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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33년 만의 영화관

부모님은 십오 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다. 연중무휴라 누가 아프거나 가게 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야 문을 닫았다. 긴 설 연휴를 앞두고 쉬는 날을 세어 본 나는 부모님에겐 휴일을 기다리는 설렘이 없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고 가뭄에도 단비가 내리는 법인데, 휴일 없는 삶이란 얼마나 막막한가.

 

몇 년 전부터 휴일을 정하길 권했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휴식이 필요하다며. 부모님은 매출이 줄고 단골도 끊긴다며 거절했다. 보다 못한 나는 이렇게 외쳤다. “대형 마트도 한 달에 이틀 쉬는데, 우리가 얼마를 더 벌겠다고 몸을 혹사시켜!” 그 말이 부모님 마음을 움직일 줄은 몰랐다. 결국 한 달에 두 번쉬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휴일에 벌어졌다. 한 번도 제대로 쉰 적 없는 부모님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랐고, 가게 문을 도로 열 생각까지 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묻지도 않고 영화표 세 장을 예매했다. 이미 결제해서 취소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려 영화관으로 유인했다. 그 핑계가 통한 건 33년 만에 영화관 가는 아빠 덕분이었다. “너희 엄마랑 데이트할 때 부시맨본 게 마지막이야.” 

 

그때는 엄마 마음을 사로잡으려 영화 관람에 거금을 썼단다. 그 뒤론 텔레비전으로 충분하다는 아빠의 철학에 따라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고영화관에 가기 전, 아빠는 나에게 물었다. “옷은 어떤 걸 입고 가야 해?” 빠한테 영화관은 그렇게 먼 곳이었다.

 

아빠는 내가 사 준 팝콘 상자를 품에 안고 휘둥그레진 얼굴로 극장에 들어섰다. 나에겐 너무 익숙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아빠에겐 입이 벌어질 만큼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대형 스크린, 풍성한 소리, 바삭바삭하고 달콤한 팝, 재미있는 내용과 맛깔스러운 배우들 연기까지. 그날의 영화관은 완벽했다.

 

재미있는 거 있으면 종종 데려가 줘.” 영화 보는 동안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팝콘 한 상자를 몽땅 비운 아빠는 벌써 다음 휴일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열심히 일한 뒤에 오는 꿀맛 같은 휴식, 그 달콤함을 부모님과 함께하자고 영화관을 나서며 다짐했다.

 

강미경 님 | 서울시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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