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새벽 햇살

교도소에서 온 희망 편지

되찾은 시간
2018.08.08   조회수 : 63    댓글 : 0개
처음 이곳에 왔을 땐 후회가 컸다. 한데그것도 잠시, 어느새 수형 생활에 안주했다. 바깥보다 규율이 강하지만, 잘 지키다보면 일과에 익숙해진다.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며 지냈다.그러던 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는모든 일에 열심이었다.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를 건네고, 뭐든 나서서 했다. 틈나는 대로 공부하고, 운동도 했다. 교도관들에게도 칭찬을 들었다.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리 열심이야?” 그가 답했다. “여기서 몇 년이나 살았지만, 돌아보니 한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얼마 뒤 바깥에 나갈 생각을 하니 덜컥겁이 나더란다. 허무하게 보낸 시간이 후회스러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제 미래와 다시 만날 가족을 위해 할 수있는 일은 무엇이든 찾아 하고 있어요.”그는 직업 훈련도 신청했다. 일상의 사소한 일도 성심껏 하니 성취감이 생겼다. 자포자기하고 지낼 땐 가족의 격려와 눈물이어떤 의미인지 몰랐으나 이젠 알겠단다.듣고 보니 그가 무척 부러웠다. ‘나도 해보자. 할 일이 있을 거야.’ 내 마음에 새로운바람이 불었다. 그날부터 나도 ‘포기’ 대신‘도전’을 새겼다.둘러보니 열심히 사는 이들은 그만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그들의 눈빛,표정, 자신감 있는 행동을 보며 잃어버린나를 되찾았다. 그들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길동무였다.
내게 남은 기쁨이 있다면
2018.07.09   조회수 : 513    댓글 : 0개
세상에 하나뿐인 내 동생아, 너에게처음 글을 쓰는구나. 널 생각하면 그저가슴 아프고 미안할 뿐이야. 차마 말로할 자신이 없어 이렇게 펜을 든다.큰 죄를 짓고 이곳에 와서 너의 삶을돌아보았어. 어릴 적부터 넌 2순위였지. 못난 형은 장남이라는 이유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너는 많은 걸 양보했어. 나는 암산, 미술, 수영 등 여러 학원을 다니다 금방 싫증 내고 그만두었지만 넌 가지 못했지. 너까지 보내기엔 형편이 빠듯했으니. 나는 늘 새 옷만 입고넌 물려받아야 했어. 우리가 싸워도 동생이란 이유로 더 혼났지. 한데 너는 한번도 부모님에게 불평하지 않았어. 욕심 많고 이기적인 나 때문에 네가 너무일찍 철든 것 같다.네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가 말했지. “하고 싶으면 하거라. 하지만 뒷바라지는 못해 준다.” 너는 아르바이트하며 대학 모델 학과에 합격했어. 어렵게 붙었을 텐데 입학 등록하자마자 자퇴해야 했지. 그때 내가 이곳에왔으니. 네 평생 처음 얻은 기회를 나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어.경찰서에 간 첫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네가 제일 먼저 유치장에 찾아왔지. 내 모습을 보고 펑펑 울며 말했어. 아무 걱정 말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나와서 살아갈 일은 네가 알아서 하겠다며.그땐 당혹감과 두려움에 그저 같이 울었다. 한데 지금 그때 네 모습과 말을떠올리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입장 바꿔 내가 너라면 그렇게 말할 수있었을까?재판이 끝나고 형이 확정된 뒤에는 몇 년간 널 보지 못했어. 네가 찾아오지 않았으니. 그런 널 원망하진 않아. 그럴 자격조차없는걸.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그러던 어느 날 네가 면회 왔어. 네 첫마디는 어머니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는거였지. 징역 사는 동안 가장 두려운 일이었기에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는데.충격으로 멍한 나에게 넌 말했지. 어머니잘 보내 드렸다고, 나 때문에 돌아가신 거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나는 그 말에 또놀랐어. 어머니까지 떠나보내고 내게 얼마나 화가 났겠니. 나라면 원망을 쏟아 냈을거야. 아니면 아예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오랜만에 본 네게 미안하면서도 반가웠어. 그런데 그 후 다시 너를 보지 못했을 땐하루하루가 힘들었어. 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눈에 밟히더라. 홀로 아버지까지 챙기느라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 날찾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하게 지내길기도하고 또 기도했다.그러면서도 네가 그립고 보고 싶더라. 오랜만에 널 본 반가움과 든든함이 잊히지않았어. 다시 만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혹은 영영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그렇게 일 년이 지나 네가 다시 찾아왔어. 넌 예전처럼 웃으며 나를 반겼지. 아무일 없다는 듯 잘 지내느냐며, 아픈 데는 없는지 안부를 물었어. 아버지 잘 챙기고 있으니 걱정 말고 지내라고 했지. 그 모습에죄책감이 커져 면회 내내 네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어.차라리 내 탓을 하지 그랬니. 모든 게 나때문이라고. 그럼 내 마음이 조금 후련할텐데.널 보고 오는 길에 미소가 멈추지 않았어. 미안함보다 반가움이 앞서서. 그런데눈에서는 눈물이 나더라. 내게 오기까지 네가 했을 마음고생이 떠올라서.동생아, 못난 형의 죄를 어떻게 갚을지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양보만 한 너에게나는 커서도 짐이 되는구나. 미안하다고할 염치조차 없다. 너만 생각하면 눈물이나. 뭔가 해 주고 싶어도 지금은 아무것도할 수가 없어.그저 매일 널 위해 기도할 뿐이야. 신이너의 고통, 아픔, 시련, 슬픔은 모두 나에게주고, 우리에게 남은 희망, 기회, 기쁨이 있다면 내 몫까지 너에게 주길…….
