄 다섯 명의 사촌이 있었고, 자연의 놀잇감이 지천으로 가득했다.

 

큰아버지는 마을 유지였는데, 큰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태 후부터 수시로 다른 여자들을 집안에 들어앉혔다. 방학이 되어 큰집에 갈 때마다 여자들은 새로이 바뀌었다. 나는 그들에게 한 며칠간은 데면데면하다 불시에 큰엄마라고 불러 주곤 했다. 그러면 모든(?) 큰엄마들이 좋아했다. 유들유들했던 내 성격 덕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촌들은 또 언제 떠날지 모르는 여자라며 드문드문 집에 오는 큰아버지의 눈을 피해 새엄마 내쫓기를 서슴없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모욕적인 말도 남발했는데 결국 큰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큰엄마들은 질린 얼굴로 도망치듯 나가 버리곤 했다. 어떤 여자도 제 핏줄 아닌 다섯 명의 되바라진 자식을 견뎌 내지 못했으리라.

 

그럼에도 무려 오 년 넘게 버틴 여자가 있었다. 사촌들의 어떤 맹공에도 꿋꿋이 엄마 역할을 해낸 그녀는 오 년이 지나자 안주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사이 사촌들도 하나둘씩 머리가 커져 장난질에 시시해졌고, 엄마로서 충실한 그 여자에게 점점 마음을 여는 듯 보였다. 그동안 사촌들의 어떤 악행에도 가담하지 않았던 내가 어째서 그녀에게만 뿔따구가 났던 걸까.

 

그녀가 우리 엄마보다 젊고 피부도 하얗고 머리카락도 곱슬거리지 않아서? 아님 구경도 해본 적 없는 서울 여자라서? 여하튼 그녀는 묘한 거부감을 줘 내게서 한 번도 큰엄마라 불리지 못한 유일한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를 몰아낸 건 사촌들이 아닌 나였다.

 

마을 잔치가 있던 날, 그녀도 새벽부터 나가 마을 아낙들과 음식 마련에 분주했다. 정오 무렵 그녀는 우리의 점심상을 차려 주러 집으로 왔다. 난 마당으로 나오려다가 웬 술 취한 장정 하나가 한달음에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거칠게 반항하자 장정은 아는 사이에 장난이었다는 가벼운 농을 던지며 부리나케 도망갔지만 나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온갖 설레발을 치며 사촌들에게 일렀고 곧 큰아버지의 귀에 들어갔다. 머지않아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갔을 쯤엔 그녀는 이미 부정한 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큰집으로 들어올 때 이고 왔던 반질반질한 보퉁이 대신 낡고 허룩한 보퉁이를 안고 떠났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어떤 여자도 큰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새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얼마 전 결혼한 사촌을 만날 일이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신부 대기실에 앉아 정신없는 와중에 그녀를 환영처럼 보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불과 몇 년 전까지 사촌 중 맏이한테만은 잘 살고 있다며 몰래 기별을 해 왔단다. 맏언니도 모른 척하다 언젠가 기별조차 끊기자 그제야 털어놓았다고 했다.

 

헤어질 즈음 버스 정류장에서 던진 사촌의 말은 끝내 내 가슴속에 묵혀 둔 치부를 끌어내고 말았다.

 

“너, 그때 왜 그랬니?”

 

그녀가 큰집을 떠난 뒤, 나도 쫓기듯 집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앓았다. 엄마는 병이 아니라, 내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고 나는 곧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우리 엄마의 경쟁 상대로 생각했던 그녀는 정작 엄마와 가장 살갑게 지내던 사이였다.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난 엄마 손에 이끌려 버스를 반나절이나 타고 낯선 곳으로 갔다. 그곳엔 그녀가 있었다. 엄마는 그녀를 붙들고 한참이나 울었다. 먼발치에서 꺼이꺼이 울던 나를 그녀가 오히려 달래 주었다. 네 탓이 아니라고 다른 문제가 있었노라고. 그러면서 자신을 미안하게 만들지 말라며 내 등을 한참이나 쳤다. 그때의 동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딸아이의 체육복에서 나던 비릿한 냄새가 다 가시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다듬어졌다. 저녁엔 아이가 좋아하는 어묵 찌개를 얼큰하게 끓여 볼 생각이다. 그동안 내가 간과해서 더 외롭고 쓰렸을 아이의 고통과 직면하기 위해 나는 애써 지워 버렸던 지난 과오를 토해 냈다. 그때 그 여자가 여린 손으로 안고 나갔던 초라한 보퉁이가 내 머리 위에 무겁게 내려앉는 것만 같다.

