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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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의 후예들(제5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8시 04분

김민정 님 



가방이 먼저 도착했다. 초록색 바탕에 체크무늬가 있는 것으로 병원에서 아버님을 따라왔다. 남편이 마루에 내려놓은 가방을 안방 장롱 옆으로 옮기는 동안 가슴이 뭉클했다. 

 

“아버지는 조금 있다 오실 모양이야. 바람 좀 쐬고 싶으신가봐. 자식 집인데 그냥 들어오시지. 아버지도 참….” 

 

남편의 혼잣말이 남편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어쩌면 자식 집이기에 한걸음에 들어설 수 없으신지도 모른다.

 

아버님은 삼 형제가 어디 사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셨다. 알면 자꾸 찾아가 귀찮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 반평생의 금기를 깨고 잠시나마 우리 집에 모신 건, 아버님이 환자였기 때문이다. 살구씨가 식도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비상사태가 발생해 수술을 받으셨다. 충분한 영양 섭취와 절대 안정이 아버님의 고집을 꺾는 데 일조한 것이다.

 

아버님은 사방에 어둑살이 질 무렵, 창가에 그림자를 비추며 오셨다. 자꾸 데워서 졸아 버린 찌개만으로 밥 한 공기를 드시고 진즉 장롱 옆자리를 차지한 가방을 끌어다 기대셨다. 베개를 드렸지만 금방 다시 일어날 거니 괜찮다고 하셨다. 섭생이 제대로 안된 일흔의 노인네가 한참을 바깥에서 서성대셨으니 오죽 피곤할까. 지친 듯 눈을 감으며, 가방에 온몸을 의지해 휴식을 취하시는 고단한 아버님 모습이 안타까워 눈앞이 부예지는 바람에 얼른 방에서 나왔다.

 

“가방은 정리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이튿날, 서랍장을 열고 가방을 비우려는 내게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곧 집으로 돌아갈 테니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그 말씀이 서운해서 안 된다고도, 이제 여기서 함께 사는 건 어떠신지 여쭙지도 못한 채 서랍 문을 닫고 말았다. 아버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가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종일 일하던 분이 아무것도 못한 채 시계만 자꾸 보셨다. 애꿎은 가방만 아버님의 큰 체구를 견디느라 이리 찌그러지고, 저리 찌그러지며 몸살을 앓게 생겼다. 곧 갈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아버님은 우리 집에서 겨우 닷새만 머무셨다.

 

그동안 내내 속을 비워 내지 못한 가방은 열심히 아버님의 등받이 노릇, 베개 노릇만 몸살 나게 하고는 왔을 때같이 아버님을 따라나섰다. 아버님보다 먼저 마루 끄트머리로 나가 떠나기를 재촉하는 것이 밉살스러워 괜스레 “쿵!”하고 가방을 들었다 놓았다.

 

“어미야! 잘 쉬었다 간다. 고맙다.” 

 

평생 거친 일에 단련되어 투박해진 아버님 손이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손자 손녀 어리광 받아 주느라 낮잠 한번 못 주무시고, 1층에 주인 할머니 혼자 사신다는 말을 들은 뒤 부러 바깥출입을 삼간 채 열한 평 남짓한 좁은 집에 갇혀 계시다시피 한 가여운 아버님.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에 자꾸 눈물이 났다.

 

그로부터 얼마 뒤 우리는 이사했다. 남편의 근무처가 바뀐 탓이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아버님에게 안부 전화 드리는 일을 게을리하던 어느 날,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저 아이들은 잘 있느냐, 아비는 일 나갔느냐 등의 말씀이었는데, 평소 아버님답지 않아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자식 집에 전화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가 아버님 소식이 전해졌다. 오랫동안 간암을 앓으신 것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다.

 

입원하시던 날, 아버님은 지난번보다 가벼운 가방을 건네면서 말씀하셨다. 

 

“들고 다니기 무겁고 귀찮아서 필요한 것만 넣었는데도 그 모양이다.” 

 

가벼운 가방마저 무겁다 하시는 아버님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버님이 퇴원하실 쯤에는 가방 속을 빵빵하게 채워 병원 문을 나서리라 다짐했다. 가방을 열면 내의, 수건 그리고 좋아하시는 소주 한 병이 바로 보이도록 맨 위에 넣어 두리라. 그렇게 아버님 웃음을 보려는 욕심을 하루하루 키우며 쾌차하시기를 기도 드렸다.

 

훗날, 아버님의 훌쭉한 가방을 채운 건 소주뿐이 아니었다. 아버님 구두, 입원하던 날 입으신 점퍼, 피우시던 담배, 손에 쥔 채 곧잘 돌리시던 라이터까지…. 이제는 정말 가방이 빵빵해졌다. 아버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 맛깔스러운 밥상을 차려 놓고, 잔 가득 소주를 채워 드려야 하는데 그만 아버님을 잃고 말았다. 화장해서 아무 데고 뿌려 달라는 한마디만 남긴 채 아버님은 고단하고 외롭던 생의 끈을 놓으셨다.

