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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과 어머니(제1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사람들
작성 일시 2020년 01월 08일 17시 45분
 

고진성 님

 

 

 

오늘, 동네 사거리를 지나다가 조그만 바구니에 두릅을 담아 파시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나는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바구니 하나를 집어 봉지에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두릅은 이상한 향을 내며 코끝을 따갑게 했습니다. 문득,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송계리 쪽에? 어머머, 그렇게 많이 났데? 그래, 내일 6시 반에 보자잉.” 

 

전화를 끊은 어머니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다락방을 오르락내리락 하시더니 허름한 옷가지며 가방을 꾸려 놓으시기에, 어디 가시는지 물었습니다.

 

“송계리에 두릅이 그렇게 많이 나왔다잖니. 내일 이모랑 같이 따러 가려구.” 

 

송계리는 어머니가 태어난 곳입니다. 열세 살 아이 치고는 나물이며 갖가지 풀 이름을 제법 잘 아는 나도 ‘두릅’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나뭇가지 끝에 순처럼 열리는 게 있어. 고 녀석들을 가지에서 똑, 똑 떼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많이 열렸다니까 재미 좀 보겠지야.”

 

어머니는 두릅 얘기를 하면서, 벌써 가방 한가득 두릅을 따온 것처럼 행복해 하셨습니다.

 

“엄마, 같이 가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일요일, 새벽 공기가 무척 시원했습니다. 신림의 송계리에 도착하자 어머니와 이모는 나무를 베어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긴 나무막대를 만드셨습니다. ‘갈고다리’라는, 두릅나무 가지를 휘어잡을 때 쓰는 도구였습니다. 어머니가 알려준 두릅나무의 회색빛 가지에는 가시가 박혀 있는데, 가지 끝에는 연해 보이는 순이 달려 있었습니다. 오른손에 든 갈고다리로 높은 가지를 휘어잡은 뒤 왼손으로 ‘똑’ 하고 두릅을 따는 맛이란 최고였습니다.

 

한참을 정신없이 따고 있을 때였습니다. 내 뒤에 있던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아뿔사, 내가 갑작스레 놓은 두릅 나뭇가지의 가시가 어머니의 왼쪽 눈을 찌른 것이었습니다. 눈을 감싼 어머니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엄마. 엄마….”

 

어머니 눈에 깊은 상처가 났습니다. 날파리증(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게 되면 검은 점이 날파리처럼 나타나 보이는 증상)이 심해지시더니 결국 왼쪽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며칠을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눈을 다치고 난 다음 날에도 내 도시락을 싸 주시던 어머니.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정말 미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어머니회’가 열렸습니다. 나는 왼쪽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어머니를 보고 아이들이 놀릴까 두려워 어머니회에 참석하라는 가정통신문을 보여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뒷문으로 슬그머니 어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며 도망치듯 앞문으로 달려나가 버렸습니다. 같은 동네 사는 친구 어머니 때문에 아신 모양이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눈물은 멈출 생각을 않고 쏟아졌습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울고 있는 내 등 뒤로 어머니가 가만히 오시더니 꼭 안아주셨습니다. 

 

“엄마가 미안하게 됐어. 울지 마, 진성아….” 

 

속으로 끝없이 울렁거리는 말 하나가 목구멍 끝에서 넘어오지 못하고 맴돌기만 했습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타지로 대학을 오게 돼 어머니와 4년째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머지 오른쪽 눈에도 그놈의 날파리가 보인다고 하시는 어머니.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이제 곧 나는 선생님이 됩니다. 어머니는 내가 선생님이 되길 얼마나 원하셨는지 모릅니다. 오른쪽 시력이 더 닳기 전에 어머니가 다려 준 와이셔츠를 입고 학교로 출근하는 멋진 모습을 하루 빨리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내가 어머니의 눈이 되어드릴 차례인 것 같군요.

