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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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상흔

 

우리 집 거실 마루엔 오래된 상흔이 있다. 지금은 중고생인 두 아이가 어릴 때 놀다가 생긴 자국이다. 

 

바퀴 하나가 빠진 화분 받침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걸 재미난 탈 것이라 여겼는지 번갈아 가며 올라타 서로 밀거니 끌거니 하면서 온 거실을 휘젓고 다닌 것이다. 바퀴 빠진 자리의 모서리가 원목 마루를 싹싹 긁어 놓았다.

 

지금이야 십오 년째 살고 있으니 거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지만 당시만 해도 입주한 지 삼 년쯤밖에 안 되어 바닥 관리가 잘된 편이었다. 그런데 이곳저곳 긁어 놓았으니 열이 뻗쳤다. 있는 화 없는 화를 다 냈다. 혼을 내면서도 ‘이렇게 할 것까지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화는 화를 불러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깔깔거리며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금세 풀이 죽어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 내 호통이 멈추자 조용히 사라졌다. 도대체 난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십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실을 청소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마룻바닥의 상흔이 나를 마음 아프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거실 바닥보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 마음에 남는 상처가 더 컸을 텐데 왜 화를 참지 못했을까. 좋은 말로 넘어가는 현명함이 왜 없었을까. 막상 아이들에겐 사과하지 못했다. 어른의 자존심이 남아 있었던 듯하다. 진짜 어른이 뭔지도 모른 채.

 

얼마 전 남편이 거실 바닥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그러고도 남편은 나에게 지청구 한번 듣지 않았다. 접시 깬 아이는 야단맞아도 장독 깬 어른은 한 소리도 안 듣는다는 속담이 떠오르면서 아이들에게 사과하는 걸 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들을 불러 거실의 상흔을 보여 주며“ 이게 언제 생겼는지 아니?” 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어릴 적에 놀다가 생긴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그때 혼내서 미안하다고, 거실에 상처 낸 것 보다 너희 마음 다치게 한 엄마 잘못이 더 크다며, 늦었지만 사과한다고 했다.

 

“엄마가 우리 혼냈어요? 그건 기억 안 나는데. 그날 엄청 재밌게 논 것만 기억하는데요.” 둘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에 조금이나마 위로받았다. 좋은 기억만 남겨 줘서 고맙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면 무의식에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 있겠거니 싶어서 다시 미안하다고, 다음부턴 너희 마음을 더 살피겠다고 했다.

 

거실의 상흔을 볼 때마다 다짐한다. 아이들 마음에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아이들이 기억 못한다고 해서, 내가 잊고 싶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거실 마루 자국보다 더 오래 가슴속 상흔으로 남아 어느 날 문득 떠오를지 모른다. 그러니 내 감정을 잘 다스려야겠다. 거실 바닥의 상흔이 나를 조금은 어른답게 키워 준 듯하다.

 

이인숙 님 | 대전시 유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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