 

'부디 저를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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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2022. 06. 27

    제가 적은 글을 읽어봅니다   많은 오타와 말이 안되는 말을 적엇더군여,,죄송합니다,,,그리고  오늘에서야  다시 올리신글을 읽어보며,,,완전다른 글  답변을 하엿네여,,,죄송합니다,,    두번은 하지 않은 실수의 날들이자나여,,추억속으로,,,조은 비움이 잇기를 바램합니다,,

  • 김민*2022. 06. 03

    오늘도 조은날  사랑합니다,,,세월의 속에서 너무도  빨리 훅 지나간 날들속에   모두들  다가야하는 길을 보며   후회라기보다는 인정   수긍  나에게 닥아오는  날 ,,,너무 직설적인가요 ㅎㅎ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나도무를는 사이에  죽음은  피해갈수업기에  가시려분이 바로 옆에 계시다면은  잘보내드리려구 옆에서 도움을 드린적이 잇네요   ,,,,후회하지 않는 하루가 되길,,,,

  • 김민*2022. 06. 01

    ㅎㅎㅎ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잇네요    할아버지 할머니의 추억   누구나 다는 아니겟지만 저도 잇어서 적어보네여    구미에 사셧던 엄마의 부모님 우리에게는 할어버지 할머니   참 완고하셧고  티브이가 업던시절     동네에 유일하게 티브가 잇어서   할아버지 집 마당은 언제나 동네 영화관처럼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인것을 보며   부산에서 구미는 멀앗지만  다시가고싶은곳의 하나엿지만  자주는 아니엇지만 기억속에 추억으로 완전많이 조아햇엇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고지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혼자 계시다   할머니가 아프셔서 대학병원으로 오셧다  그때나는  부산대학병원  자원봉사 호스피봉사를 하고잇을 때엿다   할머니를 보러 응급실로갓고  보게되엇다   90시ㅏ이되어서  뱀이 허물을 벗는다는듯   할머니살이ㅣ벗겨지고 잇엇고  응급실에서 약물을 치료를 하면  더벗겨지지는 않는다고 햇고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으시던 할머니가   정신을 차리시고  나를 알아봐 주시며 이름을 불러주셔서  너무너무  감격이엇고 감동이엇고  그리고  손을 잡고 안아드리고   무엇이든지 해야겟다는 맘으로   할머니를 자세히보니,,,,관찰을 하니  ㅎㅎㅎㅎ 찾앗다   여즉     머리에 비녀를 꽂는 머리엿엇다   미용을 조금햇던 나에게는 더업이 잘해들릴수잇는게 이거다싶엇고  호스피스관리 팀장님께무러보고 의논을 하니   해드리고 오라하셔서   당장이아닌   할머니가 응급실에서 나오셔서 병실로가게되면은  해드릴수잇엇는데요 ㅎㅎㅎㅎㅎ 더  감동이엇던거는   할머니가 조아지셔서 병실찾아갓을때  윳으면서 이름을 불러주셧고 완고하신분  할머니께 ;머리르 자르실래됴 무러보니  그래  머리좀 잘라주믄 조켓 다하셧고,,,이쁘게 간단하게 컷트를 해드렷을 뿐인데   할머니 웃으시면서  너무이쁘다 시집보내주려는거가  하실정도의 농담도 하셧는데   나중  할머니는 노인요양병원으로 가셧고  그리고 자주뵈러가지못하는 사이에  할머니의 부고르 듣고  가서  죄송하다고 햇엇던 기억    살아계실때 보러갈수도 잇엇는데   사는게 다 비슷한데두  그땐 모르는게 사람이더마여 ㅎㅎㅎㅎ 이제는 이런이야기를 할수잇는건        남들이 가는길이   가까워지고 잇음이라고 말하네여        부디  조은기억  추억만을  먹고마시고 그리고는 남아잇는 바로옆을 보고 사랑하기를 바래봅니다  ps  저도 여전히 못하고 잇어요  이리 말하고나믄 잘해질까싶음 맘 ㅎㅎㅎㅎㅎ 넋두리가 넘마이길엇네요   조은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셔서감사합니다

  • 두루**2020. 02. 17

    잘 읽었습니다.
    뉘우침이란 자신의 그릇을 크게 만들죠!
    나도 반성할 게 많습니다.

  • 양 ***2020. 02. 16

    서로에게 불행이군요. 가족에게 받은상처는 깊게패여 영원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신다면 평생을 섬기세요

  • 윤태*2020. 01. 22

    어린 나이에도 그런 앙큼한 짓(?)을 저질렀군요. 어른들도 그렇지요. 아이의 말을 가지고 
    5년 동안 희생한 분을 그렇게 내몰수가 있는지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상흔이 되어 살아가는 님!
    이제는 그 분도 용서를 하셨으니, 편해지시길요!

  • 강지*2020. 01. 21

    지난 날 과오에 대한 사과가 잘 담긴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마음이 많이 아파오네요. 글쓴이 분의 진심이 한가득 들어간 이 글을 그 분께서도 읽어보셨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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