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새벽 햇살

교도소에서 온 희망 편지

더불어 사는 법
2018.06.07   조회수 : 270    댓글 : 0개
고시원에 살며 정부 지원금과일용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2평 남짓한 방에 틀어박혀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외로움이 사무쳤다.내가 기댈 것은 술뿐이었다. 술에 찌들어 요행만 바라다가 결국불법을 저질러 이곳에 왔다. 한번나쁜 길로 빠진 마음이 걷잡을수 없이 커진 탓이다. 체포되어서야 죄를 멈출 수 있었다. 철창을 마주하니 자괴감과 비참함이 밀려왔다.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국선 변호사를 만났다. 나는 그때도 그냥 돌아나왔다.“할 말 없습니다.”변호사는 그런 나를 보며 탄식했다. 하지만 괜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며칠 후, 변호사가 유치장으로 접견을 왔다. 그는 내게 부탁했다.“일기라도 써 보세요.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적어서 제게 보내 주세요.”나는 선뜻 응하지 못했다.“생각해 볼게요.”얼마 뒤 구치소로 이송을 왔다. 여전히 마음은 얼어붙어 있었다. 누구와도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간식거리를 나눠 주며 호의를 베푸는 이가 있어도 손사래 쳤다. 나는 혼자에 익숙해졌다.그러던 어느 날, 노트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에 출소한 수용자가 두고 간 것이었다. 변호사의 말이 생각나 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변호사에게 보냈다.며칠이 지나 변호사가 접견을 왔다.“일기 잘 받았습니다.”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변호사는 부탁할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며 짧게 답하고 말았다.그래도 일기는 매일 썼다. 처음엔 온통 나 자신을 향한 비난, 후회, 원망, 분노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다 차츰 내가 지은 죄를 넘어 내 삶 전체를 새롭게돌아보았다.재판을 앞두고 다시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는 내 일기 내용을 하나하나기억하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을 헤아려 영치금을 넣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내가 “읽을 만한 책이 없다. 영어 단어라도 외우고 싶다.”라고 쓴 걸 보고 책과영어 사전도 보내겠다고 했다.접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생각지도 못한 변호사의애정과 열의에 고마움이 솟아났다. 내 외로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나는 전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한결 밝아진 내게 동료 수용자들도 먼저 다가와 주었다.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자 함께 걱정해 주고, 이곳 생활이 쉽지 않지만 힘내서 잘 지내 보자며 격려해 주었다.자격지심으로 꽁꽁 숨은 나를 변호사와 동료들이 품어 주었다. 36.5도의 체온이 얼마나 따스한지 깨달았다.비록 나의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내 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일기를 쓴다.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축복이 있길 바란다.
내가 만든 감옥
2018.04.27   조회수 : 620    댓글 : 0개
이곳에 오면서 가족, 친구, 직장 등 세상모든 것에서 분리되었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고 매달린 ‘성공’에서도 멀어지고 말았다.내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해 그저 시간만되돌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담장 밖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불가능한 바람이었다.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사랑하는아내와 세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성공을 위해 내 시간과 열정을 모두 일에쏟았다. 밤늦게까지 하루 500킬로 넘게 운전하며 거래처를 오갔다. 그러느라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조금만 더 잘되면 삶이 나아질 거라 믿었다. 함께하지 못하는 가족에겐 미안했지만,미래를 위해 그쯤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해 주지 못하는 것들은 나중에보상하리라 다짐할 뿐이었다.지난 삶을 돌아보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이 아니라 내가 살던 담장 밖의삶이 감옥이었다는 것을.내가 추구하는 목표와 그것을 성취하려는 욕심에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나를 옭아맸다. 돈과 일에만 매달려 잘못되는 줄도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렸다. 다시 오지 않을오늘의 행복을 포기했고, 가족들도 그렇게살게 했다.이곳에 들어옴으로써 비로소 내가 만든감옥에서 나왔다. 나 자신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이제는 안다. 행복은 가족이 함께 쌓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것이 무엇보다 큰기쁨임을.세상의 가장들이 자기 삶에 갇히지 않고,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시간을 누리며 살길 바란다.
