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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동행의 기쁨] 자연스러운 일

“저희는 과일을 크기와 모양으로 선별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를 공동 생산자라 생각하며 농부와의 상생을 추구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과일을 사려면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곳이 있다. 과일 장수 공석진 님(44세)이 운영하는 온라인 과일 가게 ‘공씨 아저씨네’다.

 

과일 없인 하루도 못 산다는 그는 십 년 전, 귤을 팔아 볼 요량으로 과일 유통일을 시작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거래할 농민을 찾았다. 홈페이지로 주문을받아 농가에 전달하면 그곳에서 직접 소비자에게 보내 주는 식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보니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과일은 크기와 생김새에 따라 가치가정해졌다.

 

이 때문에 일부 농가에서는 과일에 인위적인 작업을 하기도 했다. 또한 명절 날짜, 시장 가격 등을 따져 과일이 채 익기도 전에 땄다. 그는 맛과 향에 중점을 두고 과일을 유통한다. 또, 잘 익어 가장 맛있을 때 수확해서 소진할 수 있는 만큼만 판다. 그렇게 파는 과일은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것 보다 크기가 작은 편이다.

 

몇 년 전 자두를 팔 때의 일이다. 과일은 날씨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데, 그해에는 가문 탓에 자두가 탁구공보다 작았다. 한 손님에게서 항의 전화가 왔다. “어디서 이따위 콩알만 한 자두를 팝니까?” 크고 예쁜 과일에 익숙한 탓이었다.

 

“그분의 반응도 이해해요. 기존 시장에서는 이런 과일을 헐값에 팔아요. 맛있음에도 ‘비상품과’로 취급하는 거예요. 저는 그다음부터 자두를 팔 때 ‘콩알만 한 자두’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소비자가 단점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는 부분을 숨기지 않고 내세운 거죠. 이후 크기에 대한 항의는 없었어요.”

 

지난봄은 유독 기온이 낮았다. 냉해 탓에 사과 품종 ‘아리수’는 껍질이 거칠고 누런 빛을 띠었다. 이른바 ‘동록 현상’이 일어난 것. 하지만 맛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는 이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제품을 보통 사과와 같은 값에 판매했다.

 

사과는 며칠 사이에 모두 팔렸다. 소비자는 오히려 울퉁불퉁하고, 노란색이 많은 사과를 아름답다고 느꼈다. 과일이 생김새가 아닌 맛과 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통한 것이다. 그는 말했다. “작거나 못생겨도 맛있어요. 그걸 직접겪어 보지 않으면 몰라요. 지난 십 년은 소비자에게 그것을 경험하게 해 준 시간이에요.

 

어? 맛있네?’ 하고 먹다 보면 고정 관념이 깨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그는 모든 소비자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소비자는 편리하고자 다양한 요구를 했다. 그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모든 이의 요구를 들어주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못하는 건 못한다고 이야기하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후 그는 홈페이지와 에스엔에스를 통해 자신이 하는 일과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또 손님들에게 미리 안내했다.

 

“날씨에 따라 맛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전년보다 맛있을 수도, 맛이 덜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로써 과일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사과 과육의 투명한 부분을 ‘꿀’이라 부르며, 이게 많으면 더 달다고 생각한다. 이는 ‘소르비톨’이라는 성분으로, 당분이 뭉쳐서 생긴 생리 장해다. 정상적인 생육 과정을 거치면 당분이 전체 과육으로 퍼져 이런 부분이 없다. 다만 이런 부분이 많으면 저장성이 떨어지기에 빨리 유통해야한다. 그는 이것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또 복숭아를 먹다 보면 씨앗이 갈라진 ‘핵할 현상’을 볼 수 있다. 과일이 자라는 동안 날씨가 가물다가 갑자기 비가 오면 나타난다. 과육에 지장이 없다면 이 역시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기를 권한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자연에 민감해졌다. 지난봄에는 이상 기후로 꽃이 제대로 피지 못했다. 그러자 벌이 활동하지 못해 꿀 생산량이 줄고, 꽃도 수정하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했다. 게다가 긴 장마로 식물들이 광합성을 잘 할 수 없었다. 햇빛을 많이 쬐어야 하는사과는 그 탓에 수확량이 반토막 났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갔다.

 

그는 자신이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고민했다. 온라인으로 과일을 유통하다보니 자연히 포장재를 많이 썼다. 과일이 유통 중 부딪혀 멍들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싸는 까닭이다. 그는 상자에 가득찬 포장재를 보며 하나씩 빼 보자고 마음먹었다. 우선 사과에 씌운 개별 캡을 뺐다.

 

또 사과, 복숭아 등 둥근 과일을 상자에 꼭 맞게 담는 용도의 ‘난좌’는 스티로폼 대신 종이로 만든 것을 구해 쓴다. 몇 년 전에는 사과즙을 팔았는데, 손님들에게 빈 봉지를 모아 보내 달라고 했다. 깨끗이 씻어야 하고, 수십 개를 모으는 일이 번거로웠을 텐데도 적지 않은 이가 보내 주었다.

 

그렇게 모은 봉지로 컵 받침을 만들어 일부 손님들과 나눴다. 과일 가게를 운영한 지 십 년, 그동안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 일을 했을 땐 ‘과연 고정 관념이 바뀔까?’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변화를 체감해요.

 

지금 소비자는 과일의 크기, 생김새에 훨씬 관대해요. ‘맞아, 상관없지.’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십 년, 또 이십 년 후에는 과일을 맛과 향으로 평가하자는 제 말을 ‘뭘 당연한 얘길 하고 그래.’라며 흘려들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식적인 범주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묻자, 그는 드라마 〈모래시계〉 속 한 장면을 이야기했다.

 

“극 중 사회부 기자인 ‘신영진’이 기사를 썼는데, 데스크에서 반려해요. 그녀가 따지자 부장이 말하죠. ‘신문에 기사 한 줄 나간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아.’ 그녀가 이렇게 답해요. ‘누가 세상을 바꾸자고 했나요? 기사 내자고 했지. 그게 기자가 할 일 아닌가요?’ 그 말이 저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과일 장수인 내가 할 일은 뭔가,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과일 장수가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은 과일을 상식적으로 파는 거예요.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 변화를 불러올 거라고 믿어요.”

 

글 _ 정정화 기자, 사진 _ 케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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