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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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제2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7시 49분

황인숙 님

 

 

“색깔이 너무 밝지? 그냥 잠바 입고 갈까 봐.” 

 

3년 만에 다시 꺼내 입은 양복이 어색한지 남편은 거울 앞에서 몇 번씩 옷매무새를 살폈다. 꽉 끼던 윗옷은 어깨심 하나를 더 넣어야 할 만큼 헐렁해졌고 바지도 허리춤까지 추켜올려 허리띠를 매 보지만 자꾸 속에 넣은 셔츠가 빠져나왔다. 

 

울컥거리는 마음이 눈물로 나올 것 같아 출근 시간에 늦겠다며 남편 손을 잡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표 끊고 전철을 기다리는 5분 동안 남편은 긴장이 되는지, 늦을까 염려가 되는지 몇 번씩 손목시계를 본다. 그때 비녀 아주머니께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셨다. 

 

“각시도 출근하나?” 

“아니요! 오늘만 회사까지 배웅하려고요.” 

 

어젯밤 아주머니에게 남편이 출근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기뻐하시며 일부러 전철역까지 나오신 것이다. 아주머니는 남편 손을 꽉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부부는 아주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 등 뒤로 비추는 햇살이 맑고 따뜻했다.

 

한 직장에서 20년을 일한 남편은 회사가 어려워지자 우리 집 전세금까지 빼서 회사를 살리려고 했다. 회사에서는 다시 일어설 희망이 없자 남편에게 다른 직장을 알선해 주며 떠나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자기 한 몸 편하자고 다른 회사에 갈 수 없다며 회사 물건을 팔기 위해 전철에서 손가방 보따리 장사까지 시작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간다며 몇 번이나 보따리를 쌌다. 하지만 혼자서 끝까지 회사를 지키겠다며 밤샘하는 남편 앞에서 내 몸 하나 지치는 것만 내세우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남편을 따라나섰지만 전철 첫 칸에서 끝 칸까지 짐 가방만 끌고 다닐 뿐, 사라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다. 어디선가 여고 동창생, 고향 친구, 109호 아주머니가 뛰쳐나올 것 같아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물건이라도 손에 들고 있으면 필요한 사람은 사겠지 싶어서 가방을 한 아름 안고 전철 안을 왕복하고 있는데 비녀 아주머니께서 첫 손님이 되어 주신 것이다. 얼마나 고맙고 기쁘던지 물건 값을 받는 것도 잊은 채 “고맙습니다.”만 연발했다.

 

그래도 가방 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계속 짐 가방만 끌고 다니자 아주머니께서 답답하셨던지 “자, 사세요. 김지미, 엄앵란 가방입니다. 문희의 꽃가방도 있습니다.” 하고 보따리 장사를 대신 해 주시는 거였다. 가족도 선뜻 나서서 도와주기 힘든 일을 아주머니께서는 당신 일처럼 도와주셨다.

 

그날 우리 부부는 보따리 장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가방 17개를 팔고, 6만 원이 안 되는 돈을 몇 번씩 헤아려 보며 큰돈을 번 것처럼 들떴다. 비녀 아주머니께서 주신 용기로 나는 이승연, 고소영, 보아까지 이름을 불러 가며 손가방을 열심히 팔았다. 저녁이면 목이 쉬어서 아이들 이름도 제대로 부를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지만 남편 회사가 문을 닫지 않고 있다는 것이 희망이었다.

 

그러기를 3년! 오늘 남편이 다시 회사로 출근하게 된 것이다. 어젯밤 남편은 내가 짐 가방을 버릴까 염려되었는지 “우리가 남길 유산이야. 잘 보관해.”라며 당부했다. 어렵고 캄캄한 세월 한가운데 있을 때는 더디기만 한 세월이, 지나고 나니 한순간으로 느껴지고 그마저도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런 그리움은 전철에서 우리를 만날 때마다 손가방을 사 주셨던 비녀 아주머니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은 우리 부부에게 어려움을 극복할 사랑과 힘을 주신 단골손님이었다.

