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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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나를 용서하는 시간


한동안 나의 삼십 대 초, 중반 시절이 기억나지 않았다. 십 대, 이십 대를 떠올리면 싱그럽고 아름답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겨 버렸다. 머릿속이 어둠에 휩싸였다. 안타깝게도 기억의 스위치를 내린 사람은 바로 나였다.


서른세 살, 운명이라고 믿었던 남자와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온 날 밤이었다. 급하게 얻은 원룸의 낯설고 차가운 벽 한편에 붙어 밤새 울었다. 켜켜이 쌓아 둔 아픔이 가슴을 찢고 나와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머니는 종일 내 옆에 가만히 앉아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다음 날 새벽에 결심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기억하지 않기로.


일 년간의 이혼 소송을 마친 뒤, 나는 일상을 되찾아 갔다. 좋은 회사로 이직했고, 회사 근처 편안한 집으로 이사했다. 여유 시간엔 친구들을 만나고, 부모님과 여행도 갔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아주 괜찮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혼자 있으면 문득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슬픔이 몰려왔다. 작은 자극에도 분노를 터트렸다. 분명 잘 지내고 행복하다고 믿었는데, 당혹스러웠다.


이 년이 지나서야 애써 눌러 온 감정을 마주했다. 그 실체는 놀라웠다. '이혼하다니, 난 인생의 패배자야.'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을 거야.' '나는 행복하게 살 자격이 없어.' 매일 이런 생각과 함께 미움, 자책, 죄책감에 빠졌다.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애처로운 믿음은 산산조각 났고, 비로소 바짝 말라 버석거리는 감정을 바라보았다.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나를 괴롭히고, 나를 둘러싼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기억의 스위치를 켰다. 옛 상처와 대면해야 했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난 날을 떠올리면 똑같이 아팠다. 꾹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치유의 여정은 괴롭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서 비로소 나에 대한 이해와 연민, 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받아들일 용기가 생긴다.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만을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리석은 두 사람, 상대를 헐뜯기 바빴던 전쟁 같은 싸움, 깨져 버린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조금은 알겠다. 과거의 나를 용서해야 현재를 살 수 있고, 상대방도 용서할 수 있음을. 그리고 삶을 사랑할 수 있음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꽃이 피어오른다. 이 계절에도 삶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파도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작은 용기가 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파도와 함께 즐겁게 춤출 용기 말이다. 오늘도 나에게 따스한 말을 건넨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정말 애썼어. 사랑해.'



김아름 님 | 서울시 송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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