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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삶 이후 영원의 풍경들



지난겨울 생폴드방스라는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머물렀을 때 일이다.

 

동틀 무렵이면 마치 새벽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홀연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이 마을은 해발 180미터에 성을 쌓아 요새로 만들었던 중세기 모습 그대로였다. 성 안쪽 길들은 마치 미로처럼 좁은 골목들이 사방으로 나 있었다. 

 

나는 마을 가장자리, 그러니까 성벽을 따라 난 길의 삼층짜리 돌집 일 층에 여장을 풀었다. 이 숙소는 여러모로 나를 아찔하게했다. 처음엔 곤란해서 아찔했고, 나중엔 황홀해서 아찔했다.

 

내가 이 마을에 당도한 것은 자정이 넘은 야심한 시각이었다. 이곳에서 단기 체류를 하게 된 것은 문학·예술인의 흔적을 답사하고 현장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설 명절 음식을 차리고, 차례를 지내자마자 도망치듯 공항으로 달려갔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프랑스 니스에 내려 깜깜한 밤길을 더듬듯 겨우 도착한 목적지에는 육중한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내가 이틀에 걸쳐 지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해 여장을 풀 숙소는 성 안에 있었다. 가로등 불빛만이 환하게 성벽과 그 앞 광장을 비추고 있을 뿐 어디에서도 사람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니스 공항에서 출발할 때부터 마치 서로 암호문을 주고받듯 문자 메시지로 소통하던 마크라는 집주인은 정작 도착한 순간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매번 그런 식이었다. 다 왔다고 생각할때, 새로운 시련이 도사리고 있었다. 스마트한 구글 지도를 손바닥에 놓고 작동해 보아도 어느 쪽이 동쪽이고 서쪽인지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겨울, 자정의 광장에서 십여 분을 기다린 뒤에야 나는 마크를 만났다. 그는 내가 예상한 성문 쪽이 아니라 마을 입구 쪽 비탈길에서 불빛을 등에 지고 휘적휘적 걸어 내려왔다.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아 온 친구와 재회하듯 반갑게 그를 향해 돌아섰고, 그 역시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내가 타고 온 차를 쓱 보더니,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조수석에 올라타서 길잡이 노릇을 했다. 마치“ 열려라 참깨!”를 외치면 한 세계가 열리는 《아라비안나이트》에서와 같이 그의 신호에 따라 바닥에 솟아있는 진입 금지 기둥들이 납작하게 엎드렸고,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것으로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성벽 길은 소형 중에서도 이 인용 차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통로였다. 거처까지 사백 미터 거리였으나, 심리적인 거리는 이 킬로미터 이상이었다.

 

날이 밝았고, 나는 늘 그래 왔듯 일상과 똑같이 그곳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부엌에서 밥을 짓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가까이 혹은 멀리 답사를 다녔다. 그리고 새벽마다 홀연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 내 뒤를 쫓았다면 기이한 발걸음으로 생각할 만큼 일반적인 산책은 아니었다. 

 

내 삶의 주인은 나임에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떠나는 결정적인 순간만큼은 내가 모른 채 진행된다. 


나는 삼십 년째 문학·예술인들의 삶 이후의 현장들, 그들의 영면처를 찾아다녔다. 내 아버지 어머니라도 되는 듯이. 여명의 어스름 속에 성벽 길을 걸어 내가 찾아간 곳은 러시아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화업(畵業)을 일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짐을 꾸려 이곳 남쪽 바닷가 언덕 마을로 터전을 옮긴 샤갈의 묘였다.

 

샤갈의 묘 위에는 큰 새 한 마리가 돌에 새겨져 있었다. 로즈메리와 바닷가 조약돌들이 새를 빙 둘러 감싸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새는 날개를 펄럭이며 창공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갈 것처럼 생기롭게 되살아났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이 보랏빛으로, 연어빛으로, 마침내는 투명한 빛으로 사이프러스 나무를 감쌀 때까지 화가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 주위를 산책했다. 샤갈은 98년 생애의 마지막 이십 년을 이곳에서 살며 마을의 정경과 사람들을 그렸다.

 

해발 180미터 요새 마을에는 산 사람이 살 만한 땅 한 뙈기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있을 것은 다 있었다. 거기에서 나고 살다 세상을 떠난 이들과 더불어 샤갈과 같은 이방인 예술가 묘까지. 

 

마을을 떠날 때, 돌부리에 긁힌 상처들이 자동차 옆구리 여기저기에 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침 햇살 속에 삶 이후, 영원의 풍경들을 그려 볼 수 있었으니. 샤갈과 함께 하루를 열 수 있었으니.

 

 

 

함정임 님ㅣ소설가, 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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