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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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가족의 품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엄마가 분홍색 포대기를 안고 집으로 왔다. 그 안에는 태어난 지 한 달 된 여자아이가 있었다. 외삼촌의 사생아였다. 아이를 보육원에 보낸다기에 엄마가 데려온 것이다수정(가명)이는 외동딸로 자란 나에게 특별한 동생이 되었다. 분유 먹이기, 기저귀 갈기재우기까지 내가 도맡았다. 그래서인지 나를 유독 잘 따랐다. 수정이는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무언가 조금씩 어긋난다고 느낀 건 수정이가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수정이는 거짓말을 하고, 화장과 옷차림에 부쩍 신경 쓰더니, 급기야 불량 학생과 어울려 다녔다. 새벽에 귀가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타일렀지만 귀찮은 잔소리로 여겼고, 점점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잦은 거짓말과 도를 넘은 일탈은 일상이 되었다. 수정이의 눈빛과 말투, 표정은 낯설기만 했다. 너무 늦게 다니지 말고 좋은 친구를 사귀라는 내 말에 소리를 꽥 질렀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수정이가 나를 친엄마처럼 따랐던 만큼 충격도 컸다엄마 없이 자라 그렇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엄하게 대한 것이 수정이의 반항심을 키운 걸까. 아니면 자신의 불우한 가정사에 불만을 품은 걸까. 수정이는 우리 가족과 점점 더 멀어졌다.

 

결국 수정이는 학교에 자퇴서를 냈다. 우리에게 저를 찾지 마세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라는 쪽지만 남긴 채 가출했다. 엄마는 몸져눕고, 아빠와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수정이 친구를 수소문해 찾아 나섰다. 수중에 돈도 없고 지낼 곳도 마땅찮은 녀석이 대체 어디로 갔는지 답답했다.

 

집을 나간 지 보름이 될 무렵, 인근 소도시의 한 오락실에서 수정이를 찾았다. 내 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확 달라진 모습이었다. 나는 수정이가 돌아오지 않을 걸 직감했다.

 

언니, 나 돌아갈 생각 없어. 다신 찾지 말아 줘. 키워 준 건 고마운데 그동안 나 솔직히 숨 막혔어. 언니는 나 이해 못할 거야. 미안해.” 눈물로 호소했으나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나는 은행에서 얼마간의 돈을 빼 수정이 손에 쥐여 준 채 돌아섰다.

 

칠 년이 흘렀다.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둔 , 밤늦게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 보니 자신을 쏙 빼닮은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수정이가 서 있었다. 내 결혼 소식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온 것이다허름한 옷차림에 피곤이 덕지덕지 내려앉은 얼굴이지만, 내가 아끼고 사랑한 동생이 맞았다. 홀로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떻게 사는지 짐작이 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말없이 수정이를 끌어안았다. 수정이는 내 품에서 그간의 외로움과 모진 현실을 토해 낸 뒤에야 울음을 멈추었다.

 

나 면목 없어서 고모랑 고모부 얼굴은 못 보겠어. 결혼 정말 축하해. 행복하게 잘 살아식장엔 못 가겠고 언니 얼굴은 한번 보고 싶어서 찾아왔어.”

 

모두가 널 기다리고 있어. 결혼식장에 꼭 와서 두 분에게 인사드려. 엄마는 아직도 네가 돌아올까 봐 밤에 문을 잠그지 않고 주무셔. 지금 네가 어떻게 살든 신경 쓰지 말고 돌아와. 우리는 가족이잖아.” 아무 대답 없이 돌아간 수정이는 결혼식장에 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돌고 돌아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김경진 님 | 서울시 송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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