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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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셀의 뒷면

 

“그림은 극사실적인데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도 나요.”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술적 재능은 도예를 하는 어머니에게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는 걸 새삼 느낀다.

 

유년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진 애니메이션 작업이 디지털로 바뀌는 긴 시간 동안 아버지는 프리랜서로 애니메이션 효과를 담당하는 일을 했다. 

 

‘셀 애니메이션’은 셀이라는 투명한 필름 뒷면에 손으로 일일이 물감을 올려 작업한다. 예쁜 앞면을 위해 뒷면에는 많은 붓질을 하고, 겹겹의 물감을 쌓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움직이는 장면 일 초당 셀 스물네 장이 필요하다. 길고 지루한 작업이다.

 

아버지는 〈머털 도사〉 시리즈, 〈아기 공룡 둘리의 얼음 별 대모험〉, 〈펭킹 라이킹〉 등 나와 같은 세대라면 알 법한 애니메이션에 참여했다. 해외 작품에도 참여한 덕분에 나는 우리나라에서 개봉하지 않은 해외 만화 영화도 접할 수 있었다. 생일이면 《보물섬》, 《만화 왕국》 같은 두꺼운 만화 잡지를 선물받고 기뻐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자라 왔기에 내 그림에서 애니메이션 감성이 묻어 나오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어느새 아버지가 한창 애니메이션 일을 한 때의 나이가 되었다. 나의 많은 부분이 그 시절 아버지와 닮았다. 아버지는 하루 열두 시간 이상 우직하고 섬세하게 작업했다. 요즘 나도 하루 열두 시간 넘게 그림을 그리고 꼼꼼하게 작업한다.

 

문득 아버지가 투명한 셀에 그린 그림이 생각난다. 셀의 뒷면이 마치 아버지 같았다. 어린 시절에는 물감 자국만 보이는 그 뒷면이 싫었다. 그처럼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다.

 

결혼하고 가장이 된 지금은 다르게 와닿는다. 보이지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수많은 노력과 땀이 있다는 걸 안다. 지금 나에겐 셀의 뒷면이 꽤나 멋스럽게 느껴진다.

 

정우재 님 |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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