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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그 집에서 보낸 일 년

 

 

대학 생활을 강원도 춘천에서 했다. 가족과 멀어진 사람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그들은 각자 자취방, 기숙사에서 살면서도 굳이 서로의 집에 모여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도 그런 집이 있었다. 다섯 평 남짓한 선배의 원룸이었다. 싱크대와 냉장고, 책상, 침대 자리를 빼면 요가 매트 절반 정도의 공간만 남았다. 그곳에서 이십 대 남자 셋이 모여 같이 밥 먹고, 영화 보고, 술 마시고, 잠을 잤다.

 

그때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영화 동아리에서 만난지라 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때로는 각자의 가족에 대해, 어떤 날은 연인에 대해. 서로의 상처에 대해서도 말했다. 

 

대화는 또 다른 대화를 파생한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주제와 계통을 넘나들었다. 그러면서 가족이 됐다.

 

그렇게 일 학년 일 학기를 보냈고, 이 학기에도 어김없이 그 집에 모였다. 우리는 불과 이삼 개월 전 일들까지 꺼내 추억했다. “그만 잘까?” 형광등을 끄고 누웠지만, 누워서도 이야기하고, 그러다 다시 불을 켜고 냉장고에 있는 소주와 진미채를 꺼내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술에 취해서야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라며 잠들었다. 성인 남자 혼자 살기에도 비좁은 방이었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의 세계는 매우 넓었다.

 

돌이켜 보면 그 집에서 보낸 일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말이 많은 때였다. 우리는 대화에 목말랐던 걸까? 사람이 고팠던 걸까? 둘 다였을 것이다. 스무 살 이전에는 쉽게 나눌 수 없었던 생각들이 집을 떠난 뒤에야 터져 나왔을 테다.

 

가족의 품을 떠나면 고단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전의 관성과 다르게 살아 볼 수 있다면 시도할 가치가 충분하다. 마음속에 넣고 닫아둔 것들을 마주하게 해 주는 사람과 공간을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선배의 원룸이 그런 공간이었다.

 

다시 그들과 밤새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이십 년이 지나니 다시 대화에 목마르다. 각자 그동안 쌓아 놓은 이야기를 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다.

 

강병진 님 | 《생애 최초 주택 구입 표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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