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생각 카테고리

정용철의 사랑의 인사
일관성new
2017.08.17   조회수 : 7,399    댓글 : 4개
최고의 지성이란, 서로 상반되는 생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능력이다.F. 스콧 피츠제럴드행동의 일관성,여기에 능력과 성품이 존재합니다.이것이 지성이자 인격입니다.아무리 지성인이라 해도마음속 생각이 모두 같지는 않기에일관성 있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습니다.‘우리 안은 생각의 전쟁터’라고 해도지나친 말이 아닙니다.여러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자기주장을 합니다.‘갈까, 멈출까’ ‘이럴까, 저럴까’‘여기로 갈까, 저기로 갈까’…….그럼에도 말과 행동이 한결같은 사람이 있습니다.삶 자체가 일관된 사람이 있습니다.그가 바로 최고의 지성인입니다.
동행의 기쁨
나는 다시 그곳으로 간다 <소방관 백균흠 님>
2017.08.10   조회수 : 523    댓글 : 2개
그는 매일 이 기도를 떠올린다.반드시 두 사람을 구하게 해 주소서. 내 등에 업힌 한 사람, 그리고 나 자신. 언젠가 신의 뜻에 따라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27년째 소방관으로 살아가는 광진 소방서 백균흠 님(51세)은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이다. 처음 화재 현장을 봤을 땐 그도 사람인지라 선뜻 위험을 무릅쓰기 망설여졌다.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두려움을 이겨 내길 수차례, 자신이 아니면 그들을 구할 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 았다.늘 두려움과의 싸움이었죠. 그중에서도 제일 겁나는 건 생명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이었어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택가에 화재가 났어요. 도착해 보니 집 밖에서 아이 엄마가 제발 자식들을 구해 달라며 울부짖었죠. 손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 둘이 손을 꼭 잡고 쓰러져 있었어요.아이를 업은 순간 그는 직감했다. 이미 숨이 멎었다는 것을. 한 계단씩 내려가는 발걸음이 그리 무거울 수 없었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세상이 무너진 듯오열하는 그녀 앞에서 그는 고개를 숙였다. 마스크 안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내가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1분만 빨리 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는 자꾸 지난 일을 되짚으며 자신을 탓했다.사고 현장을 접한 뒤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해요. 그런데 ‘이 감정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하고 가만히 앉아 고민할 겨를이 없어요. 또 출동해야 하니까요. 몸으로 부딪히며 정신없이 경험을 쌓다 보니 조금씩 단단해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수고했다며 커피 한 잔 건네는 사람들, 밤새 일한 소방관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 준 마을 주민이 있어 힘을 냈죠. 소방서 앞에 몰래 먹을 것을 두고 가는 족발집 사장님, 때마다 문자 메시지로 안부를 묻는 이들까지 고마운 인연을 잊지 못해요.갈수록 그의 눈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누군가의 자식이자 나의 이웃이었다. 그럴 수록 일에 더 매달려 위험한 상황에도 여러 번 처했다. 의류 공장에 불이 났을 땐 옷감을 들다 허리를 크게 다쳤다. 디스크로 입원해 장기간 치료받았지만 후유증이 남아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제가 다치는 것보다 가족들이 속상한 게 더 힘들어요. 딸이 어릴 때 휴대 전화 케이스에 늘 밴드를 넣어 줬어요. ‘아빠, 오늘도 다치지 말아요.’ 하면서요. 밴드가 떨어질 날이 없었죠. 11월 9일, 소방의 날에 태어난 큰아들 역시 애틋해요. 지적 장애가 있어 남보다 모든 게 서툴지만 제겐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죠. 얼마 전엔 결혼 2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가족과 해외여행을 갔어요. 오사카에 있는 4박 5일 동안 새삼 서로 간의 사랑을 느꼈죠.한참 이야기를 풀어놓던 그가 문득 물었다.그거 아세요? 인생은 짧고 세상엔 아름다운 게 참 많잖아요. 그런 것만 보기에도 부족한데 저희는 매일 안 좋은 것만 찾아다녀요. 그래도 주저 않고 달려갑니다. 그곳엔 제가 반드시 구해야 할 생명이 있으니까요.*인터뷰 전문은「좋은생각」 9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새벽 햇살
어머니는 그리움이다
2017.08.09   조회수 : 374    댓글 : 2개
나와 동생은 어릴 적 어머니 없이 자랐다. 부모님의 불화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홀로 우리 형제를 키우는 게 힘들었는지 강원도에 살던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당시 우리가 있던 시골엔 일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도시로 떠났고, 매달 아버지가 보내 주는 생활비로 생계를 꾸렸다.나는 남들과 다른 가정 환경이 창피했다. 무엇보다 자식을 두고 간 어머니가 미웠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세월이 흘러 나와 동생은 어른이 되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덧 어머니의 존재는 기억에서 잊혔다. 한데 뒤늦게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와 동생이 어머니와 이따금씩 연락하고 지냈다는 것이다. 나를 감쪽같이 속였다는 사실에 상처 받았다.가족들은 내가 어머니를 용서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가족들의 기대에 더 어긋나게 살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이었다.결국 아버지, 동생과도 사이가 점차 멀어졌다. 연락이 오면 피했고,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이참에 인연을 끊고 살까 고민하기도 했다. 결혼해 안정된 삶을 사는 동생과 늘 비교당하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았다.어느 날, 동생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생은 장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나는 외면했다.그때 왜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후회했다. 그래서 어머니 묘소를 찾아가기로 했다.어머니에게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오랫동안 못 본 어머니를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결국 어머니에게 가지 못하고 도망치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못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방황하며 살던 나는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 이곳에 왔다. 차마 가족들에겐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사회에 있을 때도 사고를 많이 쳐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초라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갈수록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내 걱정하며 기다릴 아버지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소식을 전하고 싶지만 연로한 아버지에게 불효하는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는다.나는 이곳에서 종이봉투 접는 일을 한다. 일당은 적어도 그만큼 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며 출소하는 날까지 깊이 반성하리라 다짐한다.어머니와 살갑게 정을 나눈 기억조차 없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애틋함이 짙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어머니에게도 우리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어머니가 한 번이라도 꿈에 나타나면 말없이 안아 주고 싶다.그동안 내 이기심 때문에 소중한 이들에게 상처 준 듯해 마음이 무겁다. 사회에 나가면 아버지에게 못다한 효도를 하고 싶다. 그리고 어머니 앞에 떳떳하게 설 것이다.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 먹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내겐 간절할 때가 많았다. 이제라도 내가 책임지고 지켜야 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련다.“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김성현 님(가명) | 교도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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