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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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다시 봄이 오는 집

“자네, 잘 사는가?” 예전 집주인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웠다. 아저씨는 이사 간 집은 어떤지, 재개발 사무소에서 임대권을 받았는지 묻곤 동생에게 안부 전해달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이십 대를 보낸 작은 전셋집. 나와 두 동생은 그곳에서 팔 년을 살았다.


대학교 4학년 무렵,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내 인생도 끝난 것 같았다. 정신없는 나를 대신해 엄마 친구가 발품을 팔아 집을 알아봐 주었다. 가진 돈이 적어 얻을 수 있는 전셋집도 별로 없었다.


어느 날 지역 생활 정보지에서 그 집을 보았다. 삼 층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일 층에서는 주인아저씨가 가게를 하고, 이 층은 세를 놓고, 삼 층에는 주인 부부가 아들과 살았다. 그곳은 바닥이 끈적거릴 정도로 지저분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청소하면 괜찮다는 엄마 친구의 설득에 계약했다. 

 

이사 전, 나와 동생은 청소에 돌입했다. 수세미로 바닥을 문질러 묵은 때를 벗겼다. 밥솥이 없어 한동안 음식을 배달 시켜 먹었다. 하루는 주인아주머니가 찾아와 냄비 밥을 해 주었다. “전에 살았던 사람은 집을 함부로 쓰고 쌀쌀맞아서 힘들었는데 이번 세입자들은 싹싹해서 기쁘네요.”

 

아침 일곱 시면 어김없이 주인집에서 믹서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수업을 들으러 나갈 무렵이면 주인아주머니는 벌써 마당 청소를 끝내고 산에 간 뒤였다. 아저씨는 트럭에 유리와 창틀을 싣고 일 나갈 채비를 했다.


나는 삶이 우울해 매일 밤 술을 마셨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상담실에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회복했고 취업도 했다. 그사이 여동생은 직장을 그만두고 국비 지원을 받아 전문대에 들어갔다. 남동생도 대학에 진학했다.

 

집 마당엔 매화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꽃향기가 가득했다. 정월 대보름엔 주인아주머니가 잡곡밥을 짓고 나물을 무쳐 주었다. 그곳에서 맞는 봄은 늘 따뜻했다. 하루는 주인아저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이 재개발 지역으로 확정됐으니 이사 지원비를 신청하란다. 사무소에 문의하자 재개발 확정 건물의 세입자는 기한 내에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대신 이사비로 수백만 원을 지원한다고.


집에 오는 길,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자네, 복권 당첨됐네.” 그로부터 이 년 뒤 우리는 이사했다. 선택의 폭이 넓어져 거실과 각자의 방이 있는 집을 고를 수 있었다. 이사 지원금 덕에 좋은 가구도 들였다. 

 

우리는 이사를 마친 후 주인아저씨댁에 선물을 했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 들어와 기뻤노라고, 어디 가서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해 주었다. 매화꽃이 하얗게 피던 그 집에서 우리는 다시 봄을 맞았다. 겨울이 가혹해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생각한 순간 행복이 햇살처럼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저씨, 아주머니! 그 집에 살 때는 저희가 너무 힘들어 행복한 줄 모르고 지냈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 좋은 곳에서 살았네요. 덕분에 취업하고, 가정을 이루고,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따뜻한 봄기운을 나누어 주어 고맙습니다.”


이소희 님 | 광주시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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