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생각 카테고리

"너의 마음을 알기까지" <애견 훈련사 이웅종 님>
2017.03.09   조회수 : 3,654    댓글 : 4개

그는 26년째 날마다 개와 눈을 맞춘다. 아버지 닮아 동물을 좋아했던 그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 그는 목장 주인을 꿈꿨으나 하루아침에 집안에 그늘이 드리웠다. 생계 수단이었던 방앗간이 화재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버지마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났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죠. 막노동도 가리지 않고 했어요. 학비를 벌어야 했으니까요.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목장 주인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내 꿈도 그렇게 잊히나 싶었죠. 그러다 군대에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군견을 본 거예요.

그는 군견에 푹 빠졌다. “앉아. 일어서. 뛰어.” 말을 알아듣고 쏜살같이 움직이는 개를 보자 심장이 마구 뛰었다. 훈련소에 불이 났을 땐 끝까지 짖어 위험을 알릴 만큼 충성스러웠다. 그는 애견 훈련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동물과 함께여서 좋았다. 

 

한데 예상치 못한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찰떡같이 말을 알아듣던 개들이 막상 주인에게 돌아가면 말썽꾸러기로 돌변했다. 당시 손님으로 인연을 맺은 한 지인은 이렇게 조언했다.

 

개랑 사는 건 주인이지 네가 아니잖아. 큰물에 가서 공부해 봐. 그 뒤엔 네가 아는 걸 주인에게 가르쳐 주는 거야. 아마 뱉어 낼수록 더 많이 얻을 거다.

‘뱉어 내긴 뭐를? 어깨너머로 어떻게 배운 기술인데 그냥 알려 주다니. 그럼 누가 나한테 오겠어? 어림없지.’ 그 말을 들었을 땐 정말 황당했단다. 그런데 곰곰 따져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전과 다른 방식에 집중했다. 훈련 문화를 바꿔 보기로 한 것이다. 

 

견주에게 직접 방법을 일러 줬죠. 신기하게도 아는 걸 나눌수록 찾는 이가 늘었어요. 주된 문제는 단기간에 변화를 원한다는 거였죠. 그럴 땐 조급함을 버리라고 설득했어요. 예를 들어 상처 받은 녀석들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아요. 이때 훈련한다며 목줄을 당기면 반감만 생기죠. 간식을 두고 나가거나 따듯한 눈빛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주인이 나를 믿는다는 걸 인지하면 어떤 개도 달라져요. 그게 훈련의 시작이죠.

“한때는 개가 제게 의지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돌이켜 보니 오히려 제가 의지하고 배울 때가 많더라고요. 특히 주인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 모습이 볼수록 놀라웠어요. ‘나도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기보다 사람 사 이의 의리를 지키며 살아야겠구나.’ 다짐한 게 여러 번이에요.”

 

*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4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4)

