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생각 카테고리

"오늘도 문을 열었습니다" <동아 서점 대표 김일수, 김영건 님>
2017.02.15   조회수 : 2,512    댓글 : 5개

_ 동아 서점 대표 김일수, 김영건 님

 

아들의 합류 이후 서점은 완전히 탈바꿈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신도시로 자리를 옮기고 규모도 120평으로 넓혔다. 다양한 장르의 책도 5만여 권 준비했다. 위기 때 되레 투자하는 일이 불안했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설레었다.

 

참 이상하대요. 준비할수록 이거 잘만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으니. 물론 초반엔 쉬는 날도 없이 고생했죠. 하루는 조명 몇 개만 켠 채 밤늦도록 책 을 정리했어요. 그러다 잠시 커피 한 잔 들고 주위를 쓰윽 보는데 마치 수만 권 의 책 속에 묻힌 기분이었죠. 책의 바다에 침잠하는 느낌이랄까. 아……. 내가 지금껏 이 속에서 살았고, 앞으로 살 곳도 여기구나 싶었죠. 책을 통해 묵직한 위로를 받은 날이었어요.

아버지의 연륜과 아들의 섬세함이 만나니 서점은 점차 입소문을 탔다. “속초에 이런 서점이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다음에 꼭 올게요. 문 닫으면 안 돼요!” “버텨 줘서 고맙습니다.” 손님들의 응원은 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사실 돈만 따졌으면 못할 일이에요. 오히려 가게를 이전하며 큰 빚을 졌는데요, 뭐. 이젠 일종의 사명감으로 하죠. 서점 일의 중심에 뭐가 있는지 아세요? 사람이 있어요.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이때까지 손해를 볼지언정 약속은 꼭 지켰어요. 장사는 정직이에요. 아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명감과 정직함의 가치를 하나둘 깨우쳤으면 해요. 이런 건 절대 말로 가르칠 수 없거든요.

61년간 삼대가 서점을 운영한 건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믿음이자 책을 향한 믿음이다. “이러다 종이 책이 없어지면 어쩌죠?” 걱정스레 묻자 각자 다른 이유로, 하지만 강단 있는 대답을 내놓았다.

 

절대로 안 없어집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요, 종이 특유의 냄새만 맡아도 좋아해요. 향기, 질감, 넘기는 감촉 등 오로지 종이 책만 줄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요즘 저처럼 젊은 사람들은 책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요. 이젠 읽는 책에서 소유하는 책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죠. 예쁜 책을 갖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면 충분히 수요가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3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5)

콩이이모
2017.02.17
 멋지네요 ^^
Teresa Cho
2017.02.18
삭제
 종이 책 보는 맛은 인터넷에서 읽는 글과는 완전 다릅니다. 
멋진 두분 화이팅입니다. 
김정옥
2017.02.20
삭제
 속초가면 생선백반  먹고 꼭 들려 볼게요
수원에서
스필버그
2017.03.15
삭제
속초 
그리고 동아서점 
그리고 파도 
그리고 청간정 
앙드레 김미숙
2017.04.11
삭제
책은 언제나 설레게 합니다
읽는것도 소유하는 개념도
그저 행복할 따름이예요
화이팅입니다