 

내릴 채비를 하는데 커다란 상자에 고무장갑을 가득 담은 아주머니가 서 계셨다. 나처럼 말도 못하고 왔다갔다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그 아주머니는 씩씩하셨다. “1미터를 잡아 당겨도 찢어지지 않고 삶아도 되는 고무장갑이 세 켤레에 이천 원!”이라며 사람들 무릎 위에 한 개씩 놓으셨다. 우리 셋은 말없이 웃으며 옆 사람이 내려놓은 것까지 샀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첫 손님인 듯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씩 하셨다. 비녀 아주머니가 우리 부부에게 단골손님이 되어 주셨듯이 그 아주머니에게 우리가 단골손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 장갑 다 뭐 할 건데?” 

 

우리와 헤어지며 아주머니는 큰소리로 물으셨다.

 

“비밀이에요. 아주머니는요?” 

“나도 비밀!” 

 

하지만 우리는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안다. 내일도 찰고무장갑 아주머니를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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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2022. 11. 30

    ㅎㅎㅎㅎ  세상은 산너머산이라는말이 참이나 맞구나를 공감하며 살고잇네요..가치하자며 시작하다가 지나온 인생에서  내편은  한사람 뿐이라는  마음이 드는 날이 많아지네요,,,내편은 남편,ㅎㅎㅎ   무엇이든지  할수잇을때해야겟다고  하자하자하니  사람이기에 가능하구나,,,조은글을 읽고갑니다,,글을 읽으며  작은 웃음이 나네요,,,,지금  저에게 좋은 위로가되어서  감사합니다

  • 김민*2022. 06. 27

    사는동안에 사람들은 많은 경험을 하며 경험담 써놓은 수기를 읽기도 하죠,,,근에  해본사람과 안해본게 많은 사람은  인격이나 돈이나 학문이나  그런거와는 상관업이  나중에라두 안해본게 많은 사람은 아하 이런일이 하며 해보게되고  많이 해본사람은 두번은 하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며  다른사람들에게 수기를 써서 도움을 주는게  이세상사는 동안이더군여,,,,현실감각이 대한하시구  남편을 참 마이 사랑하고 믿으시는분,,,사랑하고 존경합니다,,,저는 올해나이59동안  사람들이 말하는  나이만 묵고,,익지를 못하여서인지  이나이에  남편이 퇴직을 하여 집에서 삼식이를 하고 잇어서  지금저는  밥순이기 되엇네여   다들 이나이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딩굴기만하고 싶어하고  저두 딩굴이 만하고 싶엇는데 ,,,어헉   사는동안  남편은 열심히 살앗구  두아이들  다 대학마치고 한 아이든 결혼까지 햇고 한아이든 혼자 독립을 해서  나갓구   집에는 두사람 뿐이데   와이리 어색한지  첨 만난 사람보다 더 어색하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부딪히고  어헉 헉  헉   ,,,이건 아닌데  하며  지내다  여기에서 글을 읽어봅니다,,어디 까지 얼마나 우리들의 사랑은 유호한건지,,,유호기간은 다되엇는데  지금은 의리로 산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밥을 해주는게  지금의 순리이구나 하며   최선이구나 하며 글을  적어봅니다,,지금 현재에 하고 잇는건  경험,,,아직은 우리 는 사람입니다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완벽할수업자나여,,,,최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홧태하세요

  • 해평**2021. 03. 23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회사를 생각하는  훌륭한 남편분 덕분에 좋은 비녀아주머니를 만날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동적인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윤진*2021. 02. 15

    너무 상큼한 글이네요.

  • 두루**2020. 02. 17

    정말 잘 읽었습니다.
    황인숙님은 글을 참잘 쓰시네요!
    간단하고, 쉽고, 그러면서도 감동까지.
    그 비녀 아주머니께 안부 전해 주세요!

    남편 분 대단히 안목 있으시네요.
    자칫,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일까봐 
    읽으면서 조마조마 했습니다.

    글에 등장하는 분들 모두 존경합니다.

  • 강지*2020. 01. 19

    누군가에게 '단골손님'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따뜻해지는 일인지요. 힘든 시절과 역경을 극복한 모습을 글에 잘 담아내셔서, 읽는 제 마음에 힘이 났습니다. 저도 오늘은 누군가의 '단골손님'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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