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정용철의 사랑의 인사
내버려 두는 기술new
2019.03.21   조회수 : 174    댓글 : 0개
일을 끝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끝내지 않고 내버려 두는 기술역시 훌륭하다.인생의 지혜는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데 있다.린위탕'한 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생각은일종의 강박관념입니다.일을 끝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끝내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 또한하나의 기술이기 때문입니다.산 속에 쓰러진 나무는그대로 두면 됩니다.그것을 치우려다 다른 나무들과산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그대로 두면 나무는 썩어흙이 되고 거름이 됩니다.어떤 일은 완성이 아니라어느 정도까지만자기 몫인경우도 있습니다.완벽하게 끝내야 할 일이 있고,어느지점에서 중단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전체를 보고 핵심을 알면중단해야 할지,끝까지 가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새벽 햇살
자유보다
2019.03.11   조회수 : 116    댓글 : 0개
나는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성공하고 싶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여겼지만, 돌이켜 보니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였다.나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홀로 일곱 남매를 키웠다.옷은 물려 입었으나, 먹는 것은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는 정도였다. 그때부터어른이 되면 가족들에게 가난의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물질 만능 주의에 빠져 살았다.가난 속에서도 어머니는 나를 사랑으로 키워 주었다. 나도 자식을 길러 보니조건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무뚝뚝한 나는 사랑이라는 말이 그저 낯부끄러웠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깨달았다. 우리 삶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직업에 대한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 등.나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자유를 잃었다. 그러나 수형 생활을 할수록커져 가는 것은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아니다. 바깥에서 지내는 가족들 생각이다.남편 없이, 아버지 없이, 자식 없이, 형제 없이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소중한 이들이 떠오른다.내게 진정 절실한 건 자유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들을 향한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 지난날이 후회된다.이제는 접견실 창을 두고 마주한 가족에게 서슴없이 사랑을 말한다. 반성과속죄의 시간을 통해 어느새 나도 사랑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사회로돌아간다면 사랑을 더 많이 나누며 살고 싶다.
동행의 기쁨
이름을 불러 주는 일 <역사 만화가 박시백 님>
2019.03.11   조회수 : 673    댓글 : 1개
그게 마침 제 눈에 들어왔거든요.《조선왕조실록》을 어떻게 만화로 그릴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역사 만화가박시백 님(55세)이 예사롭게 말했다. 덧붙인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실록을 한장도 들춰 보지 않은 때였어요.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조선사를 제대로 알려 주고 싶다는 신념을 키워 왔을줄 알았다고 하니 껄껄 웃었다.사실 그 반대예요. 현대사면 몰라도 조선사는제 관심 밖이었어요. 그래도 만화는 참 좋아했죠.그는 제주도 시골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야 전기가 들어올 정도로 변두리였다. 동네엔 만홧가게 하나 없어 책이나 어린이 잡지, 만화책 등이귀했다. 친구들은 그림 쪼가리라도 눈에 띄면 죄다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가만화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기도 했고, 그림을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게 신기해서였다. 형이 공부하려고 사다 둔 갱지에 습작을 하기도 했다. 못으로 종이에 구멍을 뚫은 다음 실로 동여매 그럴듯하게 제본도 했다. 1년간 200쪽짜리세 권을 그려 낼 만큼 만화가 좋았다. 하지만 미술 공부에는 돈이 들었고 누구도 찬성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울로 올라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전혀 다른 공부를 하면서도 가슴속엔 ‘언젠가는 만화를 그리며 살 거야.’라는 다짐이있었다.《한겨례》 만평 작가로 활동하게 된 것도 뜻하지 않은 기회였다. 극화(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엮는 일)를 하고 싶어 여러 번 공모에 참여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그때 《한겨례》에서 만평(만화를 그려 인물이나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함) 작가를 모집한다는 게 아닌가.만평은 대학 시절에 몇 번 그려 본 게 다였어요. 그런데도 무조건 하고 싶었지요. 만화를 그리고 싶었으니까. 연거푸 낙방하고 다른 공부를 준비할 무렵이었거든요. 그래서 시도라도 해 봤죠.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때부터 4년간 시사만화를 그렸다. 경력도 쌓이고 인기도 높아졌다. 당시 조정래 작가의 소설 《한강》과 그의 만화가 나란히 연재됐는데 조 작가에게서 “만화 잘 보고 있다.”라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고민 역시 깊어졌다고.우리나라 정치 환경이 아쉽게도 반복돼요. 예를 들면국회에서 여야가 대립하는 장면이 1년에 몇 차례씩 있어요. 또 설, 추석, 기념일 등도 매년 돌아오고요. 비슷한 소재를 새롭게 표현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저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걸 알면서도 계속하는 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요. 