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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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한 사람의 존재

2011나는 임용 시험을 준비하면서 재미나게 수업하는 국어 교사가 될 거라고 마음먹었다하지만 첫 부임지에서 만난 아이들은 나의 교직 생활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교과서는 커녕 필기도구를 가져온 아이가 한 반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했다아이들은 교내 흡연에대화 중 네댓 번은 욕설을 썼고심심찮게 범죄까지 저질렀다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원형 탈모까지 생겼다.

 

차차 익숙해질 즈음 깨달은 것은 그 거친 아이들도 결국 아이들이라는 점이다아이들은 조금씩 속마음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가난한 집안부모의 이혼진작 포기한 공부과 담배의 유혹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절망표현은 거칠지만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은 여느 청소년과 다를 바 없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얼마나 가는지 보자는 비아냥거림과 비웃음에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아이들과 공부했다지게차나 굴삭기 자격증 하나라도 손에 쥐여 사회로 내보내고 싶었다나도 잘 모르는 내용인지라 전공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과 후 수업을 들은 뒤 더 쉬운 말로 바꿔서 가르쳤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갖고자신의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길 바랐다세상이 무시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같이 울고 웃으며 그 시기를 넘겼다지금 아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밥벌이하고배 우고 싶은 공부를 하며 잘 지낸다.

 

나는 한 것도 없이 어느새 9년 차 교사가 되었다여전히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 쉽지 않매 시간 수업에 들어가기 전 긴장되고 떨린다강의를 하고 책도 내는 다른 훌륭한 교사와 달리 나는 평범해서 스승과 제자라는 말을 쓰는 것도 낯부끄럽고 어색하다그저 어려울 때 생각나는얘기 잘 들어 주는 어른이면 좋겠다그래서 제자 대신 친구라는 표현을 쓴다.

 

누구나 방황하고좌절과 절망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그게 청소년기라면 더욱 견디기 힘들 터다하지만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고함께 고민하고괜찮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아이들은 그 시기를 무사히 건너 두 발로 우뚝 선다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이번 스승의 날에도 첫 담임을 맡았던 친구들이 꽃바구니와영화 대사를 인용해 삼천 만큼 사랑해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조만간 또 집으로 불러 밥을 해 먹이며 각자 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원재 님 강원도 원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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