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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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손안의 연약한 와인 잔

여든여섯인 아빠는 근근이 ‘기상하고 거동하고 잠드는’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 엄마도 불가능한 것을 더는 희망하지 않고, 다가올 일에 대해서도 담담히 말할 때가 있다. 물론 그런 말을 할 때는 꼭 울먹한다. 

 

이제 왕좌에 앉은 건 시간뿐이다. 시간의 윤허 아래 엄마의 돌봄만이 분주하다. “아니야, 내가 분주할 것도 없어. 네 아버지가 스무 시간 넘게 주무시기만 하잖니…….”

 

그래서 나의 역할이야말로 더는 분주하지 않다. 그저 엄마가 이 ‘보람이 적은’ 루틴에서 우울에 빠지지 않게 돕는 것 정도다. 엄마를 언제나 기쁘게 하는 것은 자식들의 음식과 돈, 사랑 표현. 나는 하루 한 차례 꼭 전화한다. “엄마, 오늘은 ○○를 먹었어. 너무 싱싱해서 아범이 아빠한테도 보내드렸어. 아빠만 드리지 말고 엄마도 꼭 같이 드셔야 해요!”

 

그렇게 최대한 단순한 ‘초딩 통화’를 이어 간다. “엄마, 오늘은 ○○ 가서 강의했어. 반응 좋았어. 그리고 ○○ 원 벌었어. 나 부자지?”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엄마는 행복하게 웃는다. 종일 자는 아빠 곁에서, 어쩌면 그날 처음. 엄마는 매일 내 ‘초딩 전화’를 기다린다. 하루 한 통화. 지금, 엄마의 기쁨조가 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어릴 적에도 엄마의 기쁨조였다. 그때는 그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다. “너 아니면 엄마는 벌써 삶을 포기했을 거다.” 엄마는 삶이 고될 때 마다 그렇게 말했고, 나는 다급해져서 엄마의 목숨을 어깨에 들쳐 메고 뛰었다.

 

스물다섯 살에 진로에 회의를 품고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도 나보다 부모님이 더 걱정됐다. 생의 기대와 보람을 내게서 찾으니, 내가 부모님을 어깨에서 내려놓는 순간 그분들은 이제 무엇을 낙으로 살아갈까. 그래도 내려놓았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해서 누군가의 낙이 될 기력 같은 건 없었다.

 

“네가 이 모양 이 꼴이 될 줄 몰랐다.” 꺼질 듯한 한숨과 모진 말들로 부모님은 매번 내 삶을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하고 ‘다시 내 낙이 되어 달라’며 흔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그분들에게 필요했던 건 관계의 재편성이 뚜렷해 질 만큼의 시간과 그 안에서의 새로운 적응이었다.

 

내가 계룡산에 짱박혀 수년간 꿈쩍도 안 하자 부모님은 별수 없이 새로 주어진 여건에 적응했다. 의외로 잘 살아갔다. 짊어지는 것도 내려놓는 것도 그저 나의 선택이었다. 아빠는 정신이 비교적 온전했던 최근까지도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네가 판사가 됐어야 했는데.” 그러면 나는 순수하게 그가 안쓰럽다. 아집은 애달픈 것이다. 눈앞의 행복을 갖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아들은 최근 작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엄마, 나는 요즘 진로에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어. 대학에 가 보니 전공 공부도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미친 듯이 하는 애가 많아.” 아들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할 것을 짐작은 했다. 음악을 말할 때 아들은 기쁨으로 얼굴이 달뜨고 눈이 빛난다. 그렇다고 아이가 음악 이외의 것을 선택했을 때 가이드 짓을 하진 않았다. 방황은 온전히 아이 몫이다. 방황이 생의 밀도를 높인다. 그 기회를 빼앗는 것은 폭력임을 나는 온몸으로 터득한 사람.

 

마주 앉은 아이는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과연 내가 신뢰하는 그 사람이 맞을까? 나도 두려운 이 상태까지 지지해 줄까?’ 그러므로 엄마로서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곁을 지키는 것.

 

나는 내 손보다 훨씬 큰 아들 손을 잡았다. “엄마가 예전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던 때, 참 갑갑했는데, 가만 보니 내가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이 있더라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기쁘다’고 ‘슬프다’고 글을 적는 거야. 사람은 가장 자주 하는 것을 자기 일에 포함시킬 때 행복해.” “그런데 작곡은 신의 경지인 사람이 정말 많아서…….”

 

“엄마도 똑같이 생각했어. 나는 글을 직업적으로 쓰기엔 모자란 사람이라고. 누구나 처음엔 훌륭한 작품들을 먼저 접하면서 그렇게 생각할걸? 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해. 그러다 보면 나만의 자리가 생겨. 그 자리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거야. 뭐 해 보고, 아님 말고. 이제 스무 살인데 뭐가 걱정이니?”

 

아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당신을 신뢰하며 당신에게 고맙다는 표정. 이얼굴 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달리고 또 달리면서 땀 흘려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닐까.

 

부모의 삶이 보이고 나의 , 자식의 삶도 보이는, 그런 때가 왔으면 했다. 간절히. 간신히 그런 때가 왔다. 개수대에 서서 와인 잔을 닦는 사람처럼 손안에 연약한 것을 깨뜨리지 않도록 하나하나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하루를 산다.

 

 

오소희 님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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