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새벽 햇살

교도소에서 온 희망 편지

나를 사랑하기new
2018.12.07   조회수 : 62    댓글 : 1개
나는 축복받지 못한 채 태어났다. 갓난아이 때 부모님에게 버려졌다.어떤 분들의 도움으로 나는 한 가정에 입양됐다. 여섯 살까지는 귀여움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하지만 행복도 잠시, 양부모님의 불화로다시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그러다 여덟 살에 보육원에 맡겨졌다.친부모와 양부모에게 두 번 버림받은 나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초등학생 때도시락을 싸 가지 못해 물로 배를 채운 일도 잊지 못한다.서러워하며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을 간절히 기다렸다. 한 아이가 엄마와 손잡고핫도그를 먹으며 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그만 엉엉 운 적도 있다.열여덟 살에 보육원을 퇴소했다. 사회는냉정한 곳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두려웠다.갈수록 성격이 거칠고 비뚤어졌다. 수차례 싸움을 하며 말썽을 일으키다 결국 이곳까지 왔다. 내게 내려진 형벌 앞에 나는무너져 내렸다.이곳에서 깨달은 게 있다. 나의 정체성과내 삶을 비관하며 보낸 사십 년의 세월이허무했다. 무엇보다 그간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자숙의 시간을 보내며 운동과 독서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중이다. 늘 부정적이던 사고방식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수감생활 중 얻은 큰 변화다.그간 수없이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며 지냈다. 출소를 앞두고 다짐한다. 자유를 되찾으면 나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며살겠다고.
아들 곁으로
2018.10.10   조회수 : 403    댓글 : 3개
나는 유치원 졸업을 앞둔 일곱 살 아들과 둘이 살았다. 일찍 이혼하고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한데 아빠 될 준비가 부족해서였을까, 돌아보니 아이에게 상처만 주었다.나 또한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일찍 이혼해 홀어머니 곁에서 외롭게 자랐다. 그래서 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외로움과 불안감을 아이에게 똑같이 주고 말았다.이곳에 온 날 아침, 나는 구속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여느 때처럼 일어나 아이 유치원 보낼 준비를 하고 아침밥을 차려 주었다. 등원 버스 타러 가는길에 왠지 마음이 이상했다. 긴 이별을 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게 뽀뽀하고버스에 올라 손 흔든 아이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아이를 안아 주지 못했다.이곳에 오자 눈앞이 캄캄했다. 머릿속엔 아이 생각뿐이었다.지금은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아빠가 인사도 없이 사라져 얼마나불안했을까? 내 잘못으로 인해 뒤바뀐 환경.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힘들것이다.유치원 졸업식이 열렸으나 나는 아이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홀로 참석한 어머니는 손자에게 말했다.“할머니가 깜빡하고 꽃을 못 사 왔어. 미안해.”그러자 아이가 답했다.“괜찮아. 추우니까 얼른 집에 가자.”얼마나 쓸쓸했을까. 할머니 걱정까지 하는 아이 생각에 가슴이 무너졌다. 초등학교 입학식도 아이에겐 외로운 추억으로 남았다.시간이 흘러 봄이 되자 아이가 어머니와함께 접견을 왔다. 나는 면회 내내 창 너머에 있는 아이를 안아 줄 수도, 손잡아 줄수도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렸다.나는 편지를 썼다.“사랑하는 아들, 아빠가 이곳에 있어 깜짝 놀랐지? 우선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구나. 아빠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서 벌을 받으러 왔어. 아빠 대신 사랑하는 할머니가 옆에 있잖아. 할머니 말 잘 듣고 씩씩하게 지내면 아빠 금방 갈 거야. 아빠가 보고 싶을 때는 기도하렴. 그럼 한결괜찮아질 거야. 아빠는 늘 아들 마음속에있어. 너는 소중하다는 걸 늘 기억하렴.”아이는 면회 와서 울기만 했다. 가기 전에는 몇 번씩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눈물 흘리며 자책했다.‘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나는 평생 이시간을 잊지 못하리라.’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내 그릇된 행동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곳에 있는 시간이 내게 다시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한다. 말투도 고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한 달에 한 번씩 면회 오는 아이가 여름방학 땐 매주 찾아왔다. 한번은 아이가 물었다.“아빠, 여기서도 아이스크림 먹어요?”내 생활이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더운 날씨에 걱정되어 물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 오면 안 된다는 것만큼은 알려 주고싶어 말했다.“여긴 슈퍼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 힘든 곳이야. 아들은 아이스크림을 사러 슈퍼에 갈 수 있지만 여긴 그런 자유가없어. 나쁜 마음으로 살면 행복을 누리지못해. 그러니까 우리 아들도 친구들이랑싸우거나 거짓말하지 말고 바른 마음으로지내야 하는 거야.”이제는 면회 때 아이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한다. 하지만 돌아서면 여전히슬프다. 아이는 매일같이 나를 생각하며기도한단다. 나도 다짐했다. 다시는 아이와이별하지 않겠노라고.아이를 위해 이 시간을 성실히 보내는 것이 내 첫 번째 목표다. 오늘도 아들 곁으로돌아가는 날을 꿈꾼다.