같은 카테고리의 글들

동행의 기쁨
바다가 나를 부를 때 <수중 사진가 장남원 님>
2017.06.12   조회수 : 567    댓글 : 4개
파도는 단 하루도 쉬는 법이 없다. 바다로부터 왔다가 다시 먼 바다로 물러가는 일을 지치지 않고 매일 한다. 수중 사진가 장남원 님(67세) 역시 오랜 시간 바다 곁에 머물렀다. 1979년부터 했으니 벌써 40년에 가깝다. 한때는 사진이 지겨워 장비를 모조리 팔았지만 머지않아 바다로 돌아갔다. 물속에서 사진 찍는 것만이 유일한 기쁨이었다.참 치열하게 지냈어요. 그런데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훌륭한 동료가 주위에 수두룩한 거예요. 잘나가는 기자를 만나면 ‘한번 이겨 보고 싶은데…….’ 하는 목마름이 가득했어요. 그런 갈증을 느끼던 차에 수중 사진을 접했죠. 선배들이 찍은 걸 보니 눈이 확 뜨이더라고요. 이 분야에 집중하면 인정받을 것 같았어요.당시 대다수의 사진가는 땅 위의 것을 찍는 데 열을 올렸다. 물속에 관심을 두는 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어릴 때부터 물을 좋아했던 그는 밤낮없이 수중 사진에 매달렸다. 스킨 스쿠버는 물론 빛 조절이나 각종 장비를 다루는 일에도 능해야 하기에 배울 것이 배로 늘었다. 퇴근 후 자료실을 찾아 우수한 해외 작품들을 살피며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홀로 고민했다. 주말에도 어김없이 찬 바다에 몸을 담그며 한 컷이라도 더 담으려 애썼다.사진에서 제일 중요한 건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는 거예요. 막상 들어가 보면 이것저것 신기한 게 많거든요. 괜히 여러 가지에 눈길 주다 보면 처음 목표를 이룰 수 없어요. 고래를 찍기로 했으면 오직 그것만 생각해야 해요.모두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수중 사진에는 제약이 많다. 잠수 시간, 깊이, 수온 등을 고려하지 않고 덤볐다간 위험에 빠진다. 처음엔 좋은 그림을 포기하고 올라오기가 무척 어려웠다고.깊은 바다에 몸을 담그면 전율할 정도의 고요함이 몸을 휘감는다. 때로는 그 고독함이 두려울 정도다. 그 속에서 그는 가만히 기다린다. 예전에는 기다리던 대상이 나타나면 우왕좌왕하다 망치기 일쑤였지만 이내 깨달았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참고 기다리면 기회는 또 온다는 사실을. ‘목표를 분명히 할 것, 조급하지 말 것, 욕심부리지 말 것.’ 바다는 그를 키워 낸 스승이었다.배운 것만큼 잃은 것도 있어요. 최근엔 패혈증을 앓아 전신 마취를 일곱 번이나 했죠. 멕시코 수중 동굴에 갔다가 물을 잘못 마셔 바이러스에 감염됐거든요. 심장, 대장, 혈관, 간 등 여러 군데를 수술하다 보니 삶의 의지가 사라지더라고요. 그런데 바닥을 치고서야 서서히 희망이 생겼어요. 문득 창밖을 보는데 비 내리는 광경 하나도 눈물 나게 아름다운 거예요. 반드시 여기에서 나가 저토록 눈부신 인생을 다시 살아 보리라 다짐했죠.큰 고비를 겪었으니 두려울 법도 한데 그는 내년 전시회 준비에 한창이다. 목숨이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왜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향할까. 몇 년 전 그가 남긴 글에서 그 이유가 어렴풋이 느껴졌다.오늘도 평화의 바다로부터 멀리 떠나 집채만 한 파도 속을 누빈다. 나는 인생 열락과 슬픔의 순간들을 바다에서 겪었다. 바다에 있으면 항상 바다의 하인처럼 행동했다. 바다의 뜻을 거스르지도, 바다를 이기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언젠가 바다가 잘했다며 이름을 불러 줄 때 나는 바다를 떠날 것이다.*인터뷰 전문은「좋은생각」7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행의 기쁨
"당신은 어떻게 일하고 있나요?" <택시 기사 정태성 님>
2017.05.11   조회수 : 6,573    댓글 : 9개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택시 기사 정태성 님(52세)은 이 말처럼 사명감을 갖고 일해 왔다. 그는 우동 한 그릇을 만들어도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끓여야 한다고 믿는다. 1997년 1월 23일, 그는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제 인생이 뒤바뀐 날이라 날짜까지 또렷이 기억합니다. 당시 신용 불량자에 빚쟁이 신세였죠. 게다가 두 돌 된 딸까지 잃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아이였어요. 수술을 마치고 나오니 그 여린 몸이 퉁퉁 부었죠. 의사가 말하길 오래 살기 어려울 거 같대요.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냈어요. 만약 아내가 임신했을 때 좀 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줬다면 건강하게 태어났을 텐데……. 제 탓이죠. 사업이 망해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늘 불안한 상태였으니까요.화장터에서 딸을 보낸 그는 실성해 며칠을 방황했다. 정신 차렸을 땐 잠실 대교였다. 도무지 살고 싶은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니 어떤 건물에서 사람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택시 기사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이들이었다. 순간 그에게 희망이 생겼다. ‘내겐 마지막 기회다. 