더불어 사는 법
2018.06.07   조회수 : 1,014    댓글 : 0개
고시원에 살며 정부 지원금과일용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2평 남짓한 방에 틀어박혀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외로움이 사무쳤다.내가 기댈 것은 술뿐이었다. 술에 찌들어 요행만 바라다가 결국불법을 저질러 이곳에 왔다. 한번나쁜 길로 빠진 마음이 걷잡을수 없이 커진 탓이다. 체포되어서야 죄를 멈출 수 있었다. 철창을 마주하니 자괴감과 비참함이 밀려왔다.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국선 변호사를 만났다. 나는 그때도 그냥 돌아나왔다.“할 말 없습니다.”변호사는 그런 나를 보며 탄식했다. 하지만 괜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며칠 후, 변호사가 유치장으로 접견을 왔다. 그는 내게 부탁했다.“일기라도 써 보세요.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적어서 제게 보내 주세요.”나는 선뜻 응하지 못했다.“생각해 볼게요.”얼마 뒤 구치소로 이송을 왔다. 여전히 마음은 얼어붙어 있었다. 누구와도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간식거리를 나눠 주며 호의를 베푸는 이가 있어도 손사래 쳤다. 나는 혼자에 익숙해졌다.그러던 어느 날, 노트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에 출소한 수용자가 두고 간 것이었다. 변호사의 말이 생각나 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변호사에게 보냈다.며칠이 지나 변호사가 접견을 왔다.“일기 잘 받았습니다.”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변호사는 부탁할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며 짧게 답하고 말았다.그래도 일기는 매일 썼다. 처음엔 온통 나 자신을 향한 비난, 후회, 원망, 분노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다 차츰 내가 지은 죄를 넘어 내 삶 전체를 새롭게돌아보았다.재판을 앞두고 다시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는 내 일기 내용을 하나하나기억하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을 헤아려 영치금을 넣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내가 “읽을 만한 책이 없다. 영어 단어라도 외우고 싶다.”라고 쓴 걸 보고 책과영어 사전도 보내겠다고 했다.접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생각지도 못한 변호사의애정과 열의에 고마움이 솟아났다. 내 외로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나는 전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한결 밝아진 내게 동료 수용자들도 먼저 다가와 주었다.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자 함께 걱정해 주고, 이곳 생활이 쉽지 않지만 힘내서 잘 지내 보자며 격려해 주었다.자격지심으로 꽁꽁 숨은 나를 변호사와 동료들이 품어 주었다. 36.5도의 체온이 얼마나 따스한지 깨달았다.비록 나의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내 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일기를 쓴다.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축복이 있길 바란다.
내가 만든 감옥
2018.04.27   조회수 : 1,257    댓글 : 0개
이곳에 오면서 가족, 친구, 직장 등 세상모든 것에서 분리되었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고 매달린 ‘성공’에서도 멀어지고 말았다.내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해 그저 시간만되돌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담장 밖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불가능한 바람이었다.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사랑하는아내와 세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성공을 위해 내 시간과 열정을 모두 일에쏟았다. 밤늦게까지 하루 500킬로 넘게 운전하며 거래처를 오갔다. 그러느라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조금만 더 잘되면 삶이 나아질 거라 믿었다. 함께하지 못하는 가족에겐 미안했지만,미래를 위해 그쯤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해 주지 못하는 것들은 나중에보상하리라 다짐할 뿐이었다.지난 삶을 돌아보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이 아니라 내가 살던 담장 밖의삶이 감옥이었다는 것을.내가 추구하는 목표와 그것을 성취하려는 욕심에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나를 옭아맸다. 돈과 일에만 매달려 잘못되는 줄도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렸다. 다시 오지 않을오늘의 행복을 포기했고, 가족들도 그렇게살게 했다.이곳에 들어옴으로써 비로소 내가 만든감옥에서 나왔다. 나 자신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이제는 안다. 행복은 가족이 함께 쌓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것이 무엇보다 큰기쁨임을.세상의 가장들이 자기 삶에 갇히지 않고,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시간을 누리며 살길 바란다.
