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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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펭귄

 

엄마는 펭귄을 닮았다.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꼭 펭귄 같았다. 오동통한 몸에 날지 못하는 새. 나는 그 옆에서 어미 펭귄이 되어야 했다. 결코 만만찮은 일이었다. 

 

엄마는 여느 엄마와 달랐다. 모성애라곤 찾아볼 수 없는 듯했다. 뭐든 자기 위주였다. 싱크대에 가득 쌓인 설거짓거리보다 회사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내 저녁 반찬보다 회식 메뉴를 더 신중하게 고민했다. 돌이켜보면 홀로 자식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그 이기심 덕에 나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어엿한 부모가 되었다.

 

엄마가 펭귄을 닮기 시작한 건 당뇨로 신장이 안 좋아지면서부터였다. 앙상한 몸은 날이 갈수록 퉁퉁 부었다. 엄마가 당뇨를 진단받았을 때 나는 너무 어렸다. 신부전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적에는 주부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느 겨울날, 세차게 내리는 함박눈과 함께 엄마의 기억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가진 우산으로는 그 기억을 다 받칠 수 없었다. 엄마가 버거워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나는 나를 대신해 엄마를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았다. 그렇게 엄마를 요양원에 데려갔다.

 

엄마는 기억을 잃었지만 이기심은 여전했다. 요양원에서 하루에 한 번 꼴로 연락이 왔다. 대부분 식사 때 생긴 일 때문이었다. 엄마가 자꾸 음식을 더 달라고 고집을 피우는 모양이었다. 처음엔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식판과 수저를 인정사정없이 내던지고 다른 사람 밥을 넘보기까지 했다. 식욕이 왕성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는지, 왜 날 힘들게 하는지 도통 이해

되지 않았다. 결국 삼 주 만에 엄마를 다시 데려오기로 했다.

 

집에 가기 위해 짐을 챙기며 캐비닛을 열었다. 쉰내가 코를 찔렀다. 숨을 참고 들여다보니 웬 비닐봉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봉지엔 색색의 나물, 김치 같은 것이 담겼다.

 

"이게 뭐야? 음식 다 썩어서 냄새 나잖아!” 한껏 예민해진 탓에 목청을 높이고 말았다. 큰소리에 놀란 엄마는 입술만 달싹였다. 한숨이 나왔다.

 

나는 음식물이 담긴 봉지를 하나하나 찢었다. 음식 냄새가 더욱 심하게 올라왔다. 한데 모은 음식물을 버리러 가려는 찰나 엄마가 말했다. “우리 딸 주려고 그랬어요.”


순간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회식이 있어 늦는 날이면 꼭 남은 갈비를 싸 와 그걸 넣고 된장찌개를 끓여 주었다. 나는 그제야 엄마의 이기심이 모성에서 비롯된 걸 깨달았다.


엄마가 뒤뚱뒤뚱 내 곁으로 다가왔다. 펭귄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뒤뚱뒤뚱 걷는다고 한다. 엄마도 그렇게 외로이 추위를 견뎌 온 걸까.

 

“미안해요.” 예상치 못한 엄마 말에 나는 처음으로 엄마 같은 엄마를 마주했다. 나는 치기를 부렸다. “나 이런 거 말고 엄마가 끓여 준 된장찌개 먹고 싶어.” 내 마음을 느꼈는지 엄마는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본 미소였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엄마와 요양원을 나섰다. 엄마 손을 잡았다. 일곱 살 이후로 처음이었다. 무엇 때문에 이 손을 잡는데 이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엄마 손에는 시간이 남긴 자국이 가득했다. 손끝에서 엄마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혹시 엄마가 춥진 않을까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러곤 한 발 앞서 걸었다. 

 

그간 내 이정표가 되어 준 엄마에게 이제 내가 길을 알려 줄 차례니까.


십 분쯤 지났을 때다. 허기가 밀려왔다. “배고프다.” 무심코 뱉은 내 말에 엄마는 주머니에서 요구르트 하나를 꺼냈다. “이거 먹어. 이건 다른 사람 거 아니니까 괜찮아.” 잠시 기억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날 챙겨 주는 엄마에게 더 어리광 피우고 싶었지만 엄마는 금세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 엄마와 발을 맞춰 걷는 건 쉽지 않았

다. 엄마의 어미가 되는 일 역시 버거웠다. 그렇지만 엄마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얼굴에 찬바람이 부딪혔다.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서로의 체온에 기대다 보면 추위도, 외로움도 잘 달랠 수 있으리라.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와 나는 손을 맞잡고 겨울을 향해 뒤뚱뒤뚱 걸어갔다.

 

장미애 님 | 경기도 오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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