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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할머니의 초상화

 

할머니의 얼굴을 그려 선물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초상화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매우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할머니가 즐거워하니 나도 기뻤다. 나에게 할머니는 어머니만큼이나 각별한 존재였으니까.

 

그로부터 몇 년 뒤 할머니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내 초상화는 영정으로 쓰였다. 진실을 알게 된 건 그다음이다. 할머니를 임종까지 모셨던 큰이모가 내게 조심스레 고백했다. 실은 할머니가 그림을 장롱에 넣어 두고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았다고 말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앞에선 그렇게 좋아했는데. 손주에 대한 고마움과는 별개로, 그림 속 자신의 노쇠한 모습을 마주하는 건 할머니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초상화에는 할머니의 흰머리와 주름, 검버섯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할머니와 큰이모 사이에는 이런 대화도 오갔다고 한다.

 

“얘, 이 그림 어디다 버리면 안 되겠니.”

“중원이가 알면 어쩌려고 그래.”

“도둑이 들어서 훔쳐 갔다고 하면 되잖아…….”

 

할머니에게도 더 젊고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이 듦을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이들은 노년의 표상을 낭만의 기호로 치환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에게 흰머리와 주름은 할머니의 사랑과 지혜를 떠올리는 매개다. 

 

그러나 초상화로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면, 내가 바라보는 모습보다 당신이 바라는 모습을 더 세심하게 헤아렸어야 했다. 마주하기 싫은 것을 마주하게 하는 일은 상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내 초상화를 보고 침울했을 할머니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할머니의 초상화는 내가 보관하고 있다. 오랜만에 초상화를 마주한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가“ 왜 그래?”라고 물으니, 엄마가 눈가를 훔치며 답했다. “우리 엄마 생각나서…….” 

 

나도 할머니가 생각나고, 가슴 사무치게 보고 싶다.

 

정중원 님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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