 

어머니의 눈을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댓글 쓰기
  • 12**2024. 01. 17

    지금은 바라던대로 교단에 서계신가요?
    어머니의 날파리들은 어찌 되셨는지 궁금하면서도 소식을 듣기가 겁나기도 하네요 ㅠㅠ
    두 분이 삼켜왔을 지난 날의 통증들이 문장 너머로 전해집니다 모쪼록 건강하고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시고 계시길 기원합니다!

  • 24********2024. 01. 02

    자식이 자책할까 봐 한쪽 시력을 잃고도 숨죽이며 울음을 삼켰을 그 어머님,남은 세월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네요.

  • 박영*2023. 09. 04

    저의 눈물샘이 폭발해버렸네요.....가시에 눈이 찔린 그날 엄마는 자식을 원망하지 않았을껍니다. 오히려 본인의 실수로 인해 딸이 미안해하면 어쩌나 걱정부터 하셨을꺼예요. 엄마가 되고보니 엄마는 그렇더라구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도지*2023. 07. 06

    가슴 아픈 사연이네요....눈물이 흐릅니다....

  • 김민*2022. 06. 27

    사랑합니다  사랑할수잇을때많이 하자인 한사람입니다  ,,언제나 늘 항상 첨 가진마음으로 살기를 원하는건  사람들의 마음이고 세월과 시간은 우리들을 가만히 두지 않터군여   ㅎㅎㅎ   늦기전에  말보다  지금이라두   보러갈수잇을 때 먼저 해보세요  그리고는  순리되루  최선을 다해보세여  그럼  나중이라두  덜 더 마음이 편안해질듯함 ㅋㅋㅋㅋ 사랑은 늘 항상  주는 사람이 먼저 마이 하는거더군여  나두 저두  자식들이 두명잇는데여  해두해두 더해주고 싶음마음인데  늘항상 못한듯함 아쉬움과 미안함  이건 뭔지를 모르는데 손해보는것 같다가두  이런게 자식과 부모의 관계이구나 하거든여  ,,,,홧팅하세여,,,그런 마음으로,,,,,

  • 해평**2021. 03. 23

    어머니의 한쪽 눈의 희생이 있었기에 선생님이라는 훌륭한 분을 만들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도 고진성님도 언제까지나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 윤진*2021. 02. 15

    감사해요 

  • 김은*2021. 02. 09

    문득, 우리 엄마도 제가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어머님에 대한 사랑이 뭉클하게 와닿아요. '어머니의 눈을 사랑합니다..' 문장이 깊은 울림을 주네요..  

  • 이미*2021. 01. 18

    가슴한켠이 미어지네요.  자식을 원망하지 않는 엄마의 무한사랑에 눈물이 나네요.

  • 남점*2021. 01. 07

    가슴이 아프네요. 어머님의 건강을 빕니다.
    또한 선생님의 앞날에 좋은 일들이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 두루**2020. 02. 17

    고진성님의 글 잘 봤습니다.
    어머니 눈을 다치게 했을 때가 13세.
    실수지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 일이 있고 10년 후 글을 쓴다고 했으니,
    26살 쯤 선생님이 되셨겠습니다
    좋은생각...1회 대상이니 14년쯤 지났네요.
    지금 어머니 잘 계시죠?
    그래도 어머니 마음속은 아들이 안 다친 걸 하늘에 감사드리고 싶을 겁니다.

    감동적인 글들 읽게 해 주신
    좋은생각...에 감사드립니다.

  • 홍서*2020. 02. 04

    두릅과 어머니의 눈...가슴아파요 
    하지만 씩씩하게 멋짓 선생님이 되셔서 잘 사시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 강지*2020. 01. 19

    글을 읽고 난 뒤 제 마음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ㅠㅠ 진성님의 어머님이 건강하시길, 많은 아이들의 진성님의 따뜻한 교육을 받으며 훌륭한 청년들로 자라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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