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정용철의 사랑의 인사
확고한 원칙new
2018.11.15   조회수 : 64    댓글 : 0개
유행 앞에서는 흐르는 강물처럼,원칙 앞에서는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토머스 제퍼슨주도적인 사람은 중심이 분명하기 때문에유행이나 인기 등 일시적인 것에흔들리거나 연연하지 않습니다.자신이 세운 질서와 원칙을 묵묵히 따르며진실과 성실에서 기쁨을 찾습니다.유행을 따르면 끊임없이 바쁘고 요란스러워조용한 시간, 성숙의 기회를 갖기 어렵습니다.일시적인 것은 마음에 두지 말고그때그때 흘려보내십시오.대신 원칙 앞에서는 흔들림 없는 바위가 되십시오.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밝아지고생각이 맑아질것입니다.
동행의 기쁨
책과 사람이 있는 곳 <서원지기 전영애 님>new
2018.11.09   조회수 : 88    댓글 : 0개
경기도 여주시 보금산 자락에는 서원이 있다. 서울대 독문과 명예 교수 전영애 님(67세)이 세운 공부하는 집. 아버지 호인 여백(如白)을 따서 여백서원이라부른다.아버지의 성품이 맑다고 친구분들이 지어 준 호랍니다. 이곳이 ‘맑은사람들을 위한 집’이길, 여백 같은 공간이길 바라며 이름 붙였습니다.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월마토’라고 부른다.)이면 이곳으로 사람들이 하나둘모여든다. 이날은 누구든 서원을 방문할 수 있다. 그녀의 안내로 서원을 둘러보거나 갤러리에서 전시를 관람하기도 하지만 종일 책만 읽는 사람도, 산 위전망대에 올라 내내 경치만 보다 돌아가는 경우도 있단다.여러 사람을 위한 집을 짓는 건 오래전부터 생각한 일이었다. 원래 여백서원은 작은 정자에서 시작됐다. 좁아도 좋으니 따로 글을 쓸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 온 터다. 2004년 지인이 여주의 한 농가를 소개했다. 허름해도 집필실이 생겨 무척 기뻤다. 짬만 나면 달려와 글을 썼다. 한데 마음에 들수록 걱정이 커졌다. 마을 땅이라 언제라도 집이 헐릴 수 있는 것. 그녀는 건넛마을에 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밭 1,200평을 덜컥 샀다.형편도 생각하지 않고 저질렀어요. 빚 갚느라 몇 년을 고생했죠. 땅만 있지 집 지을 돈이 없었어요.그곳에 ‘시정’이라는 작은 정자를 세웠다. 목수는 여유가 없는 그녀를 위해지나는 길에 한 번씩 들러 봐주었다. 보통 2주면 뚝딱 지을, 방과 마루 2칸짜리집은 무려 1년 7개월에 걸쳐 완성됐다. 돌 하나도 그녀가 직접 사다 날랐다. 이렇게 마련한 터에 나무도 심었다. 계단이나 돌 틈새에서 자라 곧 뽑힐 운명인어린 나무들을 데려왔다. 제자나 지인이 꽃과 나무를 가져와 심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니 제법 잘 자라 푸르러졌다. 이 공간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졌다. 2014년 시정 아래 세운 여백서원 본관과 이듬해 그 건너편에 들어선 ‘우정’은 그렇게 탄생했다. 우정은 외국 작가나 예술가, 학자 등이 1년에 두 팀씩와서 무료로 머무르며 작업을 한다. 개인이 이런 일을 하는 게 신기해 물으니이런 말이 돌아왔다.‘선에 대해서 그대 보답을 받았던가. 나의 화살은 하늘로 날아갔다오. 참 아름답게 깃털 달고. 온 하늘 열려 있었으니 어디엔가 맞았을 테지요.’ 괴테의 이말을 참 좋아해요. 저도 독학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그녀는 고등학생 때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 특히 제2 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릴케나 괴테 등 독일 작가들에게 매료됐다. 자연스레 전공도 독문학을 택했다.대학원을 마칠 때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졸업 성적이 좋아 학과 조교로 뽑혀 유학시험을 치를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군대에다녀온 남학생이 그녀의 자리를 차지해 그다음 길이 사라져 버렸다. 