자연으로 돌아가
2018.09.07   조회수 : 657    댓글 : 0개
나는 농업 학교를 졸업한 뒤 수박 농사에 도전했다. 평생 가난하게 살며 농사만지은 부모님 그늘에서 자란 터였다.부모님의 만류에도 젊은 패기로 밭 이만여 평을 임대하고, 대출을 받아 농기계를구입했다. ‘난 아버지처럼 가난한 농부는안 될 거야.’덜컥 큰 규모로 일을 벌이니 예상보다 자재비, 인건비, 농약값 등이 적잖았다. 우여곡절에도 수박은 튼실하게 자랐으나, 장마로 인해 수박값이 예년의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결국 헐값에 처분했다. 손에 남은 건7천만 원의 빚뿐이었다.모든 걸 정리하고 연고 없는 서울로 갔다. 식당 설거지, 일용직 노동 등을 전전했다. 기댈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마음을 짓눌렀다.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으로 갔다. 앙상해진 아버지는 내게 유언을 남겼다. “어디 갔다 왔냐. 밥은 먹었냐? 너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해. 도시는 너와 맞지 않아.” 나는대답하는 대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떠나보냈다.그럼에도 나는 다시 도시로 갔다. 돈의유혹을 이기지 못해 잘못을 저질렀고, 결국 이곳에 들어왔다.아버지 뜻대로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지못했음을 후회한다. 이제는 안다. 돈과 성공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내가 돌아갈 곳은 고향뿐인 것도.자연으로 돌아가 정직한 땀방울로 땅을일구며 속죄하고 싶다. 아버지 유언에 삶으로 답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되찾은 시간
2018.08.08   조회수 : 920    댓글 : 0개
처음 이곳에 왔을 땐 후회가 컸다. 한데그것도 잠시, 어느새 수형 생활에 안주했다. 바깥보다 규율이 강하지만, 잘 지키다보면 일과에 익숙해진다.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며 지냈다.그러던 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는모든 일에 열심이었다.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를 건네고, 뭐든 나서서 했다. 틈나는 대로 공부하고, 운동도 했다. 교도관들에게도 칭찬을 들었다.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리 열심이야?” 그가 답했다. “여기서 몇 년이나 살았지만, 돌아보니 한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얼마 뒤 바깥에 나갈 생각을 하니 덜컥겁이 나더란다. 허무하게 보낸 시간이 후회스러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제 미래와 다시 만날 가족을 위해 할 수있는 일은 무엇이든 찾아 하고 있어요.”그는 직업 훈련도 신청했다. 일상의 사소한 일도 성심껏 하니 성취감이 생겼다. 자포자기하고 지낼 땐 가족의 격려와 눈물이어떤 의미인지 몰랐으나 이젠 알겠단다.듣고 보니 그가 무척 부러웠다. ‘나도 해보자. 할 일이 있을 거야.’ 내 마음에 새로운바람이 불었다. 그날부터 나도 ‘포기’ 대신‘도전’을 새겼다.둘러보니 열심히 사는 이들은 그만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그들의 눈빛,표정, 자신감 있는 행동을 보며 잃어버린나를 되찾았다. 그들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길동무였다.
