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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따뜻한 라테로 기억되는 법

동네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 지 몇 달째였다. 이월의 어느 저녁, 종소리가 울리며 한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목도리에 점퍼 차림이었다. 바깥바람이 적잖이 추울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납작한 베레모를 쓴 할아버지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주문했다.“ 따뜻한 거 하나.” 간단하지만 애매한 주문에 잠시 고민했다. 적당한 메뉴를 추천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일반 커피는 많이 쓴데, 커피에 우유 섞은 걸로 드셔 보시겠어요?” 할아버지는 대충 그걸로 달라며 주섬주섬 오천 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나는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건네며 라테가 준비되면 부르겠노라 말했고, 할아버지는 계산대와 가까운 소파에 앉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주로 학생이나청년, 부부와 아이 손님이 가게를 채웠다. 인적이 뜸한 무렵 추운 날씨에 혼자 카페에 온 할아버지를 잠시나마 따뜻하게 해 주고 싶었다.

 

머그잔에 에스프레소 샷과 데운 우유를 담고, 우유 거품으로 큰 하트 모양을 그려 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라테 아트였다. 소파에 편하게 앉은 할아버지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데다 다른 손님도 없겠다 싶어 직접 음료를 자리로 가져갔다. “맛있게 드세요.”

 

할아버지는 카페를 떠나기 전, 머그잔을 가져다주며 음료 이름을 물었다. 라테라고 답하니 잘 먹었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 후 일요일 저녁마다 할아버지는 비슷한 시각에 카페에 들렀다. 언제나 같은 점퍼와 모자 차림으로 혼자 와서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다. 그러고는 두어 시간쯤 앉아 있다가 기분 좋은 말을 남기며 밖으로 나섰다.

 

“고마워요. 오늘도 잘 마셨어요.” 할아버지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주문과 컵 반납 때 잠깐 주고받는 말이 전부였다.

 

하지만 매주 카페를 찾아오는 할아버지 모습이 유리문 너머로 보일 적마다 왠지 반가워 미리 웃으며 인사 건넬 준비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일요일 저녁 근무가 없었다. 그다음 주에 다시 마주한 할아버지는 내게 어디 갔었느냐고 물었다. 저번 주는 일하는 날이 아니었다고 답하자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라테를 주문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 하트 그거 있잖아, 그려 줘요.” 나는 처음부터 할아버지 라테에 쭉 우유 거품으로 하트를 그렸다.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들어 보니, 그날은 하트를 그리지 않았단다. 할아버지가 언제부터 하트를 신경썼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또 할아버지는 카페를 나서기 전, 원래 일하던 아가씨는 어디 갔냐고 물으며, 그 아가씨가 만든 라테가 정말 맛있었다고 했단다. 아무래도 라테맛은 비슷했을 것이다. 그동안 조용히 우유 거품 하트를 즐기며 나를 ‘라테 잘 만드는 아가씨’로 기억해 준 듯했다. 기분이 좋기도, 민망하기도 했다. 우유 거품처럼 따뜻하고 몽글한 느낌이었다. 라테에 크게 하트를 그려서 가져가니 할아버지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할아버지는 역시 한두 시간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거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거나, 통화하다 카페를 나섰다. “잘 먹었어요. 아가씨 음료는 언제나 맛있네요.”

 

할아버지는 카페에 머무는 동안 좋은 기억과 시간을 가졌을까? 웃으면서 인사를건네면 할아버지는 늘 작은 미소를 띠었고, 잊지 않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고마운 쪽은 오히려 나였다. 카페를 매주 찾아 주어서,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을 라테 한 잔으로 기억해 주어서 그리고 하트 모양을 잊지 않아 주어서.

 

 

 

서예지 | 경기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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