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생각 카테고리

정용철의 사랑의 인사
내 안의 명의new
2017.12.14   조회수 : 180    댓글 : 1개
모든 환자는 자신만의 의사를 갖고 있다. 우리는 그 의사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알베르트 슈바이처자연 치유! 이것은 신이 우리를 아낀다는 증거입니다.우리에게는 각자 명의가 있는데 그 의사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몸을 돌보고 있습니다.혹 몸이 좋지 않으면 그 의사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마음을 즐겁게 하라. 음식을 골고루 먹어라. 즉석식품을 먹지 마라. 일보다 건강이 중요하다. 쉬어라. 규칙적으로 운동하라.하지만 우리는 그 명의의 말을 무시하거나 무관심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후회합니다.우리 안의 명의가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늘 기회를 열어 놓아야 합니다.
새벽 햇살
용서
2017.11.30   조회수 : 191    댓글 : 0개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반장이었던 나는 수업을 마치면 선생님과 교무실에서 반 이야기를 논의하곤 했다. 선생님은 간식을 건네며 상담도 해 주었다. 어느 늦가을, 토요일 수업을 마친 후였다. 선생님이 코스모스씨를 받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평소 좋아하던 선생님의 부탁이라 신났다. 그래서 점심도 거르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한데 양이 기대에 못 미쳤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말했다.“내일 내가 더 찾아볼 테니 넌 공부해.”다음 날, 어머니는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한창 공부하는데 누군가 밖에서 나를 불렀다. 나가 보니 어머니가 동네 사람에게 업혀 있었다. 도로변에서 씨를 모으다 차에 치인 것이다.사고를 낸 운전자는 도망갔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알고 내가 졸업할 때까지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운전자는 잡혔지만,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보상도 못하고 구속됐다. 우리 가족은 나와 어머니 둘뿐. 그의 아내가 매일 찾아와 눈물로 빌었으나 나는 끝내 용서하지 않았다.​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고, 나는 가구점에서 일했다. 한데 배달하다 교통사고를 내 이곳에 들어왔다. 그사이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어머니는 병으로 입원하고 아내와는 이혼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무렵, 피해자와 가족들이 면회 와서 말했다.​“자책하지 말고 힘내요. 우리는 용서했으니 하루빨리 나와서 잘 살아요.”​그 말을 들으니 불현듯 예전 일이 떠올랐다. ‘난 그때 왜 어머니를 친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용서받기는 이토록 쉬운데, 용서하기는 왜 그리 어려웠을까.오늘도 나를 용서해 준 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늦었지만 그에게도 용서를 전한다.
동행의 기쁨
쌀밥 같은 빵 <오월의 종 대표 정웅 님>
2017.11.30   조회수 : 224    댓글 : 0개
잘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제빵 학원에 등록했다기에 빵에 관한 특별한 사연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사실 빵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돈 주고 사 먹지도 않았다니까요.오월의 종 대표 정웅 님(50세)이 멋쩍게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렀다. 계속 승진해 설령 임원이 된다 해도 지금과 똑같은 일을 하겠구나 생각하니 회의가 들었어요. 아무 의미가 없겠더라고요.잘 살고 있다 믿었던 그의 세계가 흔들렸다. 지금이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아 사표를 던졌다. 그날 회사 건너편에 있는 제빵 학원을 발견했다.​회사를 꽤 다녔는데 그런 곳이 있는 걸 처음 알았어요. 생각 없이 그저 왔다 갔다만 한 거죠.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 창문 너머로 훔쳐봤어요. 문득 ‘빵만드는 일이면 내가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요리 한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그가 빵을 만들겠다니. 가족, 친구, 회사 동료 모두가 입을 모아 반대할 때 갓 결혼한 그의 아내만 이렇게 말했다. “그럼 한번 해 봐요.” 그 말에 힘을 얻어 그는 빵을 굽기 시작했다. ‘얼마나 가겠어?’ 