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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사랑법

 

나와 아내가 처가에 간 날, 공교롭게도 장인어른이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평생 땅과 씨름하느라 자전거조차 사 본 적 없었던 장인어른이다. 몰래 모은 돈으로 오토바이를 산 이유는 장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장모님은 얼마 전부터 무릎 관절염으로 제대로 걷지 못했다. 장인어른은 장모님을 태우고 동네라도 휘 돌아보고, 가까운 보건소에서 진료도 받게 하고, 집에서 꽤 떨어진 비닐하우스까지 데리고 다닐 생각이었다.

 

장모님을 위해 산 오토바이를 가장 반대하는 사람 역시 장모님이었다. 혹시 타다가 넘어지거나 부딪치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며, 왜 샀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당사자의 거센 반대에 직면한 장인어른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남독녀인 아내와 나는 두 분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막을 보면 서로 사랑하고 걱정해서 일어난 일인데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관절염으로 걷지 못하는 아내를 여기저기 태우고 다니고 싶은 것이 장인어른의 사랑법이라면, 만에 하나 남편이 사고를 당할까 걱정하는 게 장모님의 사랑법이었다.

 

결국 장인어른은 아쉬워하며 우리와 읍내에 가서 오토바이를 환불했다. 판매상도 자초지종을 듣더니 잘한 결정이라며 장인어른을 위로해 주었다. 다행히 집으로 가는 장인어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평화로운 가정에 먹구름을 불러온 전쟁은 장인어른의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애초부터 승자와 패자로 나뉠 일이 아니기에 두 분 모두 승자라 할 수 있었다. 

 

나는 두 분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우리 부부도 이런 전쟁 한번쯤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바이가 사라진 자리에 매화 꽃봉오리가 피고 연둣빛 햇살이 그득했다.

 

 

홍비표 님 | 대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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