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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격려받아 마땅한 청춘

가능하면 내가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그건 제자 군이 보내 준 카톡 내용 때문이었다뒷부분만 옮기면 이렇다가끔 이렇게 안부 인사를 여쭸어야 하는데 공부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선생님저는 조종사의 꿈을 품고 항공 운항 학과에 합격하여 성인으로서 세상에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언젠가 제가 성공해서 선생님을 뒷좌석에 태워 드리고 싶습니다.”

 

군이 이제 대학 1학년생이니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오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그 후에도 조종사가 되려면 어려운 시험을 치러야 할 테고수습 기간과 부조종사 같은 단계를 거쳐야 하리라그러니 정식으로 자신의 비행기를 몰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그러니 내가 오래 살아야 제자가 모는 비행기에 앉아 볼 수 있지 않겠는가물론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되라는 법은 없으니 앞으로 군의 인생행로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나는 당분간 제자가 모는 비행기 뒷좌석에 앉는 꿈을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그런 꿈 하나 갖고 사는 것도 그리 큰 사치는 아닐 테니.

 

군은 프로 야구 선수가 될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다내가 근무한 중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군이 바로 야구부 소속이었다때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 배정받아 1년간 함께 생활했다오전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운동장에서 야구 훈련을 한 군은 야구 특기자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군이 2학기 말 무렵 큰 사고를 쳤다소식을 듣고 달려간 보건실에는 군에게 맞았다는 친구가 거즈로 싸맨 코를 틀어쥐고 있었다곁에는 군이 겁에 질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하며 울먹였다우선 다친 학생에게 응급 치료를 하도록 했고양쪽 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렸다그런 후 두 학생을 진정시킨 다음 자초지종을 들었다듣고 보니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함께 놀다 상대편 학생이 이죽거리는 걸 뿌리치고 교실로 들어오는데계속 따라와 기분을 상하게 한 모양이었다욱하고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두른 거고상대가 시비를 걸었건 어쨌건 폭력을 휘두른 당사자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했다.

 

군은 겁에 질려 있었다평소에 그리 얌전한 편이었다고 할 수는 없고 가끔 불뚝하는 성질도 있긴 했지만 본성은 모질거나 악하지 않은 친구였다일단 부모님에게 죄송했을 테고그 다음에는 고등학교 진학 문제가 걸렸을 터였다학교 폭력 가해자로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면 자칫 야구 특기자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맞은 친구는 다른 반 학생이었는데 둘 다 같은 야구부 소속이었다그래서 평소에는 이물 없이 어울려 노는 사이이기도 했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맞은 학생을 위로하고때린 학생이 뉘우치고 사과하도록 하는 정도의 일이었다다행히 같은 야구부 소속이라 부모끼리도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교내봉사 정도의 징계와 치료비를 부담하는 선에서 원만히 수습할 수 있었다군은 그때 내가 자신을 호되게 몰아붙이면서 야단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진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군은 무사히 특기자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그런데 한 학기도 지나지 않아 야구를 그만두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다리를 다쳐서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거였다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에 매달려 왔는데뒤늦게 공부를 하려니 남들보다 몇 배는 힘들었으리라물론 야구라는 운동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을 테지만무엇보다 잃어버린 자신의 꿈에 대한 상실감이 컸으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그나마 1학년 때 야구를 그만두게 돼서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이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었고결국 제 2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전화위복이니인생사 새옹지마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군이 계속 야구를 했어도 프로선수가 되기는 힘들었을 게다. 90% 이상이 중도에 떨어져 나갈 정도로 워낙 경쟁률이 심한 세계이므로군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싶다내가 꼭 비행기 뒷좌석에 앉고 싶어서가 아니라비운을 딛고 제 2의 꿈을 향해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격려받을 자격이 있는 청춘인 까닭이다.

 

박일환 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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