해외 유학 기회도, 박사 과정 진학도.결혼해 아이들을 낳으며 배움의 길은 점점 더 멀어지는 듯했다. 간신히 유학 기회를얻어 독일에 갔으나 두고 온 2개월 된 아기가 눈에 밟혀 3학기 만에 돌아왔다. 이후박사 과정에 진학할 때까지 무려 십 년이 걸렸다.혼자 책이란 책은 다 읽고 번역했어요. 젓가락질도 못할 정도로 타자기를 쳤죠. 번역서를 낼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막읽었지요. 할 줄 아는 건 읽는 것뿐이니까.그때 열심히 본 게 후에 큰 힘이 되었죠.그녀는 책을 읽으며 저자 역시 온갖 고생끝에 그 경지에 이른 걸 알았다. ‘이렇게 훌륭한 책을 쓴 사람도 힘든 인생을 감내하며사는구나.’ 싶어 어려운 일도 의연하게 감당했다.그녀가 두루마리 하나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풀어 보여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필사한 책이다. 어머니는 배움에 열망이 컸다. 큰살림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책을읽고 일일이 한지에 베끼며 외웠다. 글자가적힌 것이라면 신문 한 장도 소중히 여겼다. 뒤이어 대나무 바구니에서 종이 뭉치를꺼냈다. 증조부의 문집을 그녀의 아버지가옥편 160권을 찾아 가며 번역한 것. 괴테의작품은 읽어도 증조부 글은 못 읽는 딸을위해서였다. 붓으로 한 자 한 자 쓴 종이가천 장이나 된다.어머니, 아버지가 남겨 준 책을 소중히보관하고, 살면서 받은 도움을 되돌려 주고자 그녀는 서원을 만들었다.누구든 산책하며 시를 만나고 서원 곳곳에 놓인책을 들춰 보며 생각할 시간을 갖길 희망한다. 자신을 추스르고 같이 이야기나눌 곳이 있다면 든든할 터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뚝 서 함께한다면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녀가 서원지기로 여생을 보내려는 이유다.*인터뷰 전문은「좋은생각」 12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씨앗 마실new
2018.11.09   조회수 : 182    댓글 : 0개
12월이 되면 마을 사람 몇몇이 모여 홍동면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을 만난다. 우리는 이 일을 ‘씨앗 마실’이라고 부른다. 겨울이라 농사일은 없지만, 할머니들의 손은 여전히 분주하다. 일 년 내내 농사지은 콩이나 깨, 시금치 씨앗 등을 체로 치고, 키질로 쭉정이를 날려 튼실한 종자를 고른다.그러기를 수십 년,같은 일의 반복이지만 할머니들에게는 지나온 역사를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씨앗 마실 나간 첫해, 처음 만난 할머니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일흔셋이던 할머니는 스물다섯 살에 시집왔다고 했다. 그때 가지고 온 ‘이팥’이란 토종팥을 48년째 씨로 심고 있었다. 그 긴 세월을 이어 온 까닭이 궁금해 물으니,“지금 것은 맛이 없어.”라고 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어릴 적 친정 엄마가 해 준 팥죽이며 팥빵 맛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키우는 것이다. 시집올 때씨앗을 가져온 이유를 물었다.“지금이야 텔레비전이며 냉장고를 혼수로 해 가지만, 옛날엔 딸이 시집간다고 하면 그해 농사지은 것 중에 제일 좋은 씨앗들만 골라서, 옷 한 벌과 함께옷장 속에 넣어 주셨지. 그게 다야.”또 다른 할머니는 열여덟 살에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등 떠밀려 시집왔다. 가마를 타고 이틀이 걸려 왔다고 하니, 꽤 부잣집에서 시집온 것이 분명했다. 그때 가져온 씨앗이 ‘청태’라 부르는 푸른 메주콩이다. 동네에서 청태는처음 봐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할머니에게도 아직까지 이 씨앗으로 농사짓는 이유를 물었다.“우리 동네에는 시집갈 때 친정에서 가져온 씨앗을 밑지면(씨앗 농사를 잘못 지어 다 없어지면) 친정과 연이 끊긴다는 말이 전해지거든.”