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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동행의 기쁨] 백 사장과 5이사

“환영합니다. 신신 예식장입니다.”


신신 예식장을 55년째 운영하는 백낙삼 님(90세)의 휴대 전화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예약 문의가 온다. 그는 이곳에서 결혼식 예약을 받는 일부터 식 진행, 주례, 사진 촬영까지 담당한다.

 

“신랑 신부 화장도 필요한지 물어봐요.” 예복 및 각종 소도구 준비, 화장, 폐백, 촬영 보조 역할을 맡은 아내 최필순 님(80세)이 말한다. 다섯 가지 일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그녀에게 붙여 준 별명이 ‘5이사’다. 이렇게 두 사람은 톱니바퀴처럼 손발을 맞춰 예식장을 운영한다.

 

육십 년 전 그는 유원지, 공원 등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길거리 사진사로 일했다. 없는 살림에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동네 사람들의 주선으로 이웃 마을 그녀를 만났다. 첫 만남에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으니 고생 많이 할 거예요. 그래도 최대한 고생시키지 않으려 노력할게요.” 그녀는 이 한마디를 믿고 결혼을 약속했다.

 

두 사람은 처가 마당에서 간소하게 식을 올렸지만 같이 살진 못했다. 그는 단칸방에서 어머니, 아버지, 큰형님 내외와 아홉 조카까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일 년 뒤 그가 월셋집을 얻을 돈을 마련한 뒤에야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부부는 ‘오 년 안에 집과 사진관을 사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사진 한 장에 이십 원 하는 시절이었다. 일 년 차에 그는 차곡차곡 돈을 모아 보증금 사만 원으로 상가 전세를 얻었다. “길거리 사진사로 일할 적에는 얼마나 걸어 다녔는지, 집에 돌아오면 발이 부어 둥글둥글했습니다. 가게를 마련하고부터 날개를 단 것 같았어요. 손님이 밀려들었습니다.”

 

몇 년 후 집을 살 만큼 돈이 모이자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참 고생했어요. 우리 이사 갑시다.” 아내가 가만히 생각하더니 답했다. “시부모님도 월세방에 사는데, 우리만 집을 사서 나가면 어찌 마음이 편하겠어요? 큰집부터 사 드립시다.”

 

그는 그 일을 두고두고 고마워했다. 이듬해에 마침내 이층 목조 건물을 사서 집과 점포를 장만했다. 그 근방에서는 처음으로 네온사인 간판도 달았다. 멀리서도 휘황찬란해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얼마 뒤에는 더 넓은 콘크리트 건물로 옮겼다. 오 년이 막 지난 무렵이었다.


“건물을 사 놓고 뭘 할까 하다가 나처럼 가난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결혼식은 무료로 하고, 사진값만 받았습니다.”


그렇게 신신 예식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역 주민부터 형편이 어려운 이,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무료 예식장이지만 허투루 준비하는 것은 없다. 예식이 있는 날이면 그는 붓글씨로 신랑 신부 이름을 적어 입구에 붙여 둔다. 그녀는 신부가 체형에 맞는 드레스를 골라 입을 수 있도록 여러 벌을 구비해 둔다. 드레스는 최신 유행하는 것으로 꾸준히 산다. 신랑 예복을 깔끔하게 손질해 두고, 골라 준다. 신부가 드레스 입는 것도 거든다.


한번은 경기도 광주에서 한 노부부가 찾아왔다. 그들은 젊은 날 형편이 어려워 혼인 신고만 한 채 살다 자식을 모두 출가시킨 지금에서야 결혼식을 올리러 왔다고 했다.


반면 한 커플은 양쪽 모두 경제적으로 풍족했다.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묻자 “허례허식이 싫어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양가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원했으나 당사자들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결국 양가 부모님의 뜻을 꺾고, 가까운 가족만 모여 조촐하게 식을 올렸다.


얼마 전에는 이곳에서 1977년에 결혼했다는 이가 그에게 연락을 해 왔다. 손님은 당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무료로 결혼식을 올렸다며,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해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게나마 보답하고 싶으니 계좌 번호를 알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이에 감동한 그가 문자 메시지로 계좌 번호와 감사 인사를 보내고, 주변에 이 이야기를 전했다. 한데 이 소식을 들은 아내의 친구가 말했다. “그거 보이스 피싱이야.”


설마 하며 불안해하는 찰나 다행히 손님이 돈을 입금했다. 부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만큼 선뜻 믿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어떻게 사십삼 년 전 일에 돈을 보내겠다고 합니까? 참 고맙지요.”


그는 지금까지 14,000여 쌍의 결혼 주례를 해 주었다. 커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녔지만, 그가 주례를 설 때 강조하는 점은 같다.


“사랑하라, 행복하라. 첫째도 둘째도 행복입니다.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니고 둘이서 만드는 겁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입니다. 그 행복을 둘이서 사랑으로 만드세요.”


이 말은 두 사람이 평생 지키는 약속이기도 하다. 부부는 고마움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되, 힘든 기억은 흘려보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그는 말했다. “최대한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지금도 노력합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녀는 짧게 답했다. “좋아요.”


그는 매년 결혼기념일과 5월 21일 부부의 날에 꼭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신신 예식장 주최로 부인에게 편지 쓰기 캠페인을 연 적도 있다. 어느 해에 그는 이렇게 썼다. “저녁거리가 없던 그날도 당신은 복덩이였고, 아이엠에프 시절 빚을 지고 캄캄한 절벽에 섰을 때도 당신은 내게 등불이었소. 대장암 말기일 때도 당신은 나에게 천사였소.”


신신 예식장에서 반려자와 평생 함께하리라 맹세하는 이들은 가슴에 주례사 한마디를 담고 돌아간다.


“사랑하라, 행복하라.”

 

 

글 _ 정정화 기자, 사진 _ 케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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