택시 운전을 해 보자!’운전을 잘하기는커녕 지리도 몰랐지만 우선 차에 올랐어요. 끼니를 거르고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하루 열네 시간 운전했죠. 회사에 돌아와 차에서 내릴 때면 다리가 안 움직일 정도였어요. 그 고생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4개월마다 치아가 하나씩 빠지더라고요. 한 달 용돈 2만 원으로 이발 한 번 하고 목욕탕에 갔어요.그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고된 노동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술 취한 승객이 타자마자 심한 욕설을 내뱉었다. 꾹꾹 참고 목적지에 다다라 말했다. “손님, 요금 4,500원입니다.” 한데 그가 만 원짜리 다섯 장을 쥐고 한 장씩 뿌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잘 봐. 네가 욕먹은 대가다.” 그는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이 돈 당장 가져가요. 요금만 받겠습니다.’ 하고 소리치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 돈을 줍고 있더란다. 동전 하나가 아쉬운 시절이었다.그만둬야겠다 결심한 지 며칠 뒤였어요. 새벽부터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탔죠. 일하러 간다 하더라고요. 짠한 마음에 요금을 적게 받았더니 대뜸 화를 내며 젊은이한테 그래서야 되겠느냐며 막무가내로 5천 원을 주머니에 넣어 주는 거예요. ‘오늘 돈 많이 벌게. 어여 가.’ 하면서요. 친할머니도 생전에 몸이 불편했는데 살아 계셨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어요. 여태껏 제게 잘해 준 사람들이 떠올랐죠.그러고 보니 상처받은 경우보다 행복을 느낀 적이 훨씬 많았다. 고마운 사람들을 한동안 잊었을 뿐이었다. 운전 첫날이라고 하자 한 학생은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주며 “기사님, 파이팅!” 하며 용기를 북돋웠다. 승객이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가로등 없는 어두운 골목을 비춰 주자 냉장고 안 음식을 죄다 꺼내 와 품에 안겨 준 일도 있었다.제게 욕한 사람을 다시 만나면 절이라도 하고 싶어요. 인생 스승이니까요. 그날 이후 완전히 달라졌죠. 명품이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택시 기사로서 당당함을 지키며 일했어요. 13년 차가 되자 일에 애정이 커져 해외의 선진화된 택시 문화를 배우고 싶었죠.그는 친절한 서비스로 유명한 일본 엠케이(MK) 택시의 신입 사원 연수를 받고자 무려 백 장 넘는 편지를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대사관, 대기업, 서울시에서 받은 추천서를 보내도 마찬가지였다. 정식 직원만 연수받을 수 있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서서히 지칠 즈음 회사 부회장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가 사정했다. 그열정이 통한 걸까. 며칠 후 연수에 참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교육받고 한국에 온 뒤 복장과 서비스를 달리했어요. 차에서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하고 사고에 대비해 비상약과 심장 제세동기를 갖췄죠. 손님이 탈 땐 문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게 팔로 문틀을 받쳤고요. 33개의 친절 안내서도 만들었어요. 상황에 따른 승객 응대법을 정리해 둔 거죠. 처음엔 정말 어색했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움츠러들 적마다 부회장의 조언을 되새겼죠. ‘처음엔 가까운 동료들부터 자네를 비난할 걸세. 하지만 자부심을 갖고 10년간 하다 보면 택시 기사에 대한 인식이 천천히 바뀔 거야.’손님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공부해 자격증을 60여 개 땄다. 외국어, 레크리에이션, 응급 처치, 서비스 전문가 등 종류도 다양했다.저는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을 업으로 삼았어요. 살다 보니 주위에 이런 경우가 참 많더라고요. 그런데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일이라도 애정을 갖고,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노력하면 그 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와요.*인터뷰 전문은「좋은생각」6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행의 기쁨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중앙 카메라 수리 센터 대표 김학원 님>
2017.04.12   조회수 : 1,734    댓글 : 0개
