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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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양치기 소년

지난해 가을 아침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침 여덟 시가 막 넘은 이른 시각이었다. “아버지가 좀 이상하시네.” 어머니는 대뜸 아버지 얘기부터 꺼냈다. “무슨 일 있어요?” “숟가락 드는 게 불편하다고, 아침 식사를 안 하겠다고 하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숟가락을 왜 못 들어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아버지 또 반찬 투정 하시는 거 아니에요?” 통화 중 불쑥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입에 안 맞는 음식이 앞에 있으면 숟가락을 내려놓을 만큼 입맛이 까다로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지난달 내과에서 받은 위내시경과 혈액 검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일흔 넘은 아버지가 마흔 넘은 딸자식보다 건강한 것 같더라는 농담도 보탰다.

 

건강 염려증일 수도 있어요.” 그 말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평소 건강 염려증이 있는 편이었다. 그즈음에는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야단을 부리다 이비인후과에 간 적도 있었다. 의사는 귀에 아무 이상이 없고 귀 청소를 안 해 준 탓이라는 말로 그냥 돌려보냈다. 그와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아버지의 말이 이솝우화에서 늑대가 나타났다!”를 거듭 외친 양치기 소년의 말처럼 진짜로 들리지가 않았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조금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는 생각에 지인인 의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벌써 병원에 출근해 있다는 그는 곧장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 모시고 바로 응급실로 가!”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세수만 하고 대문을 나섰다. 응급실에 가기 위해 기다리던 아버지는 양복에 가죽 구두 차림이었다.

 

아버지, 그렇게 입고 가면 어느 응급실에서 받아 주겠어요? 다들 엄살인 줄 알지.” 아버지는 대학 병원 응급실에 구급차로 실려 간 것이 아니라 멀쩡히 걸어 들어갔다. 나는 응급실 접수처에 등록을 하면서도 설마 무슨 일 있겠어, 검사나 한번 해 보는 거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응급실 침대를 차지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까닭이었다. 의사는 아버지에게 뇌졸중 전조 증상이라고 말했다. 며칠 더 있다 병원에 왔으면 후유증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아버지는 뇌혈관 집중 치료실이라는 병동으로 옮겨졌다. 나는 양복과 구두를 넣은 비닐 백을 들고 울먹이며 아버지의 침대를 따랐다. , 담배는커녕 짜고 매운 음식도 피해 온 아버지가, 건강 염려증이라고 가족들에게 놀림받기도한 아버지가 뇌졸중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 머릿속 뇌혈관이 70퍼센트 이상 막혔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평소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은 나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여기 밥이 아주 맛있어.”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병원 밥이 더없이 맛있다고 말했다. 깨끗이 비운 환자용 식판을 보면 마음이 한결 놓였다. 집밥보다 맛있을 리 없을 텐데, 초조해하는 딸의 걱정을 덜어 주려는 배려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아버지 나름의 하얀 거짓말이었을 거라는.

 

단풍이 지기 전, 아버지는 퇴원을 했다.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혈압을 잰다든가 하는 건강 염려증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엄살 섞인 얘기도 종종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전처럼 아버지에게 불평하지 않았다. 우화 속 양치기 소년이 심심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외로워서, 관심을 더 가져 달라고 늑대가 온다고 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알약 한 줌씩과 함께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듯했다. 나는 이제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든 귀담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오현종 님 ㅣ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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