경운기를 타고
2018.04.06   조회수 : 1,018    댓글 : 1개
아버지는 못난 아들 면회 오는 날이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경운기 시동을 걸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경운기 타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경운기를 몰면 마치 나도 함께 탄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큰형님 차를 거절하고 굳이 경운기를 몰고 왔다. 추운 날엔 중간에 멈춰 모닥불을 펴고 손을 녹이곤 했다.​그렇게 차로 십 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달려 터미널까지 갔다. 그다음 진주로 가는 첫차에 올랐다. 진주에 도착해서는 두 시간마다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택시를 타면 금방이지만, 조금이라도 아껴 내게 맛있는 것을 사 주려는 마음이었다. 네다섯 시간 만에 가까스로 도착한 교도소. 그러나 접견 시간은 짧기만 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엔 유리 벽이 있어 목소리마저 스피커를 통해 들어야 했다.​그런 아버지가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오랜만에 나를 찾아온 아버지는 얼굴이 부쩍 야위었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연로해서인 줄 알았다. 한데 알고 보니 위암 수술을 받고 퇴원하자마자 한달음에 온 거였다. 병마와 싸우느라 수척해진 것이었다. 이후에 암이 재발해 다시 입원하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짬을 내어 나를 만나러 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이 모든 사실을 알았다. 나를 걱정해 아픈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언제 출소하느냐는 물음에 곧 나간다고만 답했다. 그게 아버지를 안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말이라고 생각했다.​“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지 못한저를 용서하세요.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앞으로는 봉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눈물의 미역국
2018.03.08   조회수 : 1,448    댓글 : 1개
구치소에서의 일이다. 재판이 진행 중인 미결수들 방으로 배정되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베개가 날아들었다.상황을 보니 나를 겨냥한 것은 아니고, 두 사람이 싸우면서 던진 게 날아온 거였다. 서로 거칠게 덤벼드는 통에 교도관이 와서 겨우 말렸다. 한구석에 넋 놓고 서 있던 나는 앞이 아득해졌다.‘고달프겠군.’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4385 번호표를 단 그녀는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버럭내고 툭하면 물건을 던져 방 식구들을 힘들게 했다. 구치소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녀가 하루빨리 재판을 끝내고 방에서 나가기만을 바랐다.한번은 그녀가 방에서 나가더니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다른 방으로 간 줄 알고 다들 좋아한 터라 다시 들어서는 그녀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산하여 병원에 다녀온 것이었다.구치소에 처음 들어올 때 임신 여부를 검사한다.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는데 몸이 약해 그만 유산한 것이다. 성치 않은 몸으로도 그녀의 심술은 날 로 심해졌다. 괴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다른 방에서도 그녀와 지내는 것을 싫어해 보낼 곳도 없었다.몇 달간 함께 생활하면 마음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의견이 비슷하고 성격이 잘 맞는 이들과 친해졌다. 고된 이곳 생활에서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지냈다.그런데 그녀는 외톨이가 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와도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며칠 후 점심시간이었다. 평소엔 작고 네모난 배식구를 통해 밥을 받았다. 한데 그날은 교도관이 배식구가 아닌 방 철문을 덜컹 열었다. 그리고 큰 냄비를 건넸다. 다들 놀란 눈으로 보자 교도관이 말했다.“4385, 미역국이야. 따뜻하게 이불 속에 두고 수시로 먹어. 알았지?”교도관은 돌아서려다 말고 덧붙였다.“4385만 먹어!”직원 식당에 나온 미역국을 유산한 그녀에게 주려고 냄비에 담아 온 것이다. 냄비에는 족히 스무 그릇은 될 법한 국이 담겨 있었다.방 맏언니가 국그릇에 미역국을 담아 그녀 앞에 놓아 주었다. 그리고 냄비는 이불로 덮어 두었다. 미역국을 떠먹던 그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미역국을 먹으며 오래도록 흐느꼈다.그날 이후 그녀는 달라졌다. 방 청소를 하고 설거지도 도왔다. 살뜰하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우리 질문에 짧게나마 대답도 했다.다른 곳도 아닌 구치소에서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어땠을까.임신은 물론 유산 소식까지 알렸으나 면회 한 번 오지 않는 남편에게 큰 상처를 받은 듯했다.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방을 떠나는 날, 그녀는 제빵 기술을 배워 좋은 일 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그녀를 변하게 만든 건 무얼까. 교도관은 규정을 어겨 자칫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녀에게 위로의 선물을 건넸다. 상처를 준 것도, 그 상처를 위로한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음지에서도 꽃이 피듯 이곳에도 사람을 품어 주는 사랑의 온기가 있다.