기계식 카메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김학원 님(66세)은 꽤 유명하다. 그는 디지털 기기가 쏟아지는 요즘 세상에 50년 가까이 아날로그 카메라만 수리했다. 열네 살 때부터 카메라를 만졌다는 그는 경상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가난한 형편 탓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배웠다. 다행히 손재주가 좋아 삼촌 따라간 대전에서 시계와 카메라 파는 점포에 취직했다. 그는 낮엔 잔일하고 영업이 끝나면 가게 다락에서 잠들었다. 주인이 집에 가면 혼자였어요. 한번은 잠이 안 와 카메라 부품을 갖고 놀았죠. 밤새 붙들고 조립했는데 다음 날 주인이 묻대요. ‘이거 누가 만졌노?’ 두려움에 작은 목소리로 답했더니 앞으로 카메라 수리는 내게 맡긴대요. 원래는 전문점에 위탁했는데 말이죠.막막한 일이었다. 스승은 고사하고 책도 없이 어떻게 고친단 말인가. 당시 카메라는 무척 귀해 남의 손에 잘 맡기지 않았다. 혹시 부속이라도 뺄까 싶어 수리할 때 손님이 뒤에서 감시했다. 그는 기술이 서툴러 실수라도 할까 봐 여러 번 진땀 흘려야 했다. 그래도 어떡해요. 먹고살아야 하는데. 신기한 게 점점 호기심이 일었죠. ‘아, 요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하며 자꾸 만지니 손에 감각이 생기더라고요. 의외로 원리도 간단하고. 처음에 카메라를 쳐다보면 무슨 수로 고치나 짜증이 났는데 어느새 애정이 생겼죠. 못 고치면 일자리는 끝이라는 절박감에 더 매 달리기도 했고.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수록 해냈다는 쾌감이 밀려왔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나중엔 눈의 초점이 흐려져 멀리서 사람이 걸어와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마다 고사리손으로 눈을 쓱쓱 비비고 다시 부품을 잡길 5년,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실력을 펼쳤다. 쉬는 날도 없이 수십 년간 일한 그는 뒤늦게 자신만의 수리점을 차렸다. 지금의 ‘중앙 카메라 수리 센터’다.  그는 은근슬쩍 고쳐도 아무도 모를 사소한 부분까지 그냥 넘기지 않았다. 카메라를 하루에 한 대꼴로 고치 다 보니 아내도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좀 서둘러서 한 대 고칠 거 두세 대 고쳐야겠단 생각은 안 하셨어요?”라고 묻자 그가 답했다. 살아 봐요. 세상 이치가 절대 안 그래.빨리 작업하면 돈도 금세 벌 것 같지만 결국에는 손해로 돌아온다는 뜻이었다. 쉽게 돈 벌려고 하면 돼요? 대충 해서 건네면 손님이 다시 고쳐 달라고 와요. 같은 작업을 두 번 하니 오히려 일이 늘죠. 사람인지라 옆에서 재촉하면 왜 조급해지지 않겠어요. 그때마다 일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 지 생각했죠. 제일 기본은 카메라를 잘 고치는 거니까 거기에만 집중하려 했어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내가 안다. 스스로한테 떳떳해지자 하면서요. 이곳엔 여느 가게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흐른다. 어떤 손님은 자신이 직접 카메라를 만져 보겠다며 자리 잡았다. 그는 수리점에서 그게 웬 말이냐고 따져 묻는 대신 “그러 시든가.” 하며 자리 한쪽을 내주었다. 난생 처음 만난 사람과 나란히 앉아 카메라를 고치는 것이다.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넌지시 설명도 해 주면서. 기술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오면 알려 줘요. 어렵게 배웠다고 혼자 꽁꽁 싸매고 있으면 뭐해요. 다 나눠 줘야지. 난 반평생 일했지만 아직도 가난하죠. 그래도 괜찮아 요. 돈이야 먹고살 정도만 있으면 되니까. 부자 될 계획이라면 이렇게 살았겠어요? 사람들이 가게 문을 나설 때 환하게 웃으면 그걸로 족해요. 1년 쓸 카메라 몇 년 더 사용하게 해 주면 얼마나 좋아요. *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5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행의 기쁨
"너의 마음을 알기까지" <애견 훈련사 이웅종 님>
2017.03.09   조회수 : 4,466    댓글 : 5개
그는 26년째 날마다 개와 눈을 맞춘다. 아버지 닮아 동물을 좋아했던 그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 그는 목장 주인을 꿈꿨으나 하루아침에 집안에 그늘이 드리웠다. 생계 수단이었던 방앗간이 화재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버지마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났다.중학교 2학년 때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죠. 막노동도 가리지 않고 했어요. 학비를 벌어야 했으니까요.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목장 주인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내 꿈도 그렇게 잊히나 싶었죠. 그러다 군대에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군견을 본 거예요.그는 군견에 푹 빠졌다. “앉아. 일어서. 뛰어.” 말을 알아듣고 쏜살같이 움직이는 개를 보자 심장이 마구 뛰었다. 훈련소에 불이 났을 땐 끝까지 짖어 위험을 알릴 만큼 충성스러웠다. 그는 애견 훈련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동물과 함께여서 좋았다.한데 예상치 못한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찰떡같이 말을 알아듣던 개들이 막상 주인에게 돌아가면 말썽꾸러기로 돌변했다. 당시 손님으로 인연을 맺은 한 지인은 이렇게 조언했다.개랑 사는 건 주인이지 네가 아니잖아. 