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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울보의 카네이션

‘내일이구나.’ 달력을 확인한 뒤 책에 끼워 둔 만 원 한 장을 조심스레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쪽지에 낯간지러운 글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창밖을 보니 해거름이었다. 슬리퍼를 끌고 나선 시내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찾았다.” 꽃집이 보이지 않아 편의점을 찾았는데 장미를 팔고 있었다. 옆에는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가득했다. 가격표를 보곤 얼른 손을 뗐다. 한 송이에 팔천 원이라니! 차라리 꽃바구니가 낫겠다 싶은데 돈이 모자랐다. ‘통신사 할인 카드라도 들고 올걸.’ 덜렁 만 원만 챙긴 스스로를 탓했다. 고민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돈이 든 주머니는 무겁고, 빈손은 헛헛했다. ‘엄마는 꽃 싫어하니까. 지금 내가 주는 선물은 부담스러울 거야. 열심히 공부하는 걸 더 좋아하겠지.’

 

시내를 벗어날 무렵 개업한 피시방에서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그 앞에는 화환이 늘어서 있었다. 네온사인 불빛에 빛나는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송이 정도는 가져가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나중에 버려지니까.’ 건물을 뱅뱅 돌며 사람이 오가는지 살펴보았다. 몇 번을 돌고서야 겨우 손을 올렸다. 

 

“어서 오세요!” 그 순간 피시방 사장이 인사하며 나왔다. 나는 창피해서 고개를 숙이고 힘껏 내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낡은 슬리퍼 밑창이 뜯어지면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얼굴을 뒤덮었다. “울보야, 울보야.” 어릴 적 툭하면 우는 나를 놀리던 엄마의 그리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배정경 님 | 경남 양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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