경운기를 타고
2018.04.06   조회수 : 1,629    댓글 : 2개
아버지는 못난 아들 면회 오는 날이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경운기 시동을 걸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경운기 타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경운기를 몰면 마치 나도 함께 탄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큰형님 차를 거절하고 굳이 경운기를 몰고 왔다. 추운 날엔 중간에 멈춰 모닥불을 펴고 손을 녹이곤 했다.​그렇게 차로 십 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달려 터미널까지 갔다. 그다음 진주로 가는 첫차에 올랐다. 진주에 도착해서는 두 시간마다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택시를 타면 금방이지만, 조금이라도 아껴 내게 맛있는 것을 사 주려는 마음이었다. 네다섯 시간 만에 가까스로 도착한 교도소. 그러나 접견 시간은 짧기만 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엔 유리 벽이 있어 목소리마저 스피커를 통해 들어야 했다.​그런 아버지가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오랜만에 나를 찾아온 아버지는 얼굴이 부쩍 야위었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연로해서인 줄 알았다. 한데 알고 보니 위암 수술을 받고 퇴원하자마자 한달음에 온 거였다. 병마와 싸우느라 수척해진 것이었다. 이후에 암이 재발해 다시 입원하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짬을 내어 나를 만나러 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이 모든 사실을 알았다. 나를 걱정해 아픈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언제 출소하느냐는 물음에 곧 나간다고만 답했다. 그게 아버지를 안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말이라고 생각했다.​“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지 못한저를 용서하세요.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앞으로는 봉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눈물의 미역국
2018.03.08   조회수 : 2,101    댓글 : 2개
구치소에서의 일이다. 재판이 진행 중인 미결수들 방으로 배정되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베개가 날아들었다.상황을 보니 나를 겨냥한 것은 아니고, 두 사람이 싸우면서 던진 게 날아온 거였다. 서로 거칠게 덤벼드는 통에 교도관이 와서 겨우 말렸다. 한구석에 넋 놓고 서 있던 나는 앞이 아득해졌다.‘고달프겠군.’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4385 번호표를 단 그녀는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버럭내고 툭하면 물건을 던져 방 식구들을 힘들게 했다. 구치소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녀가 하루빨리 재판을 끝내고 방에서 나가기만을 바랐다.한번은 그녀가 방에서 나가더니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다른 방으로 간 줄 알고 다들 좋아한 터라 다시 들어서는 그녀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산하여 병원에 다녀온 것이었다.구치소에 처음 들어올 때 임신 여부를 검사한다.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는데 몸이 약해 그만 유산한 것이다. 성치 않은 몸으로도 그녀의 심술은 날 로 심해졌다. 괴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다른 방에서도 그녀와 지내는 것을 싫어해 보낼 곳도 없었다.몇 달간 함께 생활하면 마음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의견이 비슷하고 성격이 잘 맞는 이들과 친해졌다. 고된 이곳 생활에서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지냈다.그런데 그녀는 외톨이가 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와도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며칠 후 점심시간이었다. 평소엔 작고 네모난 배식구를 통해 밥을 받았다. 한데 그날은 교도관이 배식구가 아닌 방 철문을 덜컹 열었다. 그리고 큰 냄비를 건넸다. 다들 놀란 눈으로 보자 교도관이 말했다.“4385, 미역국이야. 따뜻하게 이불 속에 두고 수시로 먹어. 알았지?”교도관은 돌아서려다 말고 덧붙였다.“4385만 먹어!”직원 식당에 나온 미역국을 유산한 그녀에게 주려고 냄비에 담아 온 것이다. 냄비에는 족히 스무 그릇은 될 법한 국이 담겨 있었다.방 맏언니가 국그릇에 미역국을 담아 그녀 앞에 놓아 주었다. 그리고 냄비는 이불로 덮어 두었다. 미역국을 떠먹던 그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미역국을 먹으며 오래도록 흐느꼈다.그날 이후 그녀는 달라졌다. 방 청소를 하고 설거지도 도왔다. 살뜰하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우리 질문에 짧게나마 대답도 했다.다른 곳도 아닌 구치소에서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어땠을까.임신은 물론 유산 소식까지 알렸으나 면회 한 번 오지 않는 남편에게 큰 상처를 받은 듯했다.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방을 떠나는 날, 그녀는 제빵 기술을 배워 좋은 일 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그녀를 변하게 만든 건 무얼까. 교도관은 규정을 어겨 자칫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녀에게 위로의 선물을 건넸다. 상처를 준 것도, 그 상처를 위로한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음지에서도 꽃이 피듯 이곳에도 사람을 품어 주는 사랑의 온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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