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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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빛나는 지금

우리 부부는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갔다더 추워지기 전에 단풍 구경 하자고 무작정 떠난 길이었다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리와 같은 은퇴 부부를 만났다그들은 차를 가져왔고다음 날 일정을 말하다 자연스레 합류했다시내나 한 바퀴 둘러볼 참이었던 우리는 등선 폭포구곡 폭포를 함께 갔다웬만한 명승지는 다 가 보았다고 자부했으나 처음 보는 풍경에 놀랐다.

 

댁들을 만나 호강하네요.” 내가 고마워하자 부부 중 아내가 답했다. “남편 덕분이지요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저를 위해 왔으니까요.” 그녀의 남편이 으쓱하며 미소 지었다. “제가 집에 자주 혼자 있으니 오히려 아내가 명분 만들어 준 거죠.”

 

오랜 시간 이혼 조정 위원으로 일한 나의 직감이 발동했다. ‘이 부부에게 황혼 이혼은 먼 얘기겠구나말을 참 예쁘게 하네.’ 이혼을 결심하고 온 부부 대부분은 거침없이 막말을 내뱉는다상대방을 탓하며 분노하고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나도 남편과 이혼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특히 은퇴 직후가 위기였다먼저 은퇴한 남편이 우울증에 빠진 것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 수시로 내게 전화 걸어 빨리 오라고 독촉했다부부는 아내가 졸업한 학교를 찾는 추억 여행 중이라고 했다하나 너무 달라져서 아쉬웠다고내가 말했다. “계획에 없던 이런 기회를 우리에게 베푸는 복을 쌓았잖아요정말 고마워요.” 

 

두 분을 만나 우리도 좋았어요.” “당신들은 부부 싸움 한번 안 했을 것 같네요서로를 추켜세워 주니.” “그럴 리가요지금도 남편 덕에 자주 싸우는데요.”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그들에게도 아픔이 있었으리라어쩌면 더 이상 젊지 않기에큰 욕심을 내지 않기에 누리는 행복일지도 몰랐다단풍이 빛나는 가을날우리는 지금

라는 선물을 넘치게 받고 있었다.

 

정수진 님 경기도 파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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