하며 빈정거리던 사람들이 무색하게 오늘까지도.​자격증을 딴 지 3년 되던 해 그는 일산에 ‘오월의 종’ 빵집을 열었다. 3년 후엔 꼬박꼬박 집에 돈을 가져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던 거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 그가 천연 발효종 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무척 생경했다. 사람들은 후식으로 먹을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빵을 선호했다.​저는 쌀밥 같은 빵을 만들고 싶었어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빵, 이런 식감이면 좋겠다 하는 빵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빵. 그래서 천연 발효종 빵을 만들기 시작했죠.사람들이 모르는 빵을 만들다 보니 ‘오래된 빵이다’, ‘상한 것 같으니 환불해 달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결국 빵집은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가게 보증금도 못 건지고 빚까지 졌다.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나요?” 그는 질문을 받자마자 대번에 답했다. 수천 번도 넘게 포기하고 싶었다고.제빵 학원에 다닐 때 반죽의 기본인 ‘둥글리기’를 못했어요. 나이 들어 왔으면서 노력도 안 한다고 된통 혼난 날, 기가 팍 죽더라고요. 이 길이 아닌가 고민에 빠졌죠. 그 후에도 힘든 순간이 수없이 많았어요.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해 보겠다고 마음먹은 일인데 중간에 포기 할 수 없었어요. 누구도 찬성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나선 만큼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은 듣기 싫었거든요.그래서인지 그는 신입 제빵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도 서른 넘어 시작했어.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야. 기죽지 마. 빵을 만들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돼. 시간을 갖고 열심히 하면 너도 잘 만들 수 있어.”하고 격려한다.2005년, 이태원에 다시 빵집을 열었다. 작고 소박한 가게. 거기서 그는 혼자 일했다. 마지막 기회라 여겼기에 빵 종류도 추려서 평소 하고 싶던 딱딱한 유럽식 빵만 만들어 팔았다. 외국인이 많은 동네라 기대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3년간 묵묵히 빵을 구웠다. 신제품을 개발하다 손님이 부르면 나가서 빵을 담아 주고, 오븐을 보러 갈 땐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찾는 이가 하나둘 늘었고 사람들은 그의 빵에 길들여졌다.그러던 어느 저녁, 빵이 전부 팔렸다. 전날까지도 반 이상 남아 이웃에게 나눠 준 터라 의아했다.이상하다,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겼나?그는 밖으로 나가 거리를 둘러봤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빵은 매진됐다. 그리고 어느덧 사람들이 줄 서는 빵집이 되었다. 입소문이 나자 백화점 입점 제안이나 프랜차이즈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그는 딱 잘라 거절했다.그럼 빵 맛이 변해서 안 돼요. 제 빵은 손이 많이 가고 오래 걸려요. 대량으로 만들기 어렵습니다.그가 만드는 빵은 대개 밀가루, 물, 소금 그리고 효모종으로만 반죽한다. 이런 저배합 빵일수록 조리법이 같아도 매번 동일하게 나오기 어렵단다. 지금껏 들은 칭찬 가운데 가장 기분 좋았던 말이 “빵 맛이 여전히 똑같네요.”라고. 오랜 단골이던 영국 손님이 한국을 떠났다가 3년 만에 다시 들러 해 준 말이다. 앞으로도 그런 빵을 만들고싶다고 했다.​빵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그의 손을 거친다. 처음 제빵을 시작할 때부터 그가 바라던 바다. 오븐을 여는 순간이 매번 설레는 것도 여전하다.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기에. 원하는 맛이 나오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실망한다. 그러면서 사는 재미와 행복을 느낀다.오늘 만든 빵이 오늘 다 팔리면 그걸로 족해요. 더 욕심내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빵을 만들고, 또 그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길 바라죠. 나도 손님도 빵으로 행복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오래오래 빵을 만들고 싶어요.*인터뷰 전문은「좋은생각」 1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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