나는 그제야 비로소 여든 넘은 할머니 중 유독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는 분이많은 이유를 알았다.열여덟, 스물에 시집온 할머니들의 씨앗에는 그분들의 역사와 애환, 희망이고스란히 담겼다. 그것들이 지금의 우리를 지탱해 주는지도 모른다. 그 귀한씨앗을 마음껏 퍼서 우리 손에 쥐여 주는 할머니들 얼굴에는 모든 걸 품은 편안함이 깃들어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 씨앗이 우리 안에 자라길 희망한다.오도 님 | 홍성 씨앗 도서관장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현관문 앞에서new
2018.11.09   조회수 : 195    댓글 : 0개
우리 집 현관문은 열쇠로 열고 잠근다. 안에서 잠글 때는 손잡이 가운데를오른쪽으로 ‘딸깍’ 돌려야 한다. 엄마는 외출할 때 문을 잠갔는지 기억나지 않아 되돌아와 확인하는 일도 있다. 서울에 사는 남동생은 그런 엄마가 걱정돼집에 올 때마다 비밀번호 잠금장치로 바꾸자고 한다. 하지만 열쇠가 크게 불편하진 않다. 가방 안에서 짤랑거리는 열쇠 소리는 정겹기도 하다.때로 이 옛날식 열쇠는 생각지 못한 것을 일깨워 준다. 내가 집에 있을 때 아빠가 외출하면 나는 재빨리 ‘딸깍’ 하고 문을 잠근다. ‘문단속했으니 걱정 말라’는 일종의 신호다. 한데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문을 잠근다. 내가 외출하면 아빠는 현관 신발장 앞까지 나와 배웅하고, 문을 닫은 뒤에도 잠그지 않고 그대로 서서 내 발소리를 듣는다.내가 계단을 다 내려가 ‘딸깍’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면 그제야 문을 잠근다.나가자마자 문 잠그는 소리가 들리면 매정하게 느껴질까 싶어서다. 늘 그렇게문 앞에 한참을 서서 배웅해 주었다.그 사실을 눈치챈 뒤부터 나는 아빠가 얼른 문을 잠그고 들어가도록 계단을빨리 내려갔다. 1층에 다다르면 일부러 발소리를 내지 않고 기다리기도 했다.‘딸깍’ 소리를 들으려고. 문 잠그는 방식 하나로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에열쇠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오늘도 계단을 다 내려갈 때까지 문 잠그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신발장 앞에 서서 딸의 발소리를 듣는 아빠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최신식 잠금장치가 달린 크고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아빠의 소박한사랑을 느낄 수 있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다.김진애 님 | 대전시 중구
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길을 잃었다new
2018.11.09   조회수 : 198    댓글 : 0개
길을 잃었다.고향을 떠나5년간 산 경기도 오산이 지겹고 답답해 새 출발 하는 마음으로 수원에 자취방을 구하러 가는 참이었다.초행길이었으나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면 되는,한 시간 반 남짓 거리라 자만했나 보다.수원 어딘가에서 내려 환승할 버스를 기다렸다.버스 번호도 두세 번 확인했고,나의 목적지도 버스 머리에 크게 적혀 있으니 더는 의심 않고 탔다.안내 방송에 귀 기울인 채 창밖 풍경에 시선을 두었다.한참을 달려도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버스는 점점 변두리로 향했다.타는 사람도 없고 그나마 있던 승객들도 정류장마다 내렸다.어느새 기사님과 나만 남았다.버스는 인적 없는 동네를 그저 달렸다.그제야 깨달았다. ‘이 길에 나의 목적지는 없구나…….’수치심에 몸이 떨렸다.서른 살이나 먹고 버스를 잘못 탄 걸 기사님이 눈치채면 어쩌나.속으로 비웃진 않을까.태연히 벨을 누르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까.기왕지사 끝까지 가볼까.그럼 말로만 듣던‘버스 종점’이 나올까.생각들이 끝도 모르고 엉겨 붙는 사이 버스는 영 어울리지 않는 곳에 섰다.