지금도 충분히
2018.02.08   조회수 : 1,871    댓글 : 1개
6년을 사랑했다. 아니 사랑받기만 했다. 그녀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살갑고, 좋은 건 나누고 싶어 했다. 반면 나는 각자의 영역이 있다고 믿었다. 훗날 돌이켜 보니 그건 솔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에 불과했다. 직장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잘못된 일을 저질러 이곳에 왔다. 누구에게도 수감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에게도.두 달이 지날 무렵 교도관이 나를 불렀다. 누군가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접견표에는 그녀 이름이 적혀 있었다.“오빠가 면회를 거절할까 봐 겁났어.” 유리 벽 너머에서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누구한테 들었어?” “경찰한테서…….”수사 과정에서 측근인 그녀에게 연락이 간 모양이었다. 그녀는 울먹였다. “그 사람들 말이 맞아? 정말 그런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수의를 입고 마주한 순간에도 그녀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다. “기다릴게.”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러다 말겠지.’ 그녀만 바라보다 버려져 상처받기 싫었다. “이거 봐.” 나는 가슴에 붙은 수번을 가리켰다. “난 네게 진 빚을 갚을 수 없어. 다신 찾아오지 마.” 그리고 먼저 자리를 떴다. 그날 밤은 무척 길었다.이튿날 내게 손때 묻은 책 한 권이 전달됐다.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 그녀가 준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표지를 넘기니 그녀가 쓴 글이 눈에 들어왔다.“세르반테스는 젊은 시절 바다에서 포로로 잡혀 한쪽 팔을 잃었어. 간신히 풀려났지만, 나이가 들어 무리하게 끌어다 쓴 빚 때문에 감옥에 갇혔지. 거기서 그는 남은 팔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그녀가 오래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세르반테스를 좋아해.” 그녀는 퇴근하고 밤마다 소설을 썼다. 남들에게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해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소설을 몇 번이나 읽었다. 그녀가 밑줄 친 문장을 천천히 읊어 보았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비겁했어. 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어. 거짓말해서 미안해. 날 용서하지 마.”그녀는 금요일이면 이따금 나를 찾아왔다. 일을 마친 후 심야 버스를 타고 새벽녘 낯선 도시에 내린 뒤,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깐 나를 보고 돌아갔다. 면회 시간은 짧았다. 그녀는 친구를 만난 이야기, 함께 사는 고양이와의 일상을 들려주었다. 창살 사이로 빛이 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틈틈이 그녀가 보내 준 책을 읽었다. 책마다 그녀가 밑줄을 긋거나 귀퉁이를 접은 흔적이 있었다. 나는 책 속 세계에서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다. 그리고 계속 편지를 썼다. 그동안 숨겨 왔던 많은 것을 고백했다.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그녀에게 감추려한 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과 삶에 대한 예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걸. 나의 죄는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하루는 면회 온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길 바라. 진심이야.”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얼마 뒤 그녀의 편지가 왔다. 노산으로 고생한 어미 고양이가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는 소식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지금도 충분히 행복해.”이제 여기서 보내야 할 시간의 절반이 지났다. 남은 생은 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 먼저 피해자에게 사죄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습작을 시작했다. 아직은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이렇게 쓸 기회가 있는 게 기쁘다. 한 글자씩 쓰다 보면 지난 삶과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나는 오늘도 그녀의 말을 따라 해 본다.“지금도 충분히 행복해.” 잃어버린 한 팔을 원망하기보다 남은 팔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 세르반테스. 그도 그곳에서 비슷한 말을 되뇌었을 것 같다. 긴 시간 나를 짓누르던 불안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조금 더 같이
2018.01.08   조회수 : 2,196    댓글 : 0개
재소자들도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나는 취사장에서 식사를 만들었다. 그러다 추가 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첫눈 내리는 아침, 법원에 가려고 호송차에 오르는데 누군가 뒷마당에 서서 포승줄에 묶인 나를 지켜보았다. 취사장에서 함께 일하는 이모였다. 그날 6개월의 형을 추가로 받았다. 재판을 마치고 돌아와 따지듯 물었다.​“이모, 아침에 저 보셨죠?”“그래.”“왜 그러셨어요. 부끄럽잖아요.”“부끄럽긴. 우리처럼 매일 보는 사이에는 그런 거 없어.”​이모는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6개월이라며? 이모랑 조금만 더 같이 살자. 바쁘게 일하다 보면 금방 지나는 시간이야. 그래도 너는 이참에 바깥 구경 하고 왔잖니? 나는 한 발짝 나가 본 게 언제인지 몰라.”​포승줄에 묶인 모습이나 늘어난 형기보다 이모에게 투덜거린 게 더 부끄러웠다.​“수고했어. 힘들었을 텐데, 밥 차려 놨으니 어서 먹어.”​식탁을 보니 닭볶음탕과 따뜻한 밥, 국이 평소보다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나를 위한 밥상이었다. 지금은 직업 훈련을 받으려 다른 곳에 왔지만 여전히 이모와 편지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니 그날 눈 맞으며 서 있던 이모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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