또 만화가로 오래 먹고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그 무렵 티브이에서 역사 드라마 &lt;왕과비&gt;를 방영했다. 그는 무척 흥미롭게 보다가 문득 자신의 역사 지식이 부족한 걸 알았다. 그래서 신문사 도서관에서 드라마 배경인 조선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었다. 조선의정치사는 파란만장했다. ‘이런 극적인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곧바로 신문사에 사의를 표했다. 동료, 친구, 가족 모두가 만류했다. 출판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실록을 읽지도 않은터였다. 그저 머릿속에 구상만 있을 뿐. 이대책 없는 결정에 동의해 준 유일한 사람이아내였다. “오래 버텼어요. 원하는 대로 해요.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그러곤 아내는 공부에 매달렸다. 임용 고시에 덜컥 합격하더니 교사가 돼 생계를 꾸렸다. 대신 그는 집안일을 도맡았다.여전히제가 우리 집 주부입니다. 밥을 차리고 아내가 학교에 가면 청소를 하죠. 작업도 집에서합니다.실록을 공부한 후 콘티를 짰다. 저녁거리를 사러 가며 머릿속으로는 인물들의 대화를 상상했다. 수십 장을 그렸다 마음에 들지 않아 버리기를 서너 번,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1년이 흘러 있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친구가 출판사를 소개해 줬고 다행히 바로 출간이 결정됐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2003년 7월, 제1권 &lt;개국&gt;을시작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딱 10년만에 제20권을 끝으로 완결 지었다. 이 시리즈는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조선사를 널리 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데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고.10권이 나올 때까지는 반응이 시원찮았어요. 출판사에서 선인세로 매달 200만 원씩 줬어요. 그런데 판매가 그 금액을 따라가질 못할 정도였죠.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실록은 다 그려야지. 그렇게 버텼더니끝낼 수 있었네요.가야 할 길을 알기에 그는 서두르지 않고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작업했다. 처음 무모하게 회사를 그만둘 때나반응이 시원찮을 적이나인기가 높아진 무렵이나그의 생각은 같았다. 《조선왕조실록》 덕에 만화가로서 먹고살 수 있어서 좋고, 또 조선사를 정사(정확한 사실의 역사) 중심으로 정리한 데에 보람을 느꼈다.사명감은 작업을 하다가생겼단다. 만화를 통해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야겠다는것. 그래서 2015년에는 오류를 수정·보완한 개정판도 냈다. 또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하며 직접 만든 연표와 주요 인물 700여 명을 정리한 노트도 책으로펴내며 이 지난한 작업을 마쳤다.잠시 휴식기를 가진 그는 다시 대장정에 들어갔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만화역사책 《35년》을 그린다. 지난해 1~3권을 출간했고, 올해 나머지 4~7권이 나온다. 또다시 자료를 공부하며 씨름 중이다. 고증을 위해 독립운동 현장을 찾아중국을 비롯한 전국을 답사했다.훌륭한 분이 얼마나 많았는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모든 걸 헌신해 독립을 위해 싸웠어요. 하지만 우린 이름조차 기억하지못하죠. 그분들 이름을 불러 드려 오래 기억하고 싶어요.*인터뷰 전문은「좋은생각」 4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인턴 상인
2019.03.11   조회수 : 363    댓글 : 0개
작년 9월부터 엄마의 일터에 나갔다. 흔히 생생한 삶의 현장을 말할 때 가장많이 떠올리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그중에서도 도·소매를 주로 하는 청과직판 시장이다.취급하는 품목은 대파, 쪽파, 실파. 주 거래처는 식자재 납품 업체, 마트, 외식 체인점, 식당, 레스토랑 등이다. 경매가 이루어지는 저녁에 업무를 시작해심야, 새벽, 아침까지 많은 손님이 오간다.이곳에 주 5일 근무는 적용되지 않는다. 취급 품목이 농산물이라 쉬는 동안파가 자라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 그래서 공휴일에도 일한다. 그나마 오래쉬는 날이 명절인데 대목이라 그 전에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바쁘다.18년간 직장인으로 일하다 인턴 상인이 된 나는 노동의 정직함을 몸소 느꼈다. 직장에 다닐 땐 열심히 일해도 보상받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수두룩했다.한데 이곳에서는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다.경매된 물건을 사 와서 가게에 진열하고, 마진을 붙여 손님에게 팔고, 물건을봉투에 담아 묶는 것부터 손님 차량에 배달할 때까지 몸을 움직여야 했다. 요새는 손질한 물건을 사는 손님이 꽤 많은데 수고가 들어가니 마진도 높다. 우리 가게에서도 대파나 쪽파를 까서 판다. 엄마와 나는 영업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다듬는다. 노력한 만큼 물건은 돈으로 바뀐다.그렇다 보니 이곳 상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들은 삶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자신의 노력과 정성으로 이만큼 자리 잡았다. 짧게는 십 년, 길게는우리 부모님처럼 삼십 년 이상 장사했다. 경기가 한창 좋을 때 돈도 많이 벌어봤고 그 돈으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도 장만했다.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 “뭐하러 딸내미 데리고 나와 고생시키냐.” 하는 말도들었다.하나 대부분 부모의 가게를 이어받으려는 것을 부러워했다. 상인들은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나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일찌감치 이쪽으로 진로를 정해 일하고 있었다.이제 인턴 상인으로 6개월, 걸음마 단계다. 시장은 상인으로서뿐 아니라 한인간으로서도 배울 점이 많다. 앞으로의 시간이 궁금해진다.최경미 님 | 농산물 유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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