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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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의 하루(제3회 생활문예대상 금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7시 54분

김영희 님

 

 

“보이소! 여 와서 옥수수 하나 잡숴 봐요. 말랑말랑한 게 맛있겠네요.” 

 

마당에서 삽을 손보던 남편은 얼른 툇마루에 걸터앉아 “야, 올해 강냉이 농사 잘됐네.” 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연신 맛있다고 먹는다.

 

먹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난다. 입가에는 옥수수 눈 하나 붙이고,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시커멓고, 눈동자는 반들거리고, 손은 핏줄이 불룩 나와 마치 소설 《뿌리》에 나오는 쿤타 킨테 같다고 했더니 “뭐라카노. 내가 그리 시커멓나?” 하며 거울을 본다. 자기도 어느 정도 인정하나 보다. 피식 웃는 걸 보니.

 

귀농한 지도 13년. 시어머니 병 수발을 위해 다시 시댁으로 돌아왔다가 애쓴 보람도 없이 어머님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아버님 때문에 그대로 이곳에 주저앉았다. 첩첩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 속에서 여섯 가구가 하나의 우물물을 나눠 마시며 옹기종기 모여 산다. 옆집 음식 냄새를 맡는 것은 물론 울타리 넘어 웃음소리도 들리고, 어느 집의 손자 손녀가 장난치는 소리까지 담을 넘어 들려온다.

 

처음 이곳에 시집왔을 땐 호롱불과 호야불로 어둠을 밝히고 솔가피로 불을 때 가마솥에 밥을 해 먹었다. 그때 어머님은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오십이었고 시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대소변을 받아 내야 했다. 도시에서 큰 스물여섯의 새색시는 층층시하 팔 남매의 종갓집 며느리였으나, 종갓집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제사가 많다는 말을 듣고 철 이른 과일과 소고기 국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아했다. 고추 모종을 심어 놓은 밭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도 풀을 매야 하는지 아닌지, 또 어느 때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 몰라 이웃 아지매들이 뭐 심어라 하면 그제야 심었다.

 

어머님의 배려 속에 많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곳의 삶을 터득했고,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벼농사, 고추농사, 먹을거리 채소들을 밭 가득히 심어 도시에 있는 친구에게도 나눠 줄 만치 촌 아낙이 됐다. 아버님도 2년 전 어머님 곁으로 가시고 내 키보다 훌쩍 커 버린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보니 잘잘거리는 빈 육신을 붙들고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이렇게 옥수수도 삶아 먹고, 감자도 쪄 먹으며 손자 놈 사진이나 보며 하루를 보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식을 두 놈쯤 더 키웠으면 좋았으련만.

 

단출하게 둘만 낳은 게 후회스러워 며느리 보고 애 셋은 낳으라고 했더니 공부시키는 게 힘들다며 아직 둘째도 미루고 있다. 어쩜 내가 젊을 때 어머님께 했듯이 며느리도 그대로일까 싶어 속으로 놀랐다.

 

모두 떠난 자리지만 내 묻힐 곳이 이곳이기에 조상 묘 돌보고 농사지으며 오늘 하루도 정직한 땅에 나를 묻는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 빛나면 모깃불 피워 놓고 마루에 누워 남편에게 오늘은 누구에게 전화가 왔으며, 손자 놈이 이제는 할머니 소리를 제법 잘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남편은 “와 할배 소리는 잘 못하노.” 하며 좀 서운한 눈치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33년, 기침 소리만 들어도 상대의 몸 상태를 알 만치 세월은 참 빨리도 지나갔다. 

 

마당 한구석 감나무의 감 하나가 우리 대화에 끼어들려고 ‘툭’ 둔탁하게 내려앉고, 달님은 가지에 걸터앉아 빙긋이 웃는다.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 누가 오는가, 개구리 울음 요란하지만 쉬이 잠들지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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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2022. 06. 27

    현대 사람들의 희망사항같은 글  부럽습니다   원인이 우째됫던간에  잊고살앗던 추억들을 찾으셧네여  추카추카,,,,지금은 장마철이고  저의 집은  퇴직을 하여  말만하면은  시골이나 가서  살아야지를 반복하며 지내는 남편과 둘이만 지내다보니   지금이 이글은  참 조타 싶으네여,,,따라하고 부러워하면은 지는거라는데,,,하지 못하고 진짜 부럽네여,,장단점은 잇겟지만  많은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셧겟지만   지금은 부럽네여  지고싶을 정도로,,,ㅎㅎㅎㅎ 지나간 추억을 더덤으며 오늘같이 비오는 날에는  뽀샤시하게  웃게해주어서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

  • 신민*2022. 02. 15

    때론 산골에서 자연과 벗 하며 편히 살고 싶습니다.

  • 해평**2021. 03. 23

    산골에서의 삶은 육체적으로 햇빛에 그을리고 핏줄이 불룩 솟아나는 거친 일상이지만 그 안에 느끼는 행복감과 자연안에서의 충만감은 도시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것이겠지요
    하루하루 일상이 행복이란 걸 느낄 수 있는 좋은 글 감사해요~

  • 두루**2020. 02. 17

    산골은 아니지만,
    여기도 그런 사람 있답니다.
    자식들 인생 따로 있을테고,
    우린 우리 인생 재밌게 삽시다.
    모처럼 비슷한 노후를 보내는 
    친구의 글 같아서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 홍서*2020. 02. 04

    그곳의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누군가에겐 시골에서의 삶은 경험하지 못하면 모르는 상상속의 일과가 되기도 하지요

  • 강지*2020. 01. 19

    초반부 남편분을 언급한 모습에서 그만 웃음이 쿡쿡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네요. 글 속에서 구수한 사람냄새가 느껴져 재미있었습니다. 제 마음 속 한가운데서 호롱불 하나가 따스하게 데어진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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