teresacho
2017.03.12
 개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무조건 훈련과 명령보다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알아가는 그런 사랑을 확인시켜 주어야겠죠. 
이재철
2017.03.14
삭제
10 여일전부터 생활의 외로움에서 
나는 발부둥치다
레브라도리트리브 여아 1마릴 입양하여
서로 동거동락 중이네요
스필버그
2017.03.15
삭제
개와 가족사진을 찍어 걸어놓고 
개의 마음  사람의 마음  읽어낸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무기체계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시원하게
2017.04.10
개을 키우다 보면 사람하고 하는 행동과 똑같다는걸 많이 느낄때가 있어요.  그럴때면 넘 신기하고 그런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 한참 웃곤 했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이 있음으로써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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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의 기쁨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중앙 카메라 수리 센터 대표 김학원 님>
2017.04.12   조회수 : 724    댓글 : 0개
기계식 카메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김학원 님(66세)은 꽤 유명하다. 그는 디지털 기기가 쏟아지는 요즘 세상에 50년 가까이 아날로그 카메라만 수리했다. 열네 살 때부터 카메라를 만졌다는 그는 경상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가난한 형편 탓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배웠다. 다행히 손재주가 좋아 삼촌 따라간 대전에서 시계와 카메라 파는 점포에 취직했다. 그는 낮엔 잔일하고 영업이 끝나면 가게 다락에서 잠들었다. 주인이 집에 가면 혼자였어요. 한번은 잠이 안 와 카메라 부품을 갖고 놀았죠. 밤새 붙들고 조립했는데 다음 날 주인이 묻대요. ‘이거 누가 만졌노?’ 두려움에 작은 목소리로 답했더니 앞으로 카메라 수리는 내게 맡긴대요. 원래는 전문점에 위탁했는데 말이죠.막막한 일이었다. 스승은 고사하고 책도 없이 어떻게 고친단 말인가. 당시 카메라는 무척 귀해 남의 손에 잘 맡기지 않았다. 혹시 부속이라도 뺄까 싶어 수리할 때 손님이 뒤에서 감시했다. 그는 기술이 서툴러 실수라도 할까 봐 여러 번 진땀 흘려야 했다. 그래도 어떡해요. 먹고살아야 하는데. 신기한 게 점점 호기심이 일었죠. ‘아, 요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하며 자꾸 만지니 손에 감각이 생기더라고요. 의외로 원리도 간단하고. 처음에 카메라를 쳐다보면 무슨 수로 고치나 짜증이 났는데 어느새 애정이 생겼죠. 못 고치면 일자리는 끝이라는 절박감에 더 매 달리기도 했고.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수록 해냈다는 쾌감이 밀려왔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나중엔 눈의 초점이 흐려져 멀리서 사람이 걸어와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마다 고사리손으로 눈을 쓱쓱 비비고 다시 부품을 잡길 5년,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실력을 펼쳤다. 쉬는 날도 없이 수십 년간 일한 그는 뒤늦게 자신만의 수리점을 차렸다. 지금의 ‘중앙 카메라 수리 센터’다.  그는 은근슬쩍 고쳐도 아무도 모를 사소한 부분까지 그냥 넘기지 않았다. 카메라를 하루에 한 대꼴로 고치 다 보니 아내도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좀 서둘러서 한 대 고칠 거 두세 대 고쳐야겠단 생각은 안 하셨어요?”라고 묻자 그가 답했다. 살아 봐요. 세상 이치가 절대 안 그래.빨리 작업하면 돈도 금세 벌 것 같지만 결국에는 손해로 돌아온다는 뜻이었다. 쉽게 돈 벌려고 하면 돼요? 대충 해서 건네면 손님이 다시 고쳐 달라고 와요. 같은 작업을 두 번 하니 오히려 일이 늘죠. 사람인지라 옆에서 재촉하면 왜 조급해지지 않겠어요. 그때마다 일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 지 생각했죠. 제일 기본은 카메라를 잘 고치는 거니까 거기에만 집중하려 했어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내가 안다. 스스로한테 떳떳해지자 하면서요. 이곳엔 여느 가게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흐른다. 어떤 손님은 자신이 직접 카메라를 만져 보겠다며 자리 잡았다. 그는 수리점에서 그게 웬 말이냐고 따져 묻는 대신 “그러 시든가.” 하며 자리 한쪽을 내주었다. 난생 처음 만난 사람과 나란히 앉아 카메라를 고치는 것이다.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넌지시 설명도 해 주면서. 기술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오면 알려 줘요. 어렵게 배웠다고 혼자 꽁꽁 싸매고 있으면 뭐해요. 다 나눠 줘야지. 난 반평생 일했지만 아직도 가난하죠. 그래도 괜찮아 요. 돈이야 먹고살 정도만 있으면 되니까. 부자 될 계획이라면 이렇게 살았겠어요? 사람들이 가게 문을 나설 때 환하게 웃으면 그걸로 족해요. 1년 쓸 카메라 몇 년 더 사용하게 해 주면 얼마나 좋아요. *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5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행의 기쁨
"오늘도 문을 열었습니다" <동아 서점 대표 김일수, 김영건 님>
2017.02.15   조회수 : 1,777    댓글 : 5개