내게 남은 기쁨이 있다면
2018.07.09   조회수 : 1,405    댓글 : 2개
세상에 하나뿐인 내 동생아, 너에게처음 글을 쓰는구나. 널 생각하면 그저가슴 아프고 미안할 뿐이야. 차마 말로할 자신이 없어 이렇게 펜을 든다.큰 죄를 짓고 이곳에 와서 너의 삶을돌아보았어. 어릴 적부터 넌 2순위였지. 못난 형은 장남이라는 이유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너는 많은 걸 양보했어. 나는 암산, 미술, 수영 등 여러 학원을 다니다 금방 싫증 내고 그만두었지만 넌 가지 못했지. 너까지 보내기엔 형편이 빠듯했으니. 나는 늘 새 옷만 입고넌 물려받아야 했어. 우리가 싸워도 동생이란 이유로 더 혼났지. 한데 너는 한번도 부모님에게 불평하지 않았어. 욕심 많고 이기적인 나 때문에 네가 너무일찍 철든 것 같다.네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가 말했지. “하고 싶으면 하거라. 하지만 뒷바라지는 못해 준다.” 너는 아르바이트하며 대학 모델 학과에 합격했어. 어렵게 붙었을 텐데 입학 등록하자마자 자퇴해야 했지. 그때 내가 이곳에왔으니. 네 평생 처음 얻은 기회를 나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어.경찰서에 간 첫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네가 제일 먼저 유치장에 찾아왔지. 내 모습을 보고 펑펑 울며 말했어. 아무 걱정 말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나와서 살아갈 일은 네가 알아서 하겠다며.그땐 당혹감과 두려움에 그저 같이 울었다. 한데 지금 그때 네 모습과 말을떠올리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입장 바꿔 내가 너라면 그렇게 말할 수있었을까?재판이 끝나고 형이 확정된 뒤에는 몇 년간 널 보지 못했어. 네가 찾아오지 않았으니. 그런 널 원망하진 않아. 그럴 자격조차없는걸.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그러던 어느 날 네가 면회 왔어. 네 첫마디는 어머니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는거였지. 징역 사는 동안 가장 두려운 일이었기에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는데.충격으로 멍한 나에게 넌 말했지. 어머니잘 보내 드렸다고, 나 때문에 돌아가신 거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나는 그 말에 또놀랐어. 어머니까지 떠나보내고 내게 얼마나 화가 났겠니. 나라면 원망을 쏟아 냈을거야. 아니면 아예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오랜만에 본 네게 미안하면서도 반가웠어. 그런데 그 후 다시 너를 보지 못했을 땐하루하루가 힘들었어. 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눈에 밟히더라. 홀로 아버지까지 챙기느라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 날찾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하게 지내길기도하고 또 기도했다.그러면서도 네가 그립고 보고 싶더라. 오랜만에 널 본 반가움과 든든함이 잊히지않았어. 다시 만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혹은 영영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그렇게 일 년이 지나 네가 다시 찾아왔어. 넌 예전처럼 웃으며 나를 반겼지. 아무일 없다는 듯 잘 지내느냐며, 아픈 데는 없는지 안부를 물었어. 아버지 잘 챙기고 있으니 걱정 말고 지내라고 했지. 그 모습에죄책감이 커져 면회 내내 네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어.차라리 내 탓을 하지 그랬니. 모든 게 나때문이라고. 그럼 내 마음이 조금 후련할텐데.널 보고 오는 길에 미소가 멈추지 않았어. 미안함보다 반가움이 앞서서. 그런데눈에서는 눈물이 나더라. 내게 오기까지 네가 했을 마음고생이 떠올라서.동생아, 못난 형의 죄를 어떻게 갚을지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양보만 한 너에게나는 커서도 짐이 되는구나. 미안하다고할 염치조차 없다. 너만 생각하면 눈물이나. 뭔가 해 주고 싶어도 지금은 아무것도할 수가 없어.그저 매일 널 위해 기도할 뿐이야. 신이너의 고통, 아픔, 시련, 슬픔은 모두 나에게주고, 우리에게 남은 희망, 기회, 기쁨이 있다면 내 몫까지 너에게 주길…….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