키 작은 아파트 몇 동이 모여 있는 한적한 동네 일각이다.노선의 반환점 같은 곳인가 보다.맞은편으로 건너가 탔어야 했다.시동을 끄고 일어난 기사님이 꿈쩍도 하지 않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어데 갑니까?”“……법원 사거리요.”“타고 있으이소.”기사님은 길 건너 작은 슈퍼마켓으로 들어갔고 난 덩그러니 남겨졌다.버스 안 가득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모두 각자의 목적지를 막힘없이 찾아갔다.스마트폰에 집중하다가도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하면 제때 올라탔다.머리를 휘청거리며 단잠에 빠지거나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는 이는 없는 듯 보였다.그 많은 사람 중에 오직 나만이 서툴렀다.모든 것에 세련되고 태연할 줄 알았던 서른 살의 나는 낯선 동네 시동 꺼진 버스 안에 홀로 앉아 울음을 참았다.지방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고 경기도 오산으로 올라와 버틴 시간이5년.번듯하고 안정된 직장에 대한 욕망도 없었다.교육원에 등록한 뒤 공부하는 동안 쓸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자 부품 공장에서2교대로 일했다.어느 해에는 야간에12시간씩 일하며 잠도 자지 않고 두 시간 반 거리의 교육원에 다녔다.힘든 줄 몰랐다. 30대는 아직 멀었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곧게 뻗은 길을 그저 열심히 걸어가면 될 줄 알았다.터널이면 이때쯤 작은 빛이 보일 텐데,막장이었나,점점 더 깊은 어둠을 느꼈다.내가 지쳤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많았다.여기저기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어차피 작법은 똑같은데 영화 시나리오나 써 볼까 하다가,작사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실용음악 학원을 다닌 적도 있다.이름난 코미디 쇼의 구성 작가 면접을 보러 간 날은 짙고 검은 추위에 그저 섧었다.부모님 품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서너 계절간 내 곁에 머물렀다.그렇게5년을 흘러 도착한 곳은 넓이도 깊이도 짐작할 수 없는 먼 바다와도 같은 곳이었다.사위(四圍)가 뚫려 어느 쪽으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듯 보이나 난 그 어디로도 출발할 수 없었다.적도의 바다였나 보다.파도가 없었다.내 안에서 더는 어떤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고요하고 쓸쓸했다.나약하고 무기력했다.있는 힘껏 손을 뻗어도 그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없을 것 같았다.그래서일까.고작 버스 한 번 잘못 탔을 뿐인 그 사소한 일에 서러운 울음을 삼킨 이유가.내 삶에서 길을 잃은 것을,그날의 나는 알았나 보다.기사님의 쉬는 시간은 담배 한 개비로 끝났다.버스로 돌아온 기사님은 시동을 걸고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덤덤한 척하지만 둘 곳 잃고 떠다니던 내 시선이 룸 미러 속 기사님 얼굴에 가닿았다.다행히 기사님은 내게 관심 없는 듯했다.눈물은 닦아 없겠지만 부은 눈이 부끄러울 뻔했다.요금을 다시 내야 하는지 여쭤볼까 고민하는데 기사님이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건넸다.“뻐스 잘못 타가 삥삥 도는 사람 숱합니데이.”웃음조차 없이 무심한 목소리였다.혼잣말인가도 싶은 것이 위로하려 꾸민 말은 아닌 듯했다.외려 위로가 되었다.겨우 삼킨 울음을 토해 낼 뻔했다.그 시절의 내가 절실히 듣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이민정 님|경기도 오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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