_ 동아 서점 대표 김일수, 김영건 님아들의 합류 이후 서점은 완전히 탈바꿈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신도시로 자리를 옮기고 규모도 120평으로 넓혔다. 다양한 장르의 책도 5만여 권 준비했다. 위기 때 되레 투자하는 일이불안했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설레었다.참 이상하대요. 준비할수록 이거 잘만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으니. 물론 초반엔 쉬는 날도 없이 고생했죠. 하루는 조명 몇 개만 켠 채 밤늦도록 책 을 정리했어요. 그러다 잠시 커피 한 잔 들고 주위를 쓰윽 보는데 마치 수만 권 의 책 속에 묻힌 기분이었죠. 책의 바다에 침잠하는 느낌이랄까. 아……. 내가 지금껏 이 속에서 살았고, 앞으로 살 곳도 여기구나 싶었죠. 책을 통해 묵직한 위로를 받은 날이었어요.아버지의 연륜과 아들의 섬세함이 만나니 서점은 점차 입소문을 탔다. “속초에 이런 서점이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다음에 꼭 올게요. 문 닫으면 안 돼요!” “버텨 줘서 고맙습니다.” 손님들의 응원은 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사실 돈만 따졌으면 못할 일이에요. 오히려 가게를 이전하며 큰 빚을 졌는데요, 뭐. 이젠 일종의 사명감으로 하죠. 서점 일의 중심에 뭐가 있는지 아세요? 사람이 있어요.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이때까지 손해를 볼지언정 약속은 꼭 지켰어요. 장사는 정직이에요. 아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명감과 정직함의 가치를 하나둘 깨우쳤으면 해요. 이런 건 절대 말로 가르칠 수 없거든요.61년간 삼대가 서점을 운영한 건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믿음이자 책을 향한 믿음이다. “이러다 종이 책이 없어지면 어쩌죠?” 걱정스레 묻자 각자 다른 이유로, 하지만 강단 있는 대답을 내놓았다.절대로 안 없어집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요, 종이 특유의 냄새만 맡아도 좋아해요. 향기, 질감, 넘기는 감촉 등 오로지 종이 책만 줄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요즘 저처럼 젊은 사람들은 책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요. 이젠 읽는 책에서 소유하는 책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죠. 예쁜 책을 갖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면 충분히 수요가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3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행의 기쁨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헤어 디자이너 차홍 님>
2017.02.14   조회수 : 1,612    댓글 : 3개
열등감이 심했어요. ‘난 집에서 지원해 주지 않고 시골 출신이라 겉모습이 세련되지도 않아.’이런 식으로 따지면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악착같이 했어요.저는 추억을 담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휴가 때도 크리스마스에도 연습만 했거든요.독하게 연습만 하는 애, 누구와 어울리기 싫어하는 애라는 오해도 샀죠.그렇게 애쓴 결과는 어땠을까? 남보다 느려도 너무 느렸다. 매번 시험에서 떨어져 후배에게도 밀리는 신세였다. 보통 길어도 3년이면 헤어 디자이너로서 손님을 만나는데 그녀는 자그마치 6년이 걸렸다. 먹고 자는 시간을 아껴 노력했는데도 말이다.제 장점 중 하나가 낙천적인 거예요. 내게도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며 대범하게 넘겼죠.다행히 헛된 시간은 아니었는지 막상 손님 앞에 섰을 때 자신감이 넘쳤어요.탄탄히 기본기를 쌓은 덕분이었죠.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추천하고 누구를 만나든 좋은 점을 발견해 칭찬을 건네니 저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늘었어요.여러 손님을 만날수록 깨우치는 것도 생겼죠.”한번은 손님에게 누가 봐도 예쁜 파마를 해 줬다. 한데 며칠 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온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직업 특성상 머리 묶을 일이 많은 손님에겐 맞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누군가의 머리를 만지는 건 여러 요소를 헤아리는 작업이었다. 직업, 생활 습관, 평소 즐겨 입는 옷을 살펴 알맞는 머리 모양을 권해야 했다.“디자인의 기본은 배려예요. 상대가 되어 보는 거죠. 어느 날은 길에서 손님을 만났는데 머리했던 날 예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엉망인 거예요. ‘손님이 미용실에 오는 건 하루뿐이고 그 외 시간엔 혼자 손질해야 하는구나.’ 싶어 반성했어요. 제가 놓친 부분이었죠. 그 후 도움을 주려고 평소에도 따라 할 수 있는 손질법을 연구해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렸어요.” 그게 ‘셀프 헤어’의 시초였다. 전문가 손길 없이 머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그녀는 방송, 잡지, 라디오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최근엔 헤어 브랜드 ‘로레알’에서 뽑은 아홉 명의 헤어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오래전, 세계적 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리란 걸 예상이나 했을까.‘이 업계를 싹 바꾸겠다.’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 등 예전 제 동기들은 포부가 대단했어요.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우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싶어 입만 벌렸죠. 제가 하는 다짐이라곤 주어진 오늘에 집중하자였거든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매일 조금씩 노력했어요.”* 인터뷰 전문은 「좋은생각」 2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