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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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이 신발(제6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9시 02분

임주성 님 

 

 

“목에 염증이 있어서 열이 좀 높은데, 약 먹고 하룻밤 자면 괜찮을 겁니다. 걱정마세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부모 마음이 다 그렇겠지만, 아이가 아프면 지레 겁부터 난다. 오늘도 밤 10시가 다 된 시간에 열이 39도 가까이 올라 허둥지둥 병원을 찾았다. 야간진료를 끝낸 뒤 퇴근하려고 가운을 벗다 말고 진료해 준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에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네. 조금만 늦었더라면 진료도 못 받을 뻔했어.”

 

병원을 나서며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게. 낮에 약간 열이 있을 때 병원 올 걸. 내가 게을러서 우리 아이만 고생시키네.”

 

아내는 아이가 아픈게 자기 탓인 것처럼 울먹거렸다.

 

“근데 여보, 슬리퍼 신고 왔어? 그것도 짝짝이네.”

 

아내는 추운 날씨에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나마도 내 것과 자기 것 하나씩, 짝짝이었다.

 

“마음이 급해서 신발 갖춰 신을 정신도 없었어.”

 

아내의 한마디에 양말까지 신은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빨개진 아내 발가락을 보니,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 마음이 새삼 느껴져 뭉클했다.

 

춘천 102보충대 입소를 하루 앞둔 1998년 어느 겨울날이었다. 하루 먼저 춘천에 가 있기 위해 떠날 채비가 한창인 나와 달리 어머니는 주방에서 덤덤히 일만 하셨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군대 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지 아니면 정말 아무렇지 않으신 건지 평소와 다름없이, 아니 평소보다 더 차분해 보였다. 아직 철이 덜 든 나는 집을 떠난다는 아쉬움과 다가올 군생활에 대한 두려움보다 마지막 자유의 날을 친구들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궁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점심 단단히 먹고 가래이. 갈라면 꽤 멀 텐데 속을 든든히 채워야제.”

 

갓 깎은 머리에 무스를 발라 가며 멋을 부리는 내게 어머니는 밥상을 들고 오며 말씀하셨다.

 

“배고프면 기차에서 사 먹지 뭐.”

 

한동안 먹지 못할 어머니의 음식인데, 그때는 아쉬운 줄도 모르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엄마는 멀리 안 나간데이. 친구들도 따라가니까 너희끼리 가도 되지?”

“뭐 하러 나와요. 내가 애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차역까지도 안 나온다는 어머니 말에 약간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꾸역꾸역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엄마, 갔다올게. 얼른 점심 챙겨 잡숴요.”

 

잠깐 친구 만나러 가듯 인사를 건네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배웅 인사도 특별할 것 없었다.

 

“차 조심해라. 저녁 때 술 많이 먹지 말고.”

 

기차역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미리 와서 기다렸다.

 

“어머니는 안 나오셨나?”

 

친구들은 의아한 듯 물었고, “추운데 뭐하러. 집이나 역이나 그게 그거지.” 난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시간이 다 되어 기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으니, 까까머리 또래들이 군데군데 적잖게 보였다. 기차가 곧 떠난다는 안내방송을 듣자니 창 밖 고향 풍경이 왠지 애틋해 보였다.

 

“야, 저기 너네 엄마 아이가?”

 

친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어머니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플랫폼 가운데서 계셨다.

 

“안 나오신다더니만 나오셨네. 지금은 나가지도 못하니 손이라도 흔들어 드려라.”

 

나를 보는 건지 아니면 딴 곳을 보는 건지 손을 흔들어도 반응 없는 어머니는 그저 기차만 주시하셨다. 고맙고, 죄송하고, 슬프고……. 오만 가지 감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짓누르는 찰나 어머니 신발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양말도 신지 않아 빨갛게 언 듯 보이는 어머니 발가락, 그 발가락을 채 감싸지 못하는 짝짝이 슬리퍼.

 

안 나오신다더니 얼마나 서둘렀으면 신발도 제대로 못 챙기셨을까. '덜컹' 소리를 내며 기차가 출발하는데, 그 흔들림 때문인지 짝짝이 슬리퍼 때문인지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발이 시린지 아내의 발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내와 어머니의 짝짝이 슬리퍼, 양말에 운동화까지 갖춰 신은 내 발을 보며 엄마의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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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2023. 02. 15

    눈물이 납니다.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 김민*2022. 06. 27

    부럽습니다..부끄럽습니다,,,저는  남편을 만낫을때두  입영열차 배웅를 못햇는데,,,내아들이 입대때두  아파서 못갓는데여,,,사랑은 그렇케하고받아본 사람만이 하는게 아닌가 하네여  ,,누군가를 사랑하는법을  그저 내리 사랑임을  이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은 '따라 하려구 하고잇네여,,,가족이 많은  일남7녀의 넷쩨딸 인지라  교복도 내리 입엇고  사복도 언니꺼 훔쳐서 잇다가  맨날 혼나다  만난 남편,,남자들의 세상을 몰라서  그저  아무것도 못하고 안해도 되는줄알앗고  자식을 키워보니  남자의 세상을 이해하게는 되엇는데  아들이 입대를 대학을 가라니  입대지원을 햇고  그리고는  입대를 하는 날에는  아이들의 아빠가 하던 일도 안하고 아들을 태워서 군대앞까지 가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저는 몸이 조금 불편한 장애인이라서  장거리는 안된다하여 안간거엿고 그래도 되겟지 햇는데,,,나중  아이들 아버지가 하는 말,,,아들 입대할때도 안가는 엄마가 어딧노,,어헉  그런 말을 할거엿음 갓을껄  하엿는데,,,사랑은 끝이 업이 무엇이든지  다하여야 마음이 편한걸 알고 나서야  지금의 글을 읽으며 부럽네여,,,지금은  지나온 추억속에  마음속에 담아노은 아름다운 추억  묻어갑니다,,,사랑합니다

  • 송 *2020. 11. 24

    어머님의 속 깊은 사랑에 눈물이 납니다.

  • 두루**2020. 02. 17

    그래요. 임주성님!
    표현의 차이일 뿐 
    부모, 특히 엄마들은 다 그럴 걸요!
    자식에게 목숨도 내어 줄 걸요 아마!
    나도 자식들이 지 자식 챙기는 거 보고
    '내리 사랑'이 뭔 줄 알았다니까요!
    나도 부모보다 내 자식에게만
    쏟아 부었더라고요.
    잘 읽었습니다.

  • 양 ***2020. 02. 16

    먹먹해지네요

  • 강지*2020. 01. 21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는 따뜻한 글이네요.. 저도 군대훈련 마지막 수료식 때 먼길을 한달음에 달려오신 부모님 생각이 나 목이 메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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