큰물에 가서 공부해 봐. 그 뒤엔 네가 아는 걸 주인에게 가르쳐 주는 거야. 아마 뱉어 낼수록 더 많이 얻을 거다.‘뱉어 내긴 뭐를? 어깨너머로 어떻게 배운 기술인데 그냥 알려 주다니. 그럼 누가 나한테 오겠어? 어림없지.’ 그 말을 들었을 땐 정말 황당했단다. 그런데 곰곰 따져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전과 다른 방식에 집중했다. 훈련 문화를 바꿔 보기로 한 것이다.견주에게 직접 방법을 일러 줬죠. 신기하게도 아는 걸 나눌수록 찾는 이가 늘었어요. 주된 문제는 단기간에 변화를 원한다는 거였죠. 그럴 땐 조급함을 버리라고 설득했어요. 예를 들어 상처 받은 녀석들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아요. 이때 훈련한다며 목줄을 당기면 반감만 생기죠. 간식을 두고 나가거나 따듯한 눈빛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주인이 나를 믿는다는 걸 인지하면 어떤 개도 달라져요. 그게 훈련의 시작이죠.“한때는 개가 제게 의지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돌이켜 보니 오히려 제가 의지하고 배울 때가 많더라고요. 특히 주인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 모습이 볼수록 놀라웠어요.‘나도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기보다 사람 사 이의 의리를 지키며 살아야겠구나.’ 다짐한 게 여러 번이에요.”*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4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행의 기쁨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헤어 디자이너 차홍 님>
2017.02.14   조회수 : 2,423    댓글 : 5개
열등감이 심했어요. ‘난 집에서 지원해 주지 않고 시골 출신이라 겉모습이 세련되지도 않아.’이런 식으로 따지면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악착같이 했어요.저는 추억을 담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휴가 때도 크리스마스에도 연습만 했거든요.독하게 연습만 하는 애, 누구와 어울리기 싫어하는 애라는 오해도 샀죠.그렇게 애쓴 결과는 어땠을까? 남보다 느려도 너무 느렸다. 매번 시험에서 떨어져 후배에게도 밀리는 신세였다. 보통 길어도 3년이면 헤어 디자이너로서 손님을 만나는데 그녀는 자그마치 6년이 걸렸다. 먹고 자는 시간을 아껴 노력했는데도 말이다.제 장점 중 하나가 낙천적인 거예요. 내게도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며 대범하게 넘겼죠.다행히 헛된 시간은 아니었는지 막상 손님 앞에 섰을 때 자신감이 넘쳤어요.탄탄히 기본기를 쌓은 덕분이었죠.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추천하고 누구를 만나든 좋은 점을 발견해 칭찬을 건네니 저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늘었어요.여러 손님을 만날수록 깨우치는 것도 생겼죠.”한번은 손님에게 누가 봐도 예쁜 파마를 해 줬다. 한데 며칠 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온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직업 특성상 머리 묶을 일이 많은 손님에겐 맞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누군가의 머리를 만지는 건 여러 요소를 헤아리는 작업이었다. 직업, 생활 습관, 평소 즐겨 입는 옷을 살펴 알맞는 머리 모양을 권해야 했다.“디자인의 기본은 배려예요. 상대가 되어 보는 거죠. 어느 날은 길에서 손님을 만났는데 머리했던 날 예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엉망인 거예요. ‘손님이 미용실에 오는 건 하루뿐이고 그 외 시간엔 혼자 손질해야 하는구나.’ 싶어 반성했어요. 제가 놓친 부분이었죠. 그 후 도움을 주려고 평소에도 따라 할 수 있는 손질법을 연구해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렸어요.” 그게 ‘셀프 헤어’의 시초였다. 전문가 손길 없이 머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그녀는 방송, 잡지, 라디오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최근엔 헤어 브랜드 ‘로레알’에서 뽑은 아홉 명의 헤어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오래전, 세계적 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리란 걸 예상이나 했을까.‘이 업계를 싹 바꾸겠다.’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 등 예전 제 동기들은 포부가 대단했어요.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우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싶어 입만 벌렸죠. 제가 하는 다짐이라곤 주어진 오늘에 집중하자였거든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매일 조금씩 노력했어요.”*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2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