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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인턴 상인

작년 9월부터 엄마의 일터에 나갔다. 흔히 생생한 삶의 현장을 말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그중에서도 도·소매를 주로 하는 청과직판 시장이다. 취급하는 품목은 대파, 쪽파, 실파. 주 거래처는 식자재 납품 업체, 마트, 외식 체인점, 식당, 레스토랑 등이다. 경매가 이루어지는 저녁에 업무를 시작해 심야, 새벽, 아침까지 많은 손님이 오간다.

 

이곳에 주 5일 근무는 적용되지 않는다. 취급 품목이 농산물이라 쉬는 동안 파가 자라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 그래서 공휴일에도 일한다. 그나마 오래 쉬는 날이 명절인데 대목이라 그 전에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바쁘다. 18년간 직장인으로 일하다 인턴 상인이 된 나는 노동의 정직함을 몸소 느꼈다. 직장에 다닐 땐 열심히 일해도 보상받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수두룩했다. 

 

한데 이곳에서는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다. 경매된 물건을 사 와서 가게에 진열하고, 마진을 붙여 손님에게 팔고, 물건을 봉투에 담아 묶는 것부터 손님 차량에 배달할 때까지 몸을 움직여야 했다. 요새는 손질한 물건을 사는 손님이 꽤 많은데 수고가 들어가니 마진도 높다. 우리 가게에서도 대파나 쪽파를 까서 판다. 엄마와 나는 영업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다듬는다. 노력한 만큼 물건은 돈으로 바뀐다.

 

그렇다 보니 이곳 상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들은 삶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자신의 노력과 정성으로 이만큼 자리 잡았다. 짧게는 십 년, 길게는 우리 부모님처럼 삼십 년 이상 장사했다. 경기가 한창 좋을 때 돈도 많이 벌어 봤고 그 돈으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도 장만했다. 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 “뭐하러 딸내미 데리고 나와 고생시키냐.” 하는 말도 들었다. 

 

하나 대부분 부모의 가게를 이어받으려는 것을 부러워했다. 상인들은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나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일찌감치 이쪽으로 진로를 정해 일하고 있었다. 이제 인턴 상인으로 6개월, 걸음마 단계다. 시장은 상인으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배울 점이 많다. 앞으로의 시간이 궁금해진다.

 

최경미 님 | 농산물 유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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