 

아버님 유언에 따라 화장하기로 뜻이 모아졌다. 너무나 작아진 아버님을 시숙 품에 안겨 드리고, 상복과 태울 것을 찾던 중 아버님 가방을 발견했다. 내의, 신발 등도 태우라고 하셔서 가방 안의 것을 꾸역꾸역 토해 내는데 자꾸 아버님 모습이 떠올랐다. 가방에 기대 텔레비전 보시던 아버님, 가방을 베고 누우신 아버님, 곧 갈 테니 가방 정리하지 말라시던 아버님…. 거짓말쟁이 아버님, 일부러 강한 척하시던 아버님. 실은 너무 허약하고 외로워 서러웠을, 생전의 아버님 모습이 눈앞을 두리번거렸다.

 

자식 셋이 고만고만하게 사니 그저 부담 주지 말아야 한다는 아버님의 깊은 마음이 오히려 아버님을 외롭게 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렇게 훨훨 보내 드리고 아무렇지 않게 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꺼내다 만 아버님 옷가지를 귀퉁이로 옮겨 두고 아버님 배웅을 가신 시숙을 쫓아 산으로 올라갔다. 조금씩 빗줄기가 흩뿌려지는 바람에 마음은 더 바빠졌다.

 

아들의 성정을 잘 알아 산에 묻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반대로 전해 강가에 묻어달라 한 청개구리 엄마와 비로소 철든 청개구리 아들. 엄마의 유언만큼은 지켜 강가에 엄마를 묻고 비만 오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걱정되어 개굴개굴 운다는 이야기. 이제껏 우리는 청개구리 아들이었다. 한순간도 자식들 주위를 떠난 적 없던 아버님인데, 자식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조차 없는 무정한 분으로 생각했다.

 

빗속에서 시숙을 찾았다. 시숙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셨던 모양이다. 아버님을 안은 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듯 우두커니 비에 몸을 적시고 계셨다. 아버님을 이렇게 잃어버릴 수 없다는 데 마음을 맞추고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산으로 올라간 시숙이 다시금 아버님을 품은 채 내려온다면 친지들이 한바탕 설전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버님 가방이 필요했다. 빗줄기를 피해 소리 소문 없이 안전하게 아버님을 모셔 가기 위해서였다. 

 

가방은 내가 둔 장소에 그대로 있었다. 속의 것을 마저 끄집어내 가방을 비웠다. 조용한 납골당을 찾아 아버님을 모셔야겠다고, 일 년에 한두 번 아이들 손잡고 아버님 찾아갈 꿈을 꾸며, 못다 한 수많은 이야기를 주섬주섬 마음에 챙기며 바쁘게 산으로 올라갔다.

 

남편과 시숙이 애쓴 덕분에 아버님을 인근 납골당으로 모셨다. 납골당에서 집으로 아버님 가방도 함께 왔다. 이따금 아버님이 생각나면 가방을 쓸어 본다. 여느 가방과 다른, 끈끈한 정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때때로 아버님이 보고 싶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납골당에 다녀온다. 어느 날엔가 아이들이 아버님 잠드신 머리맡에서 물었다.

 

“엄마는 할아버지한테 오면 왜 자꾸 울어? 할아버지 안 계시는 게 그렇게 슬퍼?” 

“엄마가 청개구리라서 울어. 그래서 비가 오면 자꾸 눈물이 나네.”

 

그 말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고 웃고 말았다. 아버님도 아이의 눈망울을 보았다면 크게 웃으셨으리라. 깊은 눈빛으로 한순간도 자식들을 놓치지 않으셨던 아버님이 그립다.

 

댓글 쓰기
  • 빨간**2024. 02. 14

    공감은 가지않네요
    진심을 알려면 본인이 아버님연세가
    되면 알껍니다

  • 해평**2021. 03. 23

    시골에 홀로 계신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 아버지' 하고 불러 드릴 수 있는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다는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돌아가시면 그마저도 할 수 없으니...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시여, 존경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 두루**2020. 02. 17

    그렇죠! 이런 모습이 최선이었습니다.
    항상 지나고 나서 깨닫는 우리.
    부모가 시간을 안 줘서 그렇다구요?
    우리 자식들도 우리에게 그럴겁니다.
    우리가 부모님들께 한 것 처럼요.
    그래도 불효는 하지 맙시다!

  • 이채*2020. 02. 17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집니다. 반성이 되네요. 감사한 글입니다.

  • 정연*2020. 01. 22

    부모님은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식에게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는 마음......
    저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자꾸 생각이 납니다. 이상하게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그리운 것은
    평소 살갑게 우리와 어울리지 않으셨지만, 먼듯 가까운 듯 우리를 큰산처럼 거기에 계셨기에 
    더욱 그립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박성*2020. 01. 21

    몇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글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사랑만 받았지 제대로 못해드린것만 생각나서, 나도 청개구리와 다를게 없었구나 생각에 그렇게 어버지는 막내아들을 46년이나 봐주셨는데,
    이 아들은 몇년이나 보필했는지. 이제 가신지 6년이 되는데 나이가 먹어갈수록 더욱 그 빈자리가 생각나서 먹먹해지는 이즈음에 윗글을 읽고,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오늘밤에 아버지를 뵙고싶으니 제 꿈에 놀러오세요.

  • 강지*2020. 01. 21

    평소 아버지께 투덜투덜 대기만 했던거 같은데,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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