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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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가장자리에서

마당가에 선 보리수나무를 보았습니다열매가 빨갛게 익었습니다몇 개 따서 입에 넣으니 달고 신 맛이 입안을 채웁니다이때가 지나면 열매는 새들에게 먹히거나 떨어지겠지요나무 한 그루도 심을 때가 있고 자랄 때가 있고꽃 필 때가 있고 열매 맺을 때가 있고 자기 역할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나에게 가장 힘든 것은 사랑입니다이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를 떠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하지만 이 말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이별도 사랑임을 알 때입니다.

 

2019년 3월 4일 오전 열 시쯤나는 직원들 앞에 섰습니다매월 첫날에 있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시간)’ 자리였습니다. “나는 회사를 떠납니다내가 이런 상태로 계속 회사의 대표와  좋은생각」 발행인을 맡는 것은 독자와 직원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오늘부터 정주안 대표와 함께 잘해 주기 바랍니다.”

 

나의 이런 상태는 제법 길었습니다. 나이(66)가 들면서 몸이 지치고마음이 자주 우울해졌습니다. 생각은 많지만 행동은 적고용기는 줄어들고 후회는 늘어났습니다오래 쌓인 경험이 고집과 편견이 되고다 아는 척 말은 잘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시작할 때의 겸손은 어디 가고 교만이 일어나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직원들은 놀랐고어떤 직원은 예측 불허를 속상해하면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그 직원을 보면서 이별에도 절차가 있구나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하며 후회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자주 한 말이 있습니다. “미련은 먼저 오고 꾀(지혜)는 나중 온다.”입니다돌아보니 지난날들은 내 미련의 연속이었습니다나는 내 의지와 노력으로 삶을 관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내가 세상의 주인인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나는 세상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이고 연약한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좋은생각」 외에 시도한 다섯 종의 잡지는 다 실패했고 단행본도 90퍼센트 이상 실패했습니다이 실패는 정확히 나의 실패입니다지난날의 이런 일들은 실수가 아니라 나의 미련이었습니다나의 이런 어리석음을 채우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 그동안의 직원들에게 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좋은님에게 고백할 건 따로 있습니다나는 내가 쓴 글에서 밝은 척긍정적인 척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어둡고 부정적인 때도 많았습니다글의 이상과 경영의 현실 사이에서 이중성이 있었고 위선도 있었습니다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은 적 있었고 마음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끄러움 안에서도 내가 나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이것이 나를 치유했고 계속 글을 쓰게 합니다그것은 독자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그 힘으로 나는 수십만 컷의 사진을 찍었고,수천 편의 글을 썼습니다좋은님한 분 한 분이 좋은생각을 읽는 동안이라도 존중받는 기분이 들기를 바라며 글을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어머니께서 들려준 다른 말이 있습니다. “볼 줄 알면 할 줄안다.”입니다어떤 일의 본질을 꿰뚫으면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회사를 떠나 가장자리에 서 보니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우리 회사가 어떤 마음으로 시작되었고어떤 과정을 지나왔으며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언지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보이고 내 안에 있던 욕심과 분노도 보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좋은 생각만 하는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단지좋은 생각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사람일 수는 있습니다이 찾음과 애씀이 우리 인생길의 길과 빛이 아닐까요삶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아무리 일이 꼬이고 속고 아프고 슬퍼도 우리 인생은 그것이 포함된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을 것입니다이 험난한 아름다움의 비결은 사랑에 있습니다아무리 짧고 연한 사랑이라도 그것을 누구에게 주거나 받으면 그 순간 그에게서 빛이 납니다

 

지난 27년간 받은 오십만 편 이상의 글을 통해 나타난 결론은 하나사랑입니다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막막해도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람그 가족그 공동체는 결국 훌훌 털고 일어났습니다다시 웃음을 찾았습니다글이 근원적으로 희망에 속하는 것은 그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이 희망을 알고 있기에「 좋은생각은 어떤 책보다 우리의 사랑을 깊고 넓게 나누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가장자리로 나왔습니다이곳에서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 한 사람의 필자로서 좋은님을 섬길 것입니다.

 

나는 이 글이 좋은님에게 아픔을 줄지 희망을 줄지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결과를 궁금해 하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면 글을 못 쓰니까요우리는 좋음만 택할 수 없습니다모르기 때문입니다우리에게 새 기회가 주어지면 그때마다 정직과 성실을 택하면 됩니다그러면 생각이 힘을 얻어 우리를 좋은 곳진실과 사랑이 있는 곳으로 안내할 것입니다무척 힘들었지만 나는 이 글로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